[TALK&TALK] 이인성미술상 수상자 윤석남 작가 "나라가 기억하지 않은 여성 독립운동가 100여명 그릴 거예요"

  • 박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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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11-16 07:28  |  수정 2022-11-16 07:38  |  발행일 2022-11-16 제22면
1939년 만주 출생…어릴 적 가난 탓 마흔에 그림 시작
한국·일본·중국서 활동…'여성주의 미술 대모'로 불려
내년 11월 대구미술관서 여성독립운동가 초상화 전시

"'어머, 나이 많은 작가에게 이런 큰 상을 주면 미술계의 발전에 해가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어요. 그렇지만 굉장히 기뻤습니다. '열심히 하면 이렇게 좀 알아봐 주는 분도 있구나' 그런 위로감 같은 게 들었죠."

'제23회 이인성미술상' 수상자인 윤석남(83) 작가는 지난 10일 대구미술관에서 열린 시상식에 앞서 마주한 자리에서 수상 소식을 들은 후 느꼈던 심경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윤석남은 여성 최초로 이중섭미술상을 수상한 데 이어 이번에 이인성미술상을 수상하는 두 번째 여성 작가가 됐다.

그는 "이인성미술상이 올해로 스물세 번째를 맞이했는데 여성 수상자로는 두 번째라고 하니 아쉬운 마음도 들지만, 여성 작가로서 후배들에게 보다 나은 토대를 만들어 주기 위해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책임감이 크다"고 했다.

1939년 만주에서 태어난 윤석남은 늦깎이 화가다. 나이 마흔에 화가의 인생으로 뛰어들었다. 그림을 시작하기 전에 4년 동안 서예를 배우긴 했지만 전문적인 미술 공부를 하지는 않았다.

그 시절 마흔에 화가가 되겠다고 용기를 낸다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다고 했더니 그는 "아주 어린 나이부터 화가가 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아버지(부친은 윤백남 영화감독)가 일찍 돌아가시고 너무 가난했기에 그림을 못 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으면 그림을 시작할 것이라는 생각이 늘 머릿속에 있었다"면서 "그래서 하나도 슬프다거나 그러지 않았다. 대신 책을 많이 봤다"고 답했다.

"마흔에 그림 시작할 때 남편이 준 생활비 전부를 들여 그림 그릴 재료를 샀어요. 그렇게 시작했죠."

그는 남편이 자신의 지원군이라고 했다. "남편이 주는 생활비의 3분의 1은 내 월급이라고 생각하고 그 돈으로 그림을 그렸어요. 남편한테도 얘기했더니 '누가 뭐래' 그러더라고요. 당당하게 써야지 당당한 그림이 나와요."

집안일과 작업을 병행하면서 밤 12시까지 캔버스 앞에 있어도 그는 행복했다고 했다. 그 행복이 지금까지 오는 것 같다고.

그렇게 윤석남은 1982년 개인전을 시작으로 한국·일본·중국 등 국내외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며 한국 여성주의 미술의 영역을 개척하고 있다. '여성주의 미술의 대모'라고 불리는 그의 주된 작업 주제는 어머니와 여성이다.

현재 집중하고 있는 작업은 '여성 초상화'. 그는 "'조선 초상화'라는 책이 있는데 500년 동안의 초상화가 담겨 있다. 감탄을 하면서 봤는데 감탄만 한 게 아니라 굉장히 슬펐다. 왜냐면 남성 초상화는 수백 점이 있는데 여성 초상화는 10점 정도에 불과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후 여성 초상화를 작품화할 것을 다짐했고, 우연히 독립운동가 책을 보다가 여성 독립운동가 초상화를 그려야겠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지금까지 그녀의 손에서 초상화가 그려진 인물은 45명 정도. 그는 100~120명을 그릴 생각이라고 했다.

"총 들고 싸우다 죽은 여성 독립운동가도 있지만 이 나라는 기억하지 않아요. 왜 이 여성들은 당신들을 '하녀 대접'하는 이 나라를 위해서 목숨을 바쳤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죠. 이는 결국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이고 '나도 당당한 한 인간'이라는 외침이라는 게 제 스스로가 만든 답입니다. 그런데 이분들의 스토리가 '진짜 스토리'라고 자신할 수는 없어요. 기록에 의존하는 것이니까요."

작가는 내년 11월에 대구미술관에서 개최할 개인전에 대해 "지금 열심히 작업하고 있는 여성 독립운동가 초상화 작업을 전시할 생각이다. 많은 여성 초상화 작업에 대해 관람객들이 지루할 수 있다는 게 걱정인데, 이전 작업과 함께 최대한 다채롭게 전시를 구성하도록 애쓰겠다"고 밝혔다.

"제22회 이인성미술상 수상자인 유근택의 개인전 '대화'展을 살짝 봤는데 사실 이렇게 큰 전시를 해본 경험이 없어서 걱정이 밀려왔어요. 그래도 365일이 남았으니까 놀지 말고 해야죠. 작업이라는 게 놀지 않고 한다고 되는 건 아니거든요. 그래도 시간을 많이 투자한 것 이상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박주희기자 j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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