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흙의 날

  • 남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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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3-06  |  수정 2023-03-06 07:00  |  발행일 2023-03-06 제27면

콘크리트 숲에 사는 도시인들이 평상시 흙을 밟거나 만지는 일은 쉽지 않다. 도시 주변 둘레길이나 공원 내 산책로도 나무 덱이나 야자 매트로 흙이 보이지 않도록 덮어 놓았고 학교 운동장도 우레탄이나 인조 잔디로 덮여 흙길을 찾기 어렵다. 또 흙길을 만들어 놓았다고 해도 시민이 흙먼지를 피해 포장도로를 이용하기 때문에 외면받기 쉽다.

'인간은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간다'라는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사람이 흙을 멀리하고 살아갈 수는 없다. 신토불이(身土不二)를 강조하는 우리나라는 2015년 흙의 날을 제정했다. 농촌진흥청이 흙의 소중함과 보전의 필요성을 알리기 위해 제정한 날로 농사의 시작을 알리는 3월과 '하늘+땅+사람'의 3원, 농업·농촌·농민의 3농을 의미하는 '3'과 흙을 뜻하는 한자 토(土)를 푼 십(十)과 일(一)을 조합한 3월11일을 '흙의 날'로 정했다.

복잡한 이름의 '친환경농어업 육성 및 유기식품 등의 관리·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흙의 날에 적합한 행사나 사업 등을 하도록 노력하라고 주문하지만 이날 기념행사를 하거나 특정 사업을 펼치는 곳은 그리 많지 않다. 오히려 흙의 날이 있는지 알리는 것조차 무심한 편이다.

이번 주말이 흙의 날이다. 흙의 소중함이나 보전의 필요성을 차치하고서라도 약동하는 계절의 느낌을 받기 위해서라도 흙길을 찾아 걷거나 아파트 베란다에 작은 텃밭이라도 만들어 흙을 만져보자. 이 봄이 가기 전에 어느 종교 집단의 열렬한 광신도처럼 외치고 싶다. "위대한 흙의 기운을 영접하라"고.

남정현 중부지역본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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