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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호순 〈곽호순병원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사랑하는 마음은 감출 수가 없습니다. 만약 떠나는 기차에서 자주 뒤를 돌아보게 된다면, 아직은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마음을 뒤에 두고는 앞으로 가지지 않죠. 떠나와도 늘 그렁그렁 눈물로 밟힌다면 아직도 사랑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하루 종일 내 생각은 있는 듯 없는 듯 오직 그 사람 생각만 난다면 그건 누가 들어도 사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다면 가을밤의 귀뚜라미가 잠시 우는 것이 아니라 밤새워 운다는 것도 알게 될 것입니다.
어느 날 안개가 앞을 막아 사방 분간이 어려워도 그 사람 집 찾아가는 길만은 훤하다면 그를 사랑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큰길을 두고 굳이 골목길을 돌아 그 사람 집 앞을 자주 지나가게 된다면, 그건 우연이 아닙니다. 만약 집 앞 먼발치에서부터 설렌다면, 그를 사랑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누군가를 마음으로 가만히 불러 보았을 때 가슴이 두근거린다면 그건 사랑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아무리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마음의 빈 곳이 있다면 그건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커다랗게 뚫린 마음의 빈 곳에 사람 하나 산다는 생각이 들면 그건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이 아니고서는 추억의 반쪽이 맞아 들어갈 수가 없다면,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겁니다. 그 많은 사람들 속에 떠 있어도 오직 혼자 외롭거든 그건 사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대라는 물결에 가로막힌 섬에 갇혀 버린 겁니다. 수많은 말들이 공중에 흩어져 소란스러워도 오직 그 사람 목소리만 들린다면 당연히 사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가 떠나고 까닭 없이 신열이 올라 한 사나흘 푹 자고 나면 가뿐할 줄 알았다면 그건 큰 오산입니다. 사랑병을 앓고 있는 것이므로 꽤 오래 갑니다.
바람에 펄럭이는 플라타너스 이파리가 나에게만 손을 흔든다면 그것은 사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비옷도 없이 쏟아지는 빗속으로 걸어가고 싶어진다면 그건 사랑하는 마음이 시킨 겁니다. 꽃보다 꽃피기 전의 눈보라와 서리가 먼저 생각나서 안쓰럽다면 그건 사랑을 알고 있다는 뜻입니다. 사랑이라는 말이 너무 쉬워서 물미역처럼 쉽게 입 밖으로 미끄러져 나온다면, 사랑을 해 본 적이 없다는 뜻입니다. 사랑이라는 말이 너무 독해서 입 밖으로 꺼내기조차 싫다면 그것은 사랑에 가슴을 데여 봤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사랑하는 마음은 감출 수 없습니다.
곽호순 〈곽호순병원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곽호순 〈곽호순병원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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