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봄] 창을 열면

  • 곽호순 곽호순병원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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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7-18  |  수정 2023-07-18 07:44  |  발행일 2023-07-18 제13면

[마음·봄] 창을 열면
[마음·봄] 창을 열면
곽호순 〈곽호순병원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이유도 없이 저만치 물려 두었던 슬픔이 슬며시 마음속에 울컥울컥 차오르려고 할 때, 그럴 때 있죠. 그럴 때는 차라리 창문을 가능한 한 활짝 열고 하늘을 불러들이세요. 열어 놓은 창문에 하늘 한 폭이 걸리면 하늘은 우선 어두운 방의 배경부터 환하고 근사한 하늘색으로 바꾸어 놓을 겁니다. 그리고 그다음에는 많은 일이 일어납니다.

먼저 활짝 열린 창문으로는 바람이 들어올 겁니다. 그 바람은 세상의 온갖 일들을 다 만나고 오는 길이라 그만큼 많은 것들을 알고 있죠. 당신 마음이 슬프다는 것도 잘 알고 있죠. 바람은 어두운 기억들을 힘주어 불어 내 버릴 겁니다. 바람에게는 그런 일은 아무것도 아니죠. 당신은 어두운 것들이 바람에 날려 멀리 달아나는 것을 그저 보고 있기만 하면 됩니다.

당신이 창을 열면 기다리고 있던 햇살도 열린 창으로 쏟아져 들어올 겁니다. 햇살이 들어 온다는 것은 온 방 안이 햇살로 가득 찬다는 뜻이지요. 햇살로 가득 찬 방은 어두울 수가 없습니다. 구석에 쌓여 있던 그림자 같은 어둠이나 슬픔도 다 밝아질 겁니다. 당신의 어둡고 구석진 마음도 다 꺼내 놓고 말려 보세요. 햇살은 충분히 말려주고 펴줄 겁니다.

당신이 창을 열면, 창가에 덩굴줄기로 서로 몸 비비며 피어있는 능소화 수백 송이들이 이미 두 손을 동그랗게 말아 쥐고 당신의 어두운 마음에 손나팔을 신나게 불어 줄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능소화 손나팔 주황색 음악은 어서 창문을 열어주기만을 바라고 있었을 겁니다. 열린 창문으로 들려오는 능소화 손나팔 소리에 당신의 슬픔은 주황색으로 금방 환해질 겁니다.

당신의 창문이 열리면 먼 산도 귀를 엽니다. 그동안 닫힌 방안의 사연을 궁금해하던 먼 산이 슬그머니 무릎을 쓱 당겨 앉으며 창 쪽으로 가까이 귀를 바짝 댈 겁니다. 도대체 힘든 것이 무엇인지 다 털어놓아 보라는 듯이. 가깝게 귀를 댄다는 것은 어떤 힘든 말이라도 다 들어 줄 수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당신은 어떤 사연이라도 다 들어주는 큰 산이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관심은 듣는 것부터 시작되니까요. 산은 속이 깊어서 당신의 사연에 분명 메아리로 대답해 줄 겁니다.

늘 언덕 위 그 자리에 서 있던 느티나무는 오랫동안 닫힌 창 때문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언제쯤 창이 열릴까, 느티나무 그 큰 키로 두리번거리며 당신을 걱정하며 '큼큼' 헛기침만 하고 있었을 터인데 당신이 창을 열어주면서부터 느티나무의 굉장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느티나무는 슬픔에 빠진 당신과 많은 얘기를 하고 싶어 합니다. 여러 가지 많은 얘기를 나무 밑 그늘로부터 들어서 알고 있는 느티나무는 당신의 슬픈 마음을 안아 줄 근사한 이야기들을 숨겨두고 있었으니까요. 아마 그동안 닫힌 창문을 보며 언제쯤 열리나, 열리면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궁리하고 있었을 겁니다. 당신의 창이 열리면 비로소 느티나무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슬픈 마음은 생각할 겨를도 없을 겁니다

하늘과 바람과 햇살과 능소화 음악 소리뿐만 아니라 속 깊은 산과 언덕 위의 느티나무가 들려주는 이야기까지, 단지 창을 열기만 해도 이런 엄청난 일들이 이루어지는 것인데, 그래서 슬픔이 슬며시 올라올 때는 그냥 창문을 활짝 열기만 하면 된다고 말하는 겁니다. 일어나서 창문을 열기만 해도 이렇게 신나는 일들이 벌어지니까요.

곽호순 〈곽호순병원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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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호순 곽호순병원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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