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로 가는 청정관광1번지 산소카페 청송 .9] 아이스클라이밍 메카 '청송 얼음골'

  • 류혜숙 작가
  • |
  • 입력 2023-10-11 08:25  |  수정 2023-12-12 10:53  |  발행일 2023-10-11 제24면
빙벽 스파이더맨들의 서슬 퍼런 낭만…관객은 심장이 덜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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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 아이스클라이밍 경기장에서 'UIAA아이스클라이밍 월드컵'에 참가한 외국인 선수가 아이스바일을 이용해 등반하고 있다. 청송은 2011년부터 매년 아이스클라이밍 월드컵 대회를 열고 있는 세계 빙벽 등반의 성지이자 산악 스포츠 메카다. 〈영남일보DB〉

콱 찍고, 싹 걸고, 휙 날고, 탁 미끄러지고, 쓱 떨어진다. 빙벽을 타고 오르는 이는 저이인데 두근두근 내 몸에 힘이 바짝 든다. 심장이 덜컹 내려앉기도 한다. 마침내 빙벽의 정상에 다다르면 환호의 아쉬움과 함께 모든 긴장이 한순간 풀리지만 짜릿한 흥분은 쉬이 가라앉지 않는다. 그들은 빙벽을 '겨울 산의 꽃', 빙벽 등반을 '겨울 등반의 꽃'이라 부른다. 누군가는 얼어붙은 빙벽을 산이 써 내려간 한 편의 시(詩)라고 했다. 시를 음미하듯, 시를 쓰듯, 꽃을 탐하듯, 꽃을 피우듯, 빙벽을 오르는 일에는 서슬 퍼런 낭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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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 아이스클라이밍 전용 경기장의 모습. 〈청송군 제공〉

◆얼음골 아이스클라이밍 경기장

청송 주왕산의 남쪽, 영덕 바다로 향하는 산길을 달리면 비교적 느슨하던 산길이 내룡리를 지나면서 좁고 깊게 휘휘 돌아나간다. 그러다 갑자기 원을 그리듯 급하게 휘돌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거대한 암벽 하나가 길을 막아선다. 누구든 멈출 수밖에 없는 이곳은 청송 얼음골이다. 한여름 기온이 높아지면 얼음이 어는 기이한 골짜기, 얼음골은 청송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지질 명소이기도 하다. 길 막은 암벽은 높이 62m로 탕건봉이라 불린다. 모양새가 말총을 길게 줄 세워 뜬 탕건과 닮았다고 해서 생긴 이름이다.

1999년 5월 청송군은 탕건봉 수직 벽에 인공폭포를 설치했다. 이 폭포는 여름내 시원하게 쏟아지다가 겨울이면 거대한 빙폭이 된다. 그러면 모험과 스릴을 즐기려는 등반가들이 얼어붙은 폭포를 오르기 위해 이곳으로 몰려든다. 빙벽 등반이란 등반 장비를 갖추고 얼음벽을 오르는 행위다. 자신이 오르는 곳이 곧 길이 된다. 빙벽은 한번 얼어서 변하지 않는 것이 아니고, 날씨에 따라 날마다 해마다 다르게 녹고 얼기 때문에 빙벽을 오르는 것은 항상 새로운 일이기도 하다.

탕건봉에서 약 500m 떨어진 골짜기에도 거대한 빙벽이 있고 그 앞에는 특수 제작된 국제 규모의 아이스클라이밍 전용 경기장이 아찔한 높이로 서 있다. 겨울이면 이곳에서 전국 아이스클라이밍 선수권대회와 아이스클라이밍 국가대표 선발전, 아이스클라이밍 월드컵과 아시아선수권 대회, 전국동계체육대회 산악부문 아이스클라이밍 경기 등이 열린다. 봄, 여름, 가을철에는 빙벽 등반 장비를 이용해 자연암벽과 인공 구조물을 혼합 등반하는 '드라이툴링' 대회도 개최하고 있다. 경기장 앞에는 지상 3층 규모의 청송 아이스클라이밍센터가 자리한다. 내부에는 운영본부 사무실, 사진 전시장과 프레스센터, 4-D체험장, 로커룸, 샤워장, 화장실, 농산물 홍보 및 판매장, 특산물 전시장 등의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다. 또한 실내외 관람석이 설치되어 관람객들의 눈높이에 맞는 관람 환경을 제공한다. 멋진 빙벽을 두고 왜 인공 경기장에서 경기를 치르는지 궁금할 수도 있겠다. 얼음은 기후나 환경으로 인한 제한이 많고 선수들의 출전 순서에 따라 상태가 달라진다. 빙질의 차이는 순위에 큰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동일한 루트에서 진행할 경우 공정한 평가가 불가능하다. 청송 얼음골에 조성된 아이스클라이밍 경기장과 부대시설은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얼음골 탕건봉 62m 높이 암벽
스릴 즐기는 겨울 등반가 성지
인근 클라이밍 전용 경기장은
아시아 지역 최초 월드컵 열려
세계대회 기준으로 꼽히기도



◆국제산악연맹이 인정한 세계 최고의 대회

스포츠 경기로서 아이스클라이밍의 시작은 1912년 이탈리아 쿠르마이어 지방의 브렌바 빙하에서다. 이후 러시아, 프랑스, 슬로베니아, 오스트리아, 캐나다 등 세계 각국에서 진행되다가 2000년 이탈리아의 코르티나 대회에서 국제적인 월드컵 경기로 발전, 2002년부터 국제산악연맹(UIAA)이 주관해 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UIAA 아이스클라이밍 월드컵' 대회는 2009년부터 프랑스의 쿠르슈벨과 이탈리아 코르티나, 오스트리아의 피츠탈, 러시아의 키로프 등 유럽의 4개 지역을 순회하면서 매년 열리고 있으며 아시아지역에서는 2011년 대한민국 청송 얼음골에서 처음으로 열렸다.

'UIAA 아이스클라이밍 월드컵'은 세계랭킹에 올라있는 전 세계 유명 선수들이 참여하는 대회다. 2011년부터 5년간 청송 얼음골에서 매년 열린 아이스클라이밍 월드컵 대회는 세계인들의 관심과 이목을 끌었다. 이후 2016년부터 2020년까지 5년간 재유치가 확정되었고 다시 2025년까지 재연장되면서 청송군은 명실상부한 빙벽 등반의 성지이자 산악 스포츠 메카로 자리 잡게 됐다. 지난 '2020 청송 아이스클라이밍 월드컵'의 대회장 자격으로 참석한 국제산악연맹(UIAA) 부회장 졸자르갈 반즈락크(Zoljargal Banzragch)는 인터뷰에서 "운영팀 조직이나 미디어 관리, 경기 진행 등의 수준이 매우 뛰어나다. UIAA는 청송 아이스클라이밍 월드컵을 전 세계 월드컵 대회의 기준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2023 청송 UIAA 아이스클라이밍 월드컵

'2023 청송 아이스클라이밍 월드컵 & 아시아선수권대회'가 지난 1월13일 금요일부터 15일 일요일까지 사흘간 열렸다. 현재 UIAA아이스클라이밍월드컵은 국제산악연맹(UIAA)·아시아산악연맹(UAAA)·<사>대한산악연맹(KAF)이 공동 주최하고, 청송군과 경북도산악협회에서 공동 주관하며, 문화체육관광부·경북도·대한체육회·국민체육진흥공단 등에서 후원하고 있다. 종별은 남자 일반부와 여자 일반부로 나뉘어 있고 종목으로는 아이스클라이밍 리드와 스피드 경기가 있다. 참가 자격은 매 시즌 UIAA 아이스클라이밍 라이선스를 취득한 만 16세 이상 각국의 남녀 선수들이다. 대회기간 중에는 청송꽃돌전시, 청송백자 전시, 관광 및 특산물 홍보와 청송사과 시식코너, AR기념사진촬영 이벤트 등 누구나 보고 즐길 수 있는 다양한 부대행사도 열린다.

독특한 환경과 장비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먼저 인공 벽에 부착되어 있는 돌 모양의 장치는 '홀드'다. 청송 아이스클라이밍 월드컵에서 예선전 홀드는 청색, 준결승에는 은색, 결승에는 금색 홀드를 일관되게 사용하고 있다. 밧줄에 연결되어 늘어뜨려져 있는 클립 모양의 고리는 '퀵 드로우', 샌드백처럼 매달린 커다란 원통형의 얼음덩어리는 '아이스캔디'다. 선수들이 양손에 들고 있는 낫과 같은 장비는 아이스 클라이밍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아이스바일'이다. 신발은 바닥창이 구부러지지 않는 빙벽 등반 전용이어야 하며 신발에 부착하는 곰 발톱 같은 금속 장비는 미끄러짐을 방지하는 것으로 '크램폰'이라 부른다. 크램폰의 앞쪽 날을 사용해 벽을 찍으며 이동하는 '키킹', 한쪽 다리를 반대쪽 다리에 올려 4자 모양으로 교차시키고 한쪽 팔을 홀드처럼 이용하는 '피겨 포', 한쪽 다리를 같은 쪽 팔 위에 올려 숫자 9 모양을 만드는 '피겨 나인' 등의 동작을 알아두는 것도 좋다.

대회 종목인 '리드'는 '난이도' 종목이라고도 하며 정해진 루트를 주어진 시간 안에 등반하는 경기다. 안전 장치인 로프를 설치된 퀵 드로우에 끼워가면서 세팅된 홀드를 아이스바일을 이용해 타고 올라가 완등 지점까지 클라이밍 한다. 미끄러운 아이스캔디도 리드 종목에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고난 덩어리다. 한 번 떨어지면 다음 기회는 없다. '스피드' 종목은 말 그대로 육상처럼 스피드를 겨루는 경기다. 두 명의 선수가 똑같이 세팅된 두 개의 벽을 각각 타고 누가 더 빠른 시간 안에 완등하는가를 겨룬다.

등반 경기가 펼쳐지는 벽 뒤쪽에는 루트세팅 공간이 있다. 루트세터들은 선수들의 명단을 확인하고 루트 수를 결정한다. 선수들의 실력을 파악하고 있어야 공정한 루트를 만들 수 있다. 특히 특정인의 신체에 유리하거나 불리한 루트를 만들지 않도록 홀드 간의 거리를 신중히 결정한다. 루트세터는 직접 등반을 하며 선수들의 안전과 적절한 경기를 위해 수차례에 걸쳐 홀드와 등반라인의 아주 미세한 부분까지도 검증을 거친다. 월드컵 경기는 세계 정상급 선수들이 기량을 가리기 때문에 고난도의 루트가 주를 이룬다.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선수들이 제 기량을 발휘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선수가 경기 루트에서 흥미와 진지함을 잃지 않도록 해야 한다. 등반자의 긴장감은 지켜보는 이들에게도 온전히 전해지기 때문에 선수와 관중들이 박진감 넘치는 경기를 즐길 수 있게 하는 것도 루트세터들의 일이다. 이러한 조율능력은 루트세터가 가져야 할 중요한 역량이며 다년간의 경험과 감각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한국의 루트세터들은 한국만의 루트 스타일을 발전시켰고 이는 조금씩 유럽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경기 첫날인 13일에는 선수등록과 테크니컬 미팅·개회식이 있었고, 이튿날 남녀 리드 예선과 준결선에 이어 15일에는 종목별 결선과 시상식 등 순으로 진행됐다.

결승에 진출한 선수가 한 명 한 명 소개될 때마다 관중석을 꽉 채운 열기는 더욱 뜨거워진다. 선수의 등반이 시작되면 이내 경기장의 관중들도 몰입하여 선수의 한 동작 한 동작마다 호흡을 함께한다. 마지막 선수가 등반을 이어가면 경기장의 열기는 절정의 끝에 다다른다. 그는 톱 홀드에 아이스바일을 거는 순간 허공을 가르며 떨어진다. 탄성과 환호와 축하의 박수가 터진다. 2024년 겨울 산에 꽃 피는 날이 머지않았다.

류혜숙<작가·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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