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해향교 입구에 위치한 태화루.
4월의 초입,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 옥성리 흥해향교로 향하는 길은 봄의 생기로 가득했다. 비록 이 지역의 명물인 이팝나무 꽃이 만개하기에는 조금 이른 시기였지만, 대신 연분홍 벚꽃이 향교의 고풍스러운 기와지붕과 돌담에 봄의 색을 더하며 방문객을 반겼다. 이팝나무 꽃이 필 때면 하얀 눈 속에 잠긴 듯 변한다는 흥해향교. 비록 지금은 꽃물결을 볼 수 없었지만, 이곳은 단순한 '과거의 유적'이 아닌, 지역 사회와 여전히 호흡하고 있는 '살아 있는 문화유산'의 향기를 품고 있었다.
향교 정문을 들어서니 잘 관리된 푸른 잔디밭이 넓게 펼쳐져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이곳에서 흥해향교의 수장인 박도식 전교를 만날 수 있었다. 전교(典校)는 향교의 모든 업무를 관장하는 책임자로, 오늘날 학교로 치면 학교의 교장 선생님과 같은 직책이다. 박 전교는 흥해향교를 설명하며 가장 먼저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흥해향교는 전통문화를 계승·발전시키고 배움을 이어오고 있는 곳"이라고 강조했다.
그의 말처럼 흥해향교는 박제된 문화재가 아니었다. 조선 시대 교육기관이었던 과거의 명성을 이어받아, 지금도 매주 논어와 맹자 등 유교 경전을 가르치는 인성 및 예절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박 전교는 "오늘도 선현들에게 분향을 진행한다"라며 "단순히 관광하는 곳이 아니라 배움의 불씨가 여전히 꺼지지 않은 공간"이라고 전했다. 또한 향교는 지역민과 함께하는 다양한 행사를 통해 문턱을 낮추고 있다. 유교 전통 제례인 향사(享祀)는 물론, 전통혼례, 어르신들을 위한 기로연(耆老宴) 등 각종 행사를 열며 지역의 전통문화 유산이 살아 숨 쉬는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흥해향교 대성전. 뒤로 이팝나무 군락이 보인다.
이처럼 생동감 넘치는 흥해향교의 역사는 깊다. 조선 태조 7년(1398)에 창건된 것으로 전해지는 흥해향교는 600년 넘는 세월 동안 지역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역사적인 시련도 있었다. 한국전쟁 당시 화마로 인해 건물의 대부분이 소실되는 비운을 겪은 것이다. 다행히도 공자를 비롯한 성현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대성전(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51호)'과 동무는 화를 면해 오늘날까지 그 고귀한 모습을 지키고 있다.
전쟁 속에서도 살아남은 대성전은 그 자체로 훌륭한 건축 유산이자 역사의 증인이다. 향교 건물 중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대성전은 지붕 처마를 받치는 기둥 위에 화려하고 섬세하게 조각한 익공을 장식한 것이 특징이다. 앞면 3칸, 옆면 3칸의 맞배지붕 형태를 띠고 있으며, 기둥 사이에는 위쪽의 무게를 받기 위해 당초무늬와 연꽃으로 화려하게 장식한 꽃받침(화반)을 설치해 시각적인 아름다움과 구조적 안정감을 동시에 꾀했다. 장방형의 넓은 건물 내부 중앙에는 공자를 비롯해 5성을 모시고, 한·중 두 나라 현인 20명의 위패를 모셔두어 유교 문화를 깊이 느낄 수 있다.
이렇듯 깊은 역사를 간직한 향교를 둘러싸고 있는 것이 바로 또 다른 보물, '포항 흥해향교 이팝나무 군락(천연기념물 제561호)'이다. 향교 건립을 기념해 심은 이팝나무의 종자가 떨어져 번식하며 조성된 군락이라 전해진다. 현재 향교 주변과 임허사 인근 구릉지를 따라 수령 100~150년 이상의 노거수 26주가 숲을 이루고 있다. 평균 높이 12.5m, 둘레 2.73m에 달하는 이 이팝나무들은 향교 담벼락과 어우러져 빼어난 자연 경관을 빚어낸다.
흥해향교 명륜당. 이곳은 학업이 이뤄지는 곳이다.
예로부터 선조들은 이팝나무 꽃을 보고 한해 농사의 풍흉을 점치곤 했다. 하얀 꽃이 풍성하게 피면 벼농사가 잘되어 백성들이 쌀밥을 먹을 수 있다고 믿었고, 반대로 꽃이 적게 피면 흉년이 든다고 생각했다. 배고픈 백성들의 염원이 하얀 쌀밥을 닮은 꽃에 투영된 것이다. 이러한 생태적·민속적 가치를 인정받아 이 군락은 2020년 국가지정문화재인 천연기념물로 승격됐다. 박 전교는 "이팝나무 꽃은 보통 4월 말이 절정"이라며 "이 시기에 방문하면 하얀 눈꽃처럼 소복하게 핀 아름다운 군락을 만끽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1991년부터 해마다 5월이면 주민들이 직접 흥해이팝청년회 주관으로 이팝꽃 축제를 열었으나 최근에는 그 명맥이 끊긴 것으로 보인다.
답사를 마무리하며 잔디밭을 가로질러 향교 남쪽의 태화루에 올랐다. 태화루 난간에 서니 잘 정돈된 흥해읍내의 모습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옛 선비들이 이곳에 올라 학문을 논하고 지역의 앞날을 걱정했을 모습을 상상하니, 흥해향교가 품고 있는 시간의 무게가 느껴졌다.
흥해향교를 둘러싸고 있는 이팝나무 군락. 수령 100년을 넘어 그 높이가 평균 12.5m에 달한다.
전란의 화마 속에서도 굳건히 자리를 지킨 흥해향교 대성전과 그 곁에서 해마다 잊지 않고 하얀 꽃을 피워내는 이팝나무들. 그리고 여전히 그곳에서 논어와 맹자의 말씀을 읽으며 전통의 맥을 잇고 있는 사람들. 이들은 단순한 과거가 아니라, 포항 시민들의 삶 속에서 함께 호흡하고 배우는 '살아 있는 우리 동네 문화유산'이었다. 비록 이번에는 하얀 꽃물결을 보지 못했지만, 다시 찾아올 4월 말, 600년 세월의 향기와 이팝나무의 향기가 함께 어우러질 그날을 기대해본다.
전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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