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문화예술진흥원 전경. <대구문화예술진흥원 제공>
대구문화예술진흥원이 전국 주요 광역 문화재단 중 가장 큰 규모의 예산을 운용하면서도 정작 지역 예술인을 위한 창작 지원 비중은 최저 수준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예산 중 예술인 직접 지원 비중이 3% 미만이며, 절대 금액으로 따졌을 경우 서울의 3분의 1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 홍준표 전 대구시장 재임시절 단행된 무리한 기관 통합으로 조직이 비대해지면서 조직 유지비와 건물 관리비 등 고정적 지출이 늘어난 반면, 정작 '지역 예술 생태계 진흥'이라는 문화재단 본연의 기능은 크게 위축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주요 광역 문화재단 예산 비교 그래프. <생성형 AI, chatGPT>
14일 영남일보가 대구문화예술진흥원(이하 진흥원)과 서울·부산·인천·광주·울산 등 주요 광역 문화재단의 예산과 세부사업을 비교 분석한 결과, 진흥원의 예산 구조는 지역 문화예술 지원이라는 설립 목적이 무색할 정도로 시설 관리와 조직 유지에 비정상적으로 치우쳐 있었다.
진흥원의 올해 예산은 1천79억원으로 타 특별·광역시 문화재단 가운데 가장 많았다. 타 시도 문화재단의 올해 예산액은 부산문화재단 668억6천832만원, 서울문화재단 600억7천935만1천원(지출 기준), 인천문화재단 548억3천579만7천원, 울산문화관광재단 344억8천837만6천원, 광주문화재단 326억3천509만3천원 등의 순이었다.
◆예산 규모는 최대, 창작지원 비중은 낮아
진흥원은 예산 총액에서 주요 광역 문화재단을 앞섰지만, 알맹이인 창작지원 비중에서는 서울 등 타 문화재단과 큰 격차를 보였다.
특히 서울문화재단과 비교하면 차이는 극명하다. 서울문화재단은 총 예산(600억7천935만1천원)에서 운영비 225억7천935만1천원을 제외한 375억원을 사업비로 사용하고 있다. 이 중 예술창작지원 공연예술분야 44억8천만원, 예술창작지원 시각 외 분야 59억7천만원 등 순수 창작지원 예산만 약 105억원에 달한다. 이는 전체 예산 대비 17.5% 수준이다.
반면 진흥원의 예술인 직접 지원 예산은 '지역문화예술특성화' 18억원, '공연장상주단체육성지원' 2억5천만원, '문화예술인가치확산' 2억5천만원, '기초예술진흥' 1억5천만원 등을 포함해 31억2천400만원에 불과하다. 전체 예산의 고작 2.9% 수준으로, 절대 금액으로도 서울문화재단의 3분의 1을 밑돈다.
과거 대구문화재단 단일 기관 예산 기준으로 예술인 직접 지원 비중이 적게는 23%, 많게는 32% 수준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통합 이후 문화재단 본연의 지원 기능이 상대적으로 축소됐다는 지적에 힘이 실린다.
한혜인 서울문화재단 예술지원정책팀장은 "서울문화재단은 재단의 존립 근거 자체가 예술인 지원인 만큼 예산이 삭감되더라도 이 비중을 줄이지 않겠다는 방향성을 갖고 있다"며 "예술가 수요가 많고 경쟁률도 높은 만큼 시와 시의회에 창작지원 예산의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설명하고 있다"고 말했다.
◆타 광역재단은 청년·창작 생태계로 확장
진흥원의 예산 구조가 다른 광역 문화재단과 다른 가장 큰 이유는 오페라하우스, 미술관, 박물관 등 여러 문화시설의 운영 예산을 함께 떠안고 있는 통합기관이라는 점이다. 시설 관리 예산은 한번 편성되면 줄이기 어려운 경직성 예산이다. 예산 총액은 확대됐지만, 인건비와 시설 유지비를 제외하면 새로운 문화적 흐름에 대응할 수 있는 가용예산은 크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반면 일부 광역 문화재단은 예산 확대 과정에서 시설 관리 같은 하드웨어가 아닌, 창작 생태계 조성과 청년 예술인 지원, 창작공간 활성화 등 소프트웨어 사업에 무게를 두고 있다.
인천문화재단은 예산을 급격히 늘리면서도 '예술생태계 선순환 구조 강화' 사업에 별도 예산을 편성하고 있다. 인천문화재단의 예산은 2017년 107억원에서 올해 548억원으로 5배 이상 급증했다. 이 중 '예술생태계의 선순환 구조 강화' 예산은 77억9천만원이다. 이 안에는 예술창작의 전문성 강화 지원 43억4천200만원과 지속가능 예술활동 기반 마련 22억4천만원 등이 포함됐다. 신미래 인천문화재단 전략기획팀 대리는 "신인·청년 예술인부터 원로 예술인까지 단계별 지원 체계를 두고 있다"며 "일반지원(약 24억원)과 집중지원(약 7억원) 사업을 병행해 예술인들이 보다 안정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부산문화재단 역시 청년과 창작공간을 중심으로 지속가능성에 투자하고 있다. 부산문화재단의 예산은 2017년 311억원에서 올해 668억원으로 2배 이상 늘었다. 예산 증가와 함께 '청년문화 육성지원'을 매년 9~15억원 규모로 유지하고 있고, '부산문화예술지원'을 통해 예술가의 창작주기별 지원 체계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예산을 배정하고 있다. 특히 부산문화예술지원 사업은 2017년 42억2천만원 규모에서 꾸준히 증가해 2023년부터는 매년 10억원씩 증액됐으며, 올해는 100억원 확보를 목표로 하고 있다.
안혜인 부산문화재단 소통홍보팀 과장은 "예술인의 나이가 아니라 창작 준비, 활동 실현, 유통·확산 등 창작 주기별로 지원하고 있다"며 "청년문화팀을 중심으로 39세 이하 청년 예술인의 창작과 민간협업, 국제교류까지 지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황보란 대구시 문화체육관광국장은 "시설이 많아 조직 규모는 크지만 사업비는 상대적으로 적게 느껴지는 구조"라며 "창작지원 예산이 부족했다는 점에 공감하고 있으며, 청년·지역 예술인을 위한 공모사업과 레지던시 사업 확대를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통합 명분 '효율성'엔 의문부호…기관별 분절 구조 여전
당초 대구시가 공언한 진흥원 통합의 명분은 효율성 제고와 시너지 창출이었다. 하지만 현재 진흥원의 예산 배정 방식은 기존 기관들의 예산을 단순히 합쳐놓은 '물리적 결합'에 가깝다는 비판이 나온다. 예산을 통합했다면 행정 비용이 절감되거나 사업 간 융합 효과가 나타나야 하지만, 현재 예산 항목에서는 통합 효과를 뚜렷하게 확인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진흥원 사업별 예산 내역을 살펴보면 '콘서트일반운영' 33억4천851만7천원, '회관일반운영' 16억7천146만원, '미술관일반운영' 17억6천700만원 등 통합 전 각 기관의 예산 항목이 여전히 분절적으로 남아 있다.
반면 문화재단, 오페라하우스, 관광재단 등의 기능을 융합한 새로운 복합사업이나 통합 효과를 보여주는 예산 항목은 뚜렷하게 확인되지 않는다. 조직은 통합됐지만 예산 집행의 효율성이나 사업 간의 화학적 결합은 여전히 미흡하다는 비판이 나오는 대목이다.
문무학 전 대구문화재단 대표는 "예술 분야는 통합보다는 각 장르의 특성을 살리는 방향이 중요하다"며 "통합 이후 각 기관장들의 책임 의식이 오히려 약해진 측면도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전 문화예술기관장은 "효율성 증대를 위한 통합을 하려면 사전에 정확한 진단과 해석, 그에 따른 방안이 있어야 했다"며 "성격과 질적 구조가 다른 기관들을 강제 통합하다 보니 마찰이 컸고, 인건비가 늘어나면서 사업비는 줄어드는 결과가 됐다. 결국 예산의 효율성도, 질적·화학적 통합도 이루지 못한 셈"이라고 꼬집었다.
박재환 전 대구문화예술회관장은 "통합 당시 예술인 의견 수렴이 부족했고, 성격이 다른 기관들을 통합하면서 인사 이동, 사업 진행 등 운영에 문제가 발생했다"며 "현재 구조는 사무실만 같이 쓰는 수준에 가깝다. 관광재단과 박물관 등은 분리해 각 기관의 장점을 살리는 방향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대구시는 통합 효과의 한계를 인정하면서 현재 진행중인 진흥원 조직진단 용역 결과에 맞춰 조직개편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황보 국장은 "시립예술단 통합 운영이나 일부 협업 사업 증가 등 긍정적 효과도 있었다"면서도 "전문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인사 이동, 조직 비대화에 따른 결재 라인 증가 등 한계도 있었다. 이런 문제의식 속에서 조직개편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기관별로 예산이 나뉘어 있는 데 대해서는 "기관별 특성과 업무성격이 달라 전문성을 살리기 위해 기관별로 나눠 운영하게 된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권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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