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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혜진작가·이음발달지원센터 대표 |
지난주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전국에서 치러졌다. 모든 수험생이 그동안 최선을 다해 공부한 결실을 보는 날이었다. 하지만 모든 고3이 수능과 입시를 치르지는 않는다. 경계선 지능인(느린학습자) 진주도 그중 한 명이다. 진주는 IQ 75로 지적장애는 아니지만, 평균에 미치지 못하는 지적 능력을 가지고 있다.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지만, 공부를 따라가기 어려웠다. 대부분의 수업이 진주에게는 이해되지 않는 수업이었다. 또래 친구들이 수시 원서를 쓰고, 수능을 준비하고, 진로를 정할 때 진주의 고민은 깊어져 갔다. 치료실에 온 진주에게 물었다.
"진주는 고등학교 졸업하면 뭘 하고 싶니?"
"선생님, 저는 하고 싶은 것이 없어요."
한창 하고 싶은 것도, 꿈도 많을 나이인데…. 진주는 하고 싶은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대답했다. 정말 하고 싶은 것이 없었을까? 아니다. 어렸을 때부터 차곡차곡 쌓인 실패의 경험과 부정적 피드백이 어느덧 해도 잘하지 못하는 아이로 자신을 인식해 버리기 시작한 것이다.
진주와 '완두'라는 그림책 한 권을 읽었다. 완두는 아주 작은 아이로 태어났다. 남들보다 몸집이 작아 화장실 세면대를 수영장처럼 사용했고, 장난감 자동차를 타고 다녔다. 완두는 학교에 갈 나이가 되어 친구들처럼 학교에 입학했다. 하지만 완두에게 책상과 의자는 너무 컸고, 급식도 양이 너무 많았다. 더구나 공놀이는 공포 그 자체였다. 그래서 완두는 늘 혼자였다. 그런 완두가 학교를 그만두고 자신만의 회사를 만들었다. 그 회사는 바로 우표를 만드는 회사였다. 남들보다 몸집이 작은 완두가 그릴 수 있는 그림이 바로 우표였다. 완두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즐겁게 인생을 살아간다. 책을 읽은 후 진주는 완두가 우표 그리기를 하는 모습을 보더니 활짝 웃으며 손뼉을 치며 말했다.
"와! 정말 딱 맞는 일을 찾았네!"
며칠 전, 카페에서 진주를 우연히 만났다. 카운터에서 음료를 주문했는데, 누가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것이었다. 익숙한 목소리에 놀라 고개를 들어보니 진주가 멋진 바리스타 앞치마를 하고 주문을 받고 있었다. 한 기업에서 제공한 느린학습자 청년들의 일 경험 프로그램을 통해 카페 아르바이트를 하는 중이었다. 손님들께 주문받고, 주문 내용을 기계에 천천히 입력했다. 그리고 주문서를 보며 음료를 만들었다. 중간중간 조금씩 도움을 받는 듯했지만, 진주의 표정은 밝고 행복해 보였다. 음료를 만드는 진주를 보며 나는 그림책에서 우표를 그리던 완두의 모습이 떠올랐다. 조금은 느리지만, 자신의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진주의 내일을 응원한다.
김혜진<작가·이음발달지원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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