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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경<이선경가곡연구소 대표> |
여름이 되면 숲과 샘물이 등장하는 가사 덕에 한국가곡 '아무도 모르라고'를 자주 부르게 된다. 이 곡은 작곡가 임원식이 23세였던 1942년 일본 도쿄고등음악학교 유학 시절, 파인 김동환의 시 '아무도 모르라고'를 가사로 삼아 만든 가곡이다. 피아노를 전공한 그는 졸업 이후 지휘자로 활약하였는데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교향악단인 KBS교향악단의 1956년 창단 초대 지휘자가 바로 작곡가 임원식이다. 1957년 작곡된 현충일 노래도 그의 작품이다.
"떡갈나무 숲속에 졸졸졸 흐르는/ 아무도 모르는 샘물이길래/ 아무도 모르라고 도로 덮고 내려오지요./ 나 혼자 마시곤 아무도 모르라고/ 도로 덮고 내려오는 이 기쁨이여!"
이 곡은 참 아이러니한 부분이 많다. 이상한 화음이 불쑥불쑥 튀어 나오고 4/4박자로 평안히 가던 곡이 3/4박자로 절룩거리기도 한다. 도대체 왜 그런 걸까?
역시 해답은 '가사'에 있다. 떡갈나무 숲을 천천히 거니는 모습을 느긋한 선율에 담고 저 샘물을 나 말고 누가 볼까 하는 두근거림을 불협화음으로, 몰래 마시고 기뻐하며 얼른 내려오는 모습을 짧은 변박으로 표현한 작곡가의 의도가 읽힌다. 한국가곡의 가사는 대체로 그리움, 사랑, 이별 등 그윽하고 아련한 소재들이 대부분인데 이 곡은 참 독특하면서도 익살스럽다. 많은 한국가곡 중 거의 유일한 얄미운(?) 노래가 아닐까 싶다. '좋은 것은 좀 나누지…' 하는 생각이 부를 때마다 들게 하는 것이 이 곡의 숨은 의도였을까 하는 재미있는 추측을 해본다.
노랫말처럼 나만 알게 살짝이 덮어두는 은밀함을 즐기는 것은 누구나 다 가진 본성이다. 언젠가 나만의 능력, 나만의 성적, 나만의 재능이 중요했던 시기가 있었다. '세상은 몇 명의 천재가 이끌어 간다'는 말이 있었듯이 뛰어난 지능과 재능을 가진 천재들이 그린 미래의 그림이 실로 혁신의 밑그림이 되었다. 그러나 챗GPT의 등장 이후 나만 알고 있던 정보는 모두가 공유하는 정보가 되어버렸고 새로운 창조마저도 이에게 맡기고 있다.
이제 사회는 개인의 능력 범위로는 불가능했던 것들이 공동체를 이루어 여러 사람들의 역량과 협력으로 해결하고 생각 이상의 긍정적인 결과를 도출하는 이른바 '집단지성'에 주목하고 있다. 예술계에서도 그러하듯 다원예술이라는 새로운 움직임도 바로 집단지성의 한 결과이다. 서로가 협력하려면 타인의 말에 공감할 수 있어야 하고 공감하려면 듣는 귀가 먼저 열려야 한다. 합창에서도 어울리는 음을 내려면 음정을 맞추는 개인의 능력에 앞서 타인이 내는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 들음은 존재를 인정할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모두 다름을 인정하고 아낌없이 내어주는 나무처럼 각자 가진 것들을 아낌없이 꺼내며 상대의 재능에 기뻐하며 그것에 대해 귀함을 인정하고 서로 감사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내가 가진 재능을 키우고 가꾸는 것은 나에게도 소중한 일이며 결국 예술공동체의 소중한 자산이 된다. 나눔은 결코 버리는 것이 아니라 모으는 것의 시작이다.
작은 샘물을 발견하고 기뻐하는 소박한 시인의 뜻이 왜곡되었을까 염려되지만 생각의 자유를 시인도 존중할 거라는 믿음에 편안히 펜을 놓는다.
이선경<이선경가곡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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