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돌아오라 소렌토로

  • 이선경 이선경가곡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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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8-08  |  수정 2024-08-08 07:37  |  발행일 2024-08-08 제14면

[문화산책] 돌아오라 소렌토로
이선경 (이선경가곡연구소 대표)

삼복더위에 서늘함이 웬 복이냐! 얇은 이불을 꺼내서 덮으니 딱 좋다. 올해엔 가을이 일찍 오려는가? 에어컨을 꺼도 조금 서늘한 기운이 들어 솜이 살짝 든 이불을 꺼냈다. 근데 뭐가 좀 이상하다. 시간이 갈수록 한기가 들고 콧김이 뜨끈해진다.

"몸이 화낸지 좀 되셨네요. 잘 놀면서 살아야 해요. 다 내려놓고 푹 좀 쉬세요."

병원 문열기를 기다려 만난 의사선생님의 강권에 일년을 기다린 전국 곳곳의 하계세미나를 눈물을 머금고 모두 물렸다. 오르락하던 열은 삼시세끼 시간 꼭 지킨 밥과 항생제 덕분에 며칠 만에 꼬리가 잡혔다. 약 끝의 쓴 입에 식욕도 슬쩍 가주시니 몸도 가벼워졌다. 꽤 괜찮은 집캉스다.

며칠을 누워 지내니 어느새 내 손에 TV 리모컨이 딱 붙어 있다. 평소 TV와는 담을 쌓고 지냈는데 어디 가지도 못하는 신세에 그간 못봤던 영화나 실컷 보자 싶어 긴 소파를 하나 들여 TV 앞에 아예 드러누워버렸다. 식 때가 되어 TV를 잠시 멈추고 주방에 다녀오니 화면이 멋진 풍경으로 어느새 바뀌어 있다. 눈이 시원하게 바다가 푸르고 항에는 요트가 즐비하며 해안선 절벽을 따라 지어진 집들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여기가 어딘가 싶어 자막을 보니 이탈리아 소렌토란다. 노래만 불렀는데 여기가 이리도 멋진 곳이었구나!

"아름다운 저 바다와 그리운 그 빛난 햇빛… 이곳을 잊지 말고 돌아오라 소렌토로 돌아오라 "

1902년, 이탈리아 총리가 휴가 여행 중 소렌토에 잠시 머물게 되었다. 이때만 해도 이탈리아 남부의 작은 도시 소렌토는 길도 제대로 놓여있지 않았고 낡은 집들에 하수도 시설도 부족한 낙후된 곳이었다. 총리가 머문 호텔은 당시 소렌토 시장(市長) 트라몬타나가 소유한 곳이었는데 트라몬타나는 이 기회를 놓칠세라 영접에 최선을 다했고 결국 소렌토를 위한 경제적 지원 약속을 총리에게 받아내었다. 트라몬타나는 혹여 이 약속을 지키지 않을까 염려되어 친구에게 기억할 수 있는 노래를 써달라 요청했고 불과 몇시간 만에 곡이 완성되었다. 총리에게 들려준 이 곡이 바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탈리아 칸초네 '돌아오라 소렌토로(Torna a Surriento)'이다.

소렌토를 기억하게 하기 위해 지어진 노래여서일까? 1절에는 소렌토의 중요 농산물인 오렌지가, 2절에는 시레나(Sirene)가 등장한다. 소렌토 앞바다의 전설 속 주인공 '시레나'는 몸통은 새, 머리는 여자로 아름다운 노래를 불러 이곳을 지나는 뱃사람의 정신을 빼앗아 바위에 부딪혀 죽게 한 마녀다.

'시레나의 땅'이라는 뜻으로 수렌툼(Surrentum), 나폴리 사투리로 수리엔토(Surriento)라 불러 지금의 소렌토가 되었다고 하는데 노래까지 마련한 시장의 정성 덕분에 지금의 멋진 소렌토가 된 것은 아닐까?

"비데오 마레 꽌떼 벨로~" 눈을 감고 부르니 달콤한 오렌지 향기가 코 끝에 닿고 깎아지른 소렌토 절벽 해안 풍경이 바로 내 옆이다. 세미나 대신 소렌토라… 나름 괜찮은데? 설레는 맘에 노래 한 곡 실컷 부르고 눈을 뜨니 달력이 커다란 숫자로 나를 부른다. "돌아오라~ 일상으로 돌아오라~"

이선경<이선경가곡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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