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만진의 문학 향기]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2>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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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6-05 19:56  |  발행일 2025-06-05
정만진 소설가

정만진 소설가

1779년 6월6일 푸시킨이 태어났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슬픈 날을 참고 견디면 기쁜 날이 오는 법/ 마음은 미래에 살고 현재는 끝없이 우울한 것/ 지금의 순간들이 사라지고 나면 지나간 모든 것이 다 그리움이 되리".


우리나라 사람들이 몹시 좋아하는 시 중 한 편인 푸시킨의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이다. 그와 견줄 만큼 유명한 한국시로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그네' '진달래꽃' '서시', '향수' '광야'와 '청포도' 등을 들 수 있겠다.


시인들의 이름을 생략한 것은 한국인 대부분이 각 시의 작자를 익히 알고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광야'와 '청포도'의 시인이 누구냐 물으면 곧장 "이육사"라는 대답이 돌아오리라. 그런데 이육사는 시인이기 전에 대단한 독립운동가였다.


이육사는 40년 생애 중 17번이나 투옥된 끝에 결국 옥사했다. 그런 이육사를 기려 지난 5월17일 '이육사 탄생 121주년 기념 행사'가 대구 시내 모처에서 열렸다. 본디 1904년 5월18일 태어나셨지만 행사는 어째서인지 하루 전인 17일 개최되었다.


그래도 이육사에 대한 애정을 고이 간직한 사람들이 음악과 식순을 준비해 그같은 모임을 가진다는 사실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그런 이들이 있어 공동체가 유지된다. 공자가 육예(六藝)에 악(樂)과 예(禮)를 넣은 것도 그런 인식의 결과였을 터이다.


다만 아쉬운 바는, 참여자들이 주최 측 인사들, 진행 요원들, 축사를 맡은 '단체 대표'들, 연주자들 등을 제외하면 30여 명뿐이었다는 사실이다. "하늘이 처음 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같은 절규가 무색할 지경이었다.


온 국민이 다 아는 민족시인 이육사를 기려 마련된 행사에 일반시민은 물론 공인들과 문인들조차 오지 않는 이 현상,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푸시킨의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라는 시구는 예언이었던 것일까?


물론 논리가 타당성을 획득하려면 일반화를 이뤄야 한다. 이육사 탄생일인 (1904년) 5월18일보다 나흘 뒤인 (1901년) 5월22일은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이상화 탄생일이었다. 그래서 '이상화 탄생 124주년 기념 심포지엄'이 열렸다.


참석자 수는? 역시 극소수였다. 대구 시민 235만명은 모두 어디에 갔을까? '광야'나 '빼앗긴 들'에서 "작은 노래의 씨앗"을 뿌리며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을 맞이할 준비가 너무 바빠 도저히 짬을 낼 수 없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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