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문화는 사람에게 남는다

  • 김은지 독립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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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2-25 06:00  |  발행일 2026-02-25
김은지 독립 큐레이터

김은지 독립 큐레이터

전시는 끝난다. 공연도 막이 내리고, 프로그램도 일정이 마무리되면 기록 속으로 들어간다. 문화예술은 늘 일정표 위에서 시작해 일정표 위에서 끝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시간이 조금 흐른 뒤에야 알게 된다. 남는 것은 형식이 아니라, 그때의 감각이라는 사실을.


누군가는 작품 앞에서 잠시 멈춰 서 있던 기억을 떠올리고, 누군가는 설명을 다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움직였던 순간을 기억한다. 또 다른 누군가는 아이와 함께 전시장 바닥에 앉아 나눈 짧은 대화를 떠올릴지도 모른다. 문화예술은 그 순간을 정확히 설명하지 못해도, 각자의 자리에서 조용히 남는다.


지역에서 문화예술을 경험한다는 것은 거창한 사건을 만나는 일이라기보다, 반복해서 마주치는 장면을 쌓아가는 일에 가깝다. 동네의 작은 전시, 익숙한 공연장, 몇 해에 걸쳐 다시 만난 작가의 작업. 그렇게 이어지는 만남 속에서 우리는 조금씩 안목을 기르고, 취향을 다듬고, 질문하는 방식을 배운다. 문화는 그렇게 삶의 속도에 맞춰 스며든다.


기획자로 일하며 나는 전시의 완성도나 프로그램의 구성만큼이나, 그 이후에 무엇이 남는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많은 고민과 선택 끝에 만들어진 결과물도 중요하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그것이 누군가의 하루에 어떤 파장을 남겼는지다. 문화예술이 개인의 기억 속에서 다시 해석되고, 일상의 언어로 바뀌는 순간, 그것은 비로소 살아 있는 경험이 된다.


기술은 변하고, 형식은 새로워지며, 트렌드는 빠르게 교체된다. 지역 문화예술의 조건 또한 계속 달라질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변화 속에서도 한 가지는 분명하다. 문화예술은 사람을 통과해 남는다는 사실이다. 구조와 제도, 공간과 예산을 넘어, 결국 감각과 태도로 남는다.


지역에서 문화는 단순한 소비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경험하고 공유하는 시간의 흐름이다. 우리는 그 시간을 통해 서로의 생각을 듣고, 다른 관점을 배우며, 조금은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문화가 사람에게 남는다는 말은, 곧 사람이 문화를 통해 조금씩 변화한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어떤 문화를 기억하게 될까. 그리고 그 기억은 우리를 어떤 사람으로 남게 할까.


이제 곧 봄이다. 계절이 바뀌듯 우리의 일상도 조금씩 다른 빛을 띠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그 변화 속에서 문화는 다시 우리 곁에 머물며 또 다른 감각을 선사해 줄 것이다.


김은지<독립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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