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미 작곡가·예술기획자
최근 나는 자신을 스스로 '3차 사춘기'라고 부른다. 사춘기가 한 번으로 끝난다는 법은 없지 않은가. 남들처럼 10대에 한 번, 20대 중반에 한 번을 지나왔고, 그리고 지금 또 한 번의 혼란을 겪고 있다.
그래서인지 요즘 사람들을 만나면 꼭 묻게 되는 질문이 생겼다. "너는 사랑이 뭐라고 생각해?" 친한 친구는 그런 걸 묻는 걸 보니 사춘기가 맞는 것 같다며 웃었다. 나 역시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괜히 진지해진 사람이 된 것 같기도 하다.
이 질문을 던지게 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중학교까지 살던 곳을 떠나 예술고등학교에 진학하며 가족과 함께 큰 도시로 이사를 했다. 그러나 적응하지 못해 결국 학교를 그만두었다. 나의 선택 하나로 가족 모두가 새로운 환경에 놓이게 되었고, 그 시간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아버지는 전형적인 경상도 가장이었다. 말수가 많지 않고 표현도 서툰 분이었다. 그런데 내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시고는 달라지셨다. 가족 상담을 함께 가자고 먼저 말씀하셨고, 나를 이해하려 애쓰셨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알았다. 사람이 바뀌는 순간을 눈앞에서 본다는 것이 어떤 일인지. 그 경험 이후 나는 사랑에 대해 나름의 기준을 갖게 되었다. "누군가를 위해 나를 바꿀 수 있는 것." 다소 거창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은 사랑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자 또 다른 질문이 생겼다. "내가 아무리 나를 바꾸어도, 상대가 그것을 원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사랑일까?" 그 물음은 자연스럽게 최근 나의 고유한 질문이 되었다. 커피를 마시는 자리에서도, 술자리에서도 종종 꺼내는 화두가 되었다.
어떤 이는 자신의 아들 이름을 말했다. 또 다른 친구는 "상대에게 다 주고 싶은 것"이라고 했다. 누군가는 사랑받을 때를 떠올렸고, 누군가는 사랑을 주고 싶어질 때를 이야기했다. 생각보다 사람마다 사랑의 결이 달랐다. 가장 인상 깊었던 대답은 어머니의 말이었다. "사랑은 결국 거리 조절이다." 가까워질수록 더 조심해야 하고, 오래 갈수록 더 예의를 지켜야 한다는 뜻이었다. 어릴 때는 차갑게 들렸던 말이 이제는 조금은 이해된다.
질문을 던질 때마다 나는 타인의 마음을 잠시 들여다보는 기분이 든다. 사랑이라는 단어 하나가 각자의 삶 속에서 얼마나 다른 의미로 자리하고 있는지도 새삼 알게 된다. 나는 작곡을 하는 사람이기에, 어떤 감정이 차오를 때면 그것을 음악으로 남기고 싶어진다. 아직 사랑을 다 알지는 못하지만, 언젠가 이 다양한 질문과 대답들이 내 음악 속에 스며들기를 바란다. 어쩌면 나의 3차 사춘기는 사랑을 다시 배우는 시간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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