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미 작곡가·예술기획자
어떤 사람에게 곡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일은 일상의 한 부분이다.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생각을 작품으로 옮기며 창작을 이어 간다. 반면 어떤 사람은 작품을 '내 새끼'라고 부를 만큼 깊은 고민과 산고를 거쳐 하나의 결과물을 만들어 낸다. 굳이 나누자면 나는 후자에 가까운 편이다.
열네 살에 작곡을 처음 배웠을 때 가장 먼저 배운 것은 뜻밖에도 연필을 깎는 방법이었다. 악보를 그리는 연필은 둥글게 깎지 않는다. 심을 직육면체 모양으로 깎아 두꺼운 면과 뾰족한 면을 나누어 사용한다. 그 연필로 높은음자리표와 낮은음자리표를 공책 한 페이지 가득 그려 오는 숙제가 이어졌다.
그렇게 악보를 그리는 법을 배우고, 음이 어떻게 태어나며 어떤 음과 어떤 음이 만나 새로운 소리를 만드는지 하나씩 익혀 갔다. 작곡을 시작하고 한동안은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을 어떻게 밖으로 꺼내는지 배우는 시간이었다.
입시를 지나 대학에 가게 되면 또 다른 단계가 시작된다. 음악 문법이 몸에 익으면 떠오르는 선율을 자연스럽게 곡으로 이어 쓸 수 있게 된다. 문법에 맞는 문장이 자연스럽게 나오듯 음악도 어느 정도는 매끄럽게 흘러간다.
하지만 그때부터 새로운 고민이 시작된다. 어떻게 곡을 끌고 가야 감동을 줄 수 있을까. 나는 어떤 소리를 좋아하는 사람일까. 무엇을 표현하고 싶은 걸까. 그 질문 앞에서 흔히 말하는 창작의 고통이 찾아온다.
예전에 성악가 선배와 작곡가 선배 두 사람과 이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성악가에게 무대에 서는 일이 몸을 쓰는 노동에 가까운지, 머리를 쓰는 일에 가까운지 물었다. 그 선배는 둘 다라고 말했다. 노래는 몸으로 하지만 음악을 해석하는 일은 머리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작곡은 어떨까. 한 작곡가 선배는 "나는 머리를 쓰는 일이 거의 전부"라고 답했다. 그런데 나는 조금 다른 편이다. 머리는 서른쯤, 나머지 일흔은 체력을 쓰는 느낌이다. 오래 앉아 고민하다 보면 결국 체력으로 버티며 선율을 짜내는 순간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어떤 날은 건반 앞에 오래 앉아 있어도 아무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런데 며칠 동안 전혀 생각나지 않던 선율이 어느 날 갑자기 엉뚱한 곳에서 떠오르기도 한다. 길을 걷다가, 버스를 타다가, 전혀 음악을 생각하지 않던 순간에 문득 나타난다.
그래서 창작이라는 일이 참 신기하게 느껴진다. 논리로 설명할 수 있는 부분도 분명 있지만, 곡을 쓰는 과정을 온전히 말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오래 앉아 있다고 해서 되는 일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일도 아니다.
작곡가들은 그저 다시 선율이 떠오를 순간을 기다리며 곡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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