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유배지를 찾아서]②영화가 깨운 유배의 기억, 영양은 절의와 문학으로 답한다

  • 정운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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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3-19 17:29  |  수정 2026-03-19 22:02  |  발행일 2026-03-19
현리의 고적에서 주실의 종택, 감천의 생가까지…산골에 남은 선비의 시간
영양군 감천마을의 오일도 생가. 지금은 친척 내외가 살고 있지만 아직까지 오일도 생가로서 많은 문인들이 이곳을 찾고 있다.<정운홍기자>

영양군 감천마을의 오일도 생가. 지금은 친척 내외가 살고 있지만 아직까지 오일도 생가로서 많은 문인들이 이곳을 찾고 있다.<정운홍기자>

영양 현동당간지주. 경북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된 이 당간지주는 통일신라시대 것으로 두 개의 지주 가운데 서 쪽의 것은 넘어지고 동쪽의 지주 하나만 남아있다.<정운홍기자>

영양 현동당간지주. 경북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된 이 당간지주는 통일신라시대 것으로 두 개의 지주 가운데 서 쪽의 것은 넘어지고 동쪽의 지주 하나만 남아있다.<정운홍기자>

영양 현리 삼층석탑. 통일신라시대인 9세기경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석탑이다. 하층 기단에 십이지신상이 상층 기단에는 팔부중상, 1층 몸돌에는 사천왕상이 조각돼 있다.<정운홍기자>

영양 현리 삼층석탑. 통일신라시대인 9세기경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석탑이다. 하층 기단에 십이지신상이 상층 기단에는 팔부중상, 1층 몸돌에는 사천왕상이 조각돼 있다.<정운홍기자>

영양군 주실마을에 위치한 옥천종택 전경. 옥천 조덕린 선생의 생가로 최근 영양군의 문화재 활용 정책에 따라 고택의 보존과 활성화를 위해 한옥스테이 시설로 활용되고 있다.<정운홍기자>

영양군 주실마을에 위치한 옥천종택 전경. 옥천 조덕린 선생의 생가로 최근 영양군의 문화재 활용 정책에 따라 고택의 보존과 활성화를 위해 한옥스테이 시설로 활용되고 있다.<정운홍기자>

영화 '왕과 사는 남자'는 단종이라는 비극적 군주의 서사를 복기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권력 다툼의 비정한 속에서 삶의 자리를 빼앗긴 이들, 그 풍파 속에서도 끝내 뜻을 굽히지 않았던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시간이 남긴 흔적까지 함께 돌아보게 했다. 역사의 거친 물결에 휩쓸리면서도 자신만의 북극성을 잃지 않았던 이들의 기록은 오늘날 우리에게 '어떻게 살 것인가'란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경북도 영양은 이러한 질문 앞에서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숨겨진 이야기를 품고 있는 고장이다. 예부터 '내륙의 섬'이라 불릴 만큼 험준한 산세에 둘러싸인 이곳은, 물리적 단절이 오히려 정신적 깊이를 담보하는 역설의 공간이었다. 외침조차 닿기 힘든 깊은 골짜기와 지역 특유의 정적 속에 유배와 절의, 학문과 문학의 기억이 켜켜이 내려앉아 있기 때문이다. 영양은 단순히 지리적 격절을 의미하는 오지가 아니라, 시대의 상처를 입은 이들이 그 아픔을 사유의 자양분으로 삼아 정신의 꽃을 피워낸 최후의 보루와도 같은 곳이다.


​◆ 현리에서 발견한 선비의 도(道), 한강 정구에서 조덕린으로 이어진 지조


​영양읍 현리 일대는 영양이 간직한 숨겨진 서사의 첫머리에 놓이는 공간이다. 이곳에는 현동 당간지주와 현리 삼층석탑, 오층모전석탑이 세월의 풍파를 견디며 고고하게 서 있다. 이 유산들은 본래 통일신라와 고려를 잇는 불교문화의 흔적이지만, 이곳에는 지역민들조차 잘 알지 못하는 귀한 자취가 서려 있다. 바로 조선 유학사의 거목 한강(寒岡) 정구(鄭逑)의 서슬 퍼런 기개를 흠모하며 지조를 지킨 선비들의 이야기다.


​그동안 영양의 역사에서 한강 정구 선생의 존재는 정신적 지주로서 상징성을 지녀왔다. '한강선생년보' 계축년(1613년) 조를 살펴보면, 당시 광해군 시절의 혼란스러운 정국 속에서 그가 영창대군을 구하려 목숨을 걸고 상소를 올렸던 결연한 기록이 전해진다. 비록 선생은 상소 후 고향 성주로 물러났으나, 그의 강직한 정신은 훗날 영양 현동(현리)으로 유배(歸配)된 옥천(玉川) 조덕린에게로 고스란히 이어졌다. 퇴계와 한강의 학맥을 이은 조덕린은 권력에 굴하지 않다 이곳 산골까지 밀려와 석탑 곁을 거닐며 선비의 도를 되새겼다.


​영양군 내에서도 잘 모르는 내용이지만, 조덕린이 현동 배소에서 보여준 학문과 절의는 영양의 산천에 녹아들어 지조의 향기가 됐다. 유배라는 형벌이 한 개인의 신체를 가두었을지는 몰라도, 그가 남긴 정신의 유산은 영양의 산천에 녹아들어 지조의 향기가 됐다. 현리가 적막한 시골 마을이 아니라 엄숙한 학문의 기척이 남은 공간으로 읽히는 배경에는 선비들의 고뇌가 깔려 있다. 수백 년 전, 한 선비가 석탑 곁을 거닐며 되새겼을 지조의 무게는 이제 영양의 역사를 지탱하는 또 하나의 단단한 축이 되고 있다.


​◆ 주실마을의 옥천종택, 가문의 이름으로 지켜낸 불굴의 기풍


​영양의 선비정신은 일월면 주실마을에서 더욱 뚜렷한 얼굴을 드러낸다. 주실은 한양 조씨가 뿌리내린 대표적 집성촌으로, 지금도 오래된 종택과 서당, 고택들이 산자락 아래 단정하게 자리하고 있다. 이 마을은 단순히 옛집이 많은 관광지가 아니다. 한 집안이 세대를 이어 지켜온 품격과 기풍, 그리고 절개를 중시한 삶의 태도가 마을 전체의 분위기로 굳어진 공간에 가깝다.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집 한 채, 담장 하나에도 시간이 눌어붙어 있고, 그 시간 속에는 세속의 부침보다 가문의 정신을 먼저 세우려 했던 흔적이 배어 있다.


​주실마을의 무게를 가장 또렷하게 보여주는 곳은 옥천종택(玉川宗宅)이다. 조덕린의 옛집으로 전하는 이 종택은 규모가 큰 고택이라는 점을 넘어, 권력 가까이에 있으면서도 뜻을 굽히지 못했던 선비의 삶을 품은 상징적 장소다. 조덕린은 중앙 정치의 한복판에서 활동했지만 당쟁 속에서도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고, 결국 다시 유배길에 오르던 중 생을 마감했다. 주실마을에는 이처럼 세상과 거리를 두고 산골에 뿌리내린 입향의 시간과 다시 세상 속으로 나가 끝내 물러서지 않은 후손의 시간이 공존한다. 물러남과 맞섬이 모두 절개라는 이름 아래 한 마을에 남아 있는 셈이다.


​영화가 산골에 숨어든 왕과 그를 지키는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충절의 의미를 묻는다면, 주실은 현실의 역사 속에서 그 충절이 어떻게 가문의 기억으로 굳어지는지를 보여준다. 마을의 흙벽과 낡은 기와마다 스며든 침묵은 그 거대한 신념들이 세월과 투쟁하며 남긴 고귀한 전유물이다. 퇴로 없는 결의가 영양의 깊은 골짜기에 스며들어 오늘의 우리를 경계하고 있다.


​◆ 감천의 문학적 비애와 영양 유산이 나아가야 할 길


​영양의 선비문화는 감천마을에서 만나는 시인 오일도에게서 이어진다. 오일도는 영양이 낳은 대표적 문인으로, 시대의 우울과 인간 내면의 고독을 섬세한 시어로 길어 올렸다. 정치적 유배와는 결이 다르지만, 오일도의 문학에는 영양이라는 고장이 품은 쓸쓸함과 깊은 정조가 자연스럽게 스며 있다. 산과 들, 마을과 사람 사이에 감도는 적막이 그의 언어를 만나면서 비애의 정서로 바뀐 것이다. 그런 점에서 감천은 유배의 상처가 문학적 감수성으로 번져간 자리이자, 격절된 고독을 예술로 승화시킨 현장이라고 읽힌다.


​허진섭 영양군 문화관광해설사는 이러한 지역 유산들의 가치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주실마을의 옥천종택은 퇴계 학맥을 이은 영남학파의 대표 인물 조덕린 선생의 삶을 보여주는 의미 있는 공간"이라며, "감천의 오일도 역시 우리나라 최초의 시 전문지 '시원'을 창간한 중요한 시인"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현리의 오층모전석탑과 삼층석탑, 현동 당간지주 같은 문화유산도 학술적·조형적 가치가 큰 만큼 지역의 역사성과 깊이를 보여주는 콘텐츠로 더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영양은 화려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고장이 아니다. 대신 오래된 돌과 집, 시의 문장 속에 지난 시대의 결을 조용히 남겨두는 곳이다. 특히 조덕린 선생의 유배 기록처럼 지역조차 잘 몰랐던 역사적 파편들은 영양의 서사를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유배는 본래 단절의 형벌이었지만, 영양에서는 그 시간이 오히려 사유와 품격, 문학으로 이어진 셈이다.


​오늘날 영양의 고요함은 단순한 정적이 아니다. 그것은 타협하지 않은 영혼들이 남긴 치열한 내면의 외침이다. 산맥이 겹겹이 두른 이 지형적 한계는 외부와의 소통을 막았으나, 도리어 안으로 파고드는 성찰의 깊이를 더해줬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충절과 비애를 드라마로 되살렸다면, 영양은 현실의 땅 위에서 그 감정을 더 오래 붙잡고 있다. 영양은 단지 유배의 기억이 잠시 스쳐 간 땅이 아니라, 그 숨겨진 기억들을 끝내 문화와 정신으로 남겨낸 곳이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영양의 느린 시간은 우리에게 귀한 휴식을 넘어선 깨달음을 준다. 산속 마을에 남은 선비의 절개와 시대의 슬픔을 시로 바꾼 흔적은 거친 세상 속에서도 자신의 뜻을 지키며 살고 있는지 묻고 있다. 영양의 고요한 풍경은 그 질문에 대한 가장 단단한 대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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