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청소년 디지털 번아웃

  • 도기봉 대구청소년성문화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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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4-03 15:10  |  발행일 2026-04-03
도기봉 대구청소년성문화센터장

도기봉 대구청소년성문화센터장

학교나 상담 현장에서는 청소년뿐 아니라 부모의 호소도 자주 들린다.


"아이가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않아요. 잠도 안 자고 폰을 해요. 잔소리를 하고 혼을 내도 일상이 바뀌지 않습니다. 휴대폰이 아이를 망치는 것 같아요."


이 말에는 걱정과 무력감이 함께 담겨 있다. 그러나 문제를 오롯이 디지털 기기의 탓으로 돌릴 때, 우리는 더 중요한 질문을 놓치게 된다. '왜 아이는 휴대폰을 놓지 못하는가, 그 화면 속에는 어떤 연결과 위로가 숨어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스마트폰을 확인하는 청소년의 모습은 이제 일상이 되었다. 등굣길 버스 안에서도, 쉬는 시간 교실에서도 화면은 늘 손안에 있다. 알림 하나에 집중이 흐트러지고, SNS의 반응은 하루의 기분을 좌우한다. 이렇게 디지털 기기가 청소년의 일상을 촘촘히 채우는 사이, 보이지 않는 피로는 차곡차곡 쌓여간다. 이것이 바로 청소년 디지털 번아웃이다.


디지털 번아웃은 단순히 스마트폰 사용 시간이 많아서 생기는 문제가 아니다. 독일 본 대학의 통계학 교수 알렉산더 마르코베츠는 이를 과도한 스마트폰 사용으로 인해 삶의 즐거움과 집중력을 잃어버리는 상태로 정의하며, 이러한 상태가 지속될 경우 신체와 정신 건강 전반이 서서히 무너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특히 자아와 정서가 형성되는 시기에 있는 청소년에게 이 현상은 더 빠르고 깊게 나타난다.


이제 질문은 분명하다. 청소년의 디지털 번아웃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먼저 개인 차원에서는 '절제'보다 '자각'이 필요하다. 늘 피곤한 상태, 이유 없는 짜증과 무기력은 의지가 약해서가 아니라 회복이 필요하다는 신호일 수 있음을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 하루 중 짧은 시간이라도 알림을 끄고 자신의 감각에 집중해보는 경험,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불안하지 않은 시간을 스스로에게 허락하는 연습이 디지털 번아웃 예방의 출발점이 된다.


가정은 통제의 공간이 아니라 회복이 허용되는 공간이어야 한다. "왜 또 폰을 하니"라는 잔소리보다 "오늘은 뭐가 제일 기억에 남았어", "힘든 일은 없었어"라는 질문이 먼저여야 한다. 부모 역시 끊임없이 디지털 기기와 연결된 삶을 살고 있음을 인정하고, 함께 알림을 끄는 시간, 함께 쉬는 시간을 만들어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학교의 역할 또한 중요하다. 학교는 디지털 번아웃을 개인의 자기관리 실패로만 다뤄서는 안 된다. 온라인 과제, 메신저 공지, 즉각적인 응답을 요구하는 문화는 아이들을 늘 긴장 상태에 놓이게 한다. 공지와 응답의 속도를 조정하고, 늦은 밤이나 휴일의 연결을 최소화하는 원칙을 세울 필요가 있다.


지역사회는 디지털 번아웃을 겪는 청소년과 가정을 위한 중요한 안전망이 될 수 있다. 청소년성문화센터와 상담기관, 청소년 문화공간, 예술·놀이 활동은 디지털 바깥의 세계와 다시 연결될 수 있는 통로다. 경쟁과 비교에서 잠시 벗어나 자기 속도로 숨 쉴 수 있는 공간이 지역사회 곳곳에 마련될 때, 청소년은 비로소 회복의 경험을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잠시 멈춰도 괜찮다"는 메시지를 사회 전체가 반복해서 건네는 일이다.


디지털 번아웃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 아니다. 성취를 앞세우기보다 회복을 먼저 허락하고, 끊임없는 연결보다 쉼의 가치를 인정할 때 디지털은 청소년을 소진시키는 도구가 아니라 삶을 지탱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 잠시 멈춰도 괜찮다는 사회의 메시지, 그것이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청소년을 지켜내는 가장 강력한 보호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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