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바람이 분다

  • 이상학 대구문화예술진흥원 기획홍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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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4-15 15:43  |  발행일 2026-04-16
이상학 대구문화예술진흥원 기획홍보팀장

이상학 대구문화예술진흥원 기획홍보팀장

바람이 분다. 4월의 바람은 유난하다. 3월과 함께 1년 중 바람이 가장 많이 부는 시기다. 연중 평균 풍속이 가장 높은 4월은 따뜻한 남풍과 차가운 북풍이 번갈아 불면서 날씨가 변덕스러워진다. 한낮엔 반팔 차림도 종종 보이지만, 북풍이 불어오면 꽃샘추위가 찾아오기도 한다. 그런 과정을 거치며 이제 대기는 겨울의 북서풍에서 여름의 남서풍으로 바뀌어 가는 것이다.


바람의 어원은 '불다'의 중세국어에서 파생되었다는 가설과 함께 '風'의 상고한어 발음에서 차용되었다는 가설, 이렇게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風'의 어원이다. 고대 중국인들은 거대한 봉새(봉황)가 날갯짓을 할 때마다 바람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봉새를 뜻하는 '鳳'에서 유래된 것이다.


이와 달리, 어떤 일이 이뤄지기를 바란다는 의미의 동음이의어인 '바람'은 '바라다'의 명사형이다. 같은 소리를 내는 두 단어의 의미는 묘하게 닮아 있다는 것을 종종 느낀다. 유행, 풍속 등과 같이 어떤 기세를 타고 일어나는 일이나 현상을 두고도 '바람'이라 하는데, 이는 바깥으로부터 몰려온 바람에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바람이 바람을 만드는 것이다. 우리말이라서 연상이 가능한 언어유희인 셈이다.


그래서 바람이란 단어는 항상 변화와 함께, 그 변화에 대한 소망과 기대를 담고 있다. 유난히 봄철에 바람이 많이 부는 것이 그러하지 않은가. 봄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대지에는 따뜻한 기운이 돌며 식물들은 씨를 뿌린다. 봄은 바람을 타고 온다. 바람을 타고 오는 봄을 맞으며 우리의 마음속에도 바람이 자라난다. 저마다의 바람을 품고 다시 바람을 안는다.


프랑스 시인 폴 발레리는 자신의 시 '해변의 묘지'에서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Le vent se lève, il faut tenter de vivre)'라는 구절을 남겼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 영화 '바람이 분다'의 주제로도 사용돼 우리에게 친숙한 구절이다. 오생근 비평가는 이 구절을 '바람이 인다, 어쨌든 살아야 한다'로도 번역했는데, 이 번역도 의미가 있다. 생의 유한함과 죽음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우리지만, 순간 불어오는 바람에 살아있음을 느끼고 다시 한번 치열하게 살아보는 것이다. 바람은 살아보겠다는 생의 의지다.


다가오는 주말에는 가까운 이가 팔공산에서 결혼식을 치른다. 봄날의 햇살과 녹음은 경사를 축하하기에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팔공산까지 찾은 김에 오랜만에 둘레길을 걸어볼까 싶다. 진달래꽃들을 따라 길을 걷다 보면 바람고개가 나온다. 고갯길 여느 바위에 앉아 땀을 식히며 아래를 내다본다. 순간, 시원한 바람이 분다. 그래,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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