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순정 쿤스트하우스 대표
아이 그림을 마지막으로 오래 바라본 적이 언제였을까.
"잘 그렸네" 하고 지나친 순간 말고, 아이가 두 손으로 내민 그림 앞에 조용히 앉아 있었던 시간 말이다.
아이들은 그림으로 마음을 말한다. 어른들은 결과를 보지만, 아이는 그림 속에 하루를 담는다.
미술 수업을 하며 부모님들께 종종 부탁드리는 것이 있다.
"파란 물감을 주지 말고 하늘을 그리게 해보세요."
처음엔 대부분 의아해하신다.
"하늘은 원래 파란색 아닌가요?"
물론 맞는 말이다.
하지만 파란색이 주어지는 순간 아이들은 더 이상 하늘을 보지 않는다. 이미 알고 있는 답을 빠르게 채워 넣는다. 익숙한 색으로, 익숙한 하늘을 그린다.
반대로 파란색이 없으면 아이들은 잠시 멈춘다. 창밖을 바라보고 오늘의 하늘을 다시 본다. 어떤 아이는 노랗게, 어떤 아이는 회색으로, 또 어떤 아이는 하늘 없는 하늘을 그린다. 그 순간 아이는 정답이 아니라 '자신이 본 것'을 그리기 시작한다.
오랫동안 미술학원을 다닌 아이들 가운데 그림이 점점 조용해지는 경우를 본다. 비례 맞추는 법, 명암 넣는 법은 능숙해졌는데 어느 순간 아이들은 말한다.
"저 그림 못 그려요."
실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틀리면 안 된다는 마음이 먼저 자라났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는 아이가 노란 하늘을 그려왔을 때 너무 쉽게 말했는지도 모른다.
"하늘은 파란 거야."
그 말은 사실이다. 하지만 아이의 마음에는 이렇게 남는다.
"네가 본 것은 틀렸어."
그 말이 반복되면 아이는 자기 감각보다 정답을 먼저 찾게 된다. 무엇을 느꼈는지보다 무엇이 맞는지를 더 중요하게 여기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에게 이렇게 물어봐 주었으면 한다.
"오늘 하늘은 네 눈에 어떤 색이었어?"
아이는 잠시 생각에 잠길 것이다. 그 짧은 침묵 속에서 아이는 자신의 감각을 다시 만난다. 부모가 지켜주어야 하는 것은 기술보다 먼저 아이의 마음이다. 잘 그리는 능력보다 자기 느낌을 믿는 힘이다. 그 힘이 살아 있는 아이는 언제든 다시 그릴 수 있다.
오늘 아이가 집에 돌아오면 그림 한 장 옆에 두고 조용히 물어봐 주면 좋겠다.
"이 그림 그릴 때 어떤 생각했어?"
아이는 금세 신나게 이야기할 수도 있고, 쑥스러운 듯 짧게 웃고 지나갈 수도 있다. 그래도 괜찮다. 그 짧은 시간이 아이에게는 오래 남는다. 아이는 자신이 그린 그림보다, 그 그림 앞에 조용히 앉아 자기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던 사람을 더 오래 기억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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