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문 논설위원
일본판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2013년 일본 아베 정부의 '일본재흥전략(日本再興戦略)'에서 비롯됐다. 향후 10년 안에 세계대학랭킹 100위 이내에 일본 대학을 10곳 이상으로 늘리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이듬해 시작한 '슈퍼글로벌대학 창성지원사업(スーパーグローバル大学創成支援·SGU)'은 이를 뒷받침한 대표 정책이었다. 사업기간은 2014~2023년 10년이었다. 첫해 예산은 77억엔이었고 대학별 지원규모는 연간 최대 2억~5억엔이었다. 사업 마지막 해인 2023년도 예산은 26억엔이었다. 일본은 SGU 지원대학으로 모두 37곳을 선정했다. 이 가운데 국립인 홋카이도대, 도호쿠대, 쓰쿠바대, 도쿄대, 도쿄의과치과대, 도쿄공업대, 나고야대, 교토대, 오사카대, 히로시마대, 규슈대와 사립인 게이오대·와세다대 등 13곳을 세계 100위권 진입을 목표로 한 '톱형'으로 선정했다. 나머지 24곳은 국제화를 선도하는 '글로벌화 견인형'으로, 우리의 글로컬대학과 비교해볼 수 있다.
SGU가 집중한 정책수단은 국제화와 대학개혁이었다. 외국인 학생과 교원 비율을 높이고 영어강의를 확대하는 한편, 해외 유수대학의 교육·연구조직을 유치해 공동교육과정을 만들고 국제공동대학원을 설립하도록 했다. 인사·교무제도를 개혁하고 해외대학과 학생교류를 확대하는 것도 주요 과제였다.
10년 뒤 성적표는 어땠을까. 세계 100위 안에 든 일본 대학은 여전히 도쿄대와 교토대 두 곳에 그쳤다. 일본 대학정책 전체가 실패했다는 뜻은 아니지만, 정부가 스스로 내건 '세계 100대 대학 10곳'이라는 국가목표는 달성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SGU에 성과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외국인 교수와 유학생, 영어강의와 해외대학 교류가 늘었다. 영국 고등교육평가기관 THE 분석에서도 일본 대학의 국제성은 상승했다. 정책수단 자체에는 성과가 있었던 셈이다. 그러나 국제화가 곧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경쟁력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문제는 목표와 정책수단 사이의 간극이었다. 톱형은 세계 100대 대학을 지향했지만 SGU가 집중한 수단은 국제화와 대학개혁이었다.
더 큰 문제는 SGU가 시작될 무렵 이미 일본 대학의 연구기반이 약해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특히 2004년 국립대 법인화 이후 정부의 운영비 교부금이 줄면서 국립대의 기반재정이 약화됐다. 법인화 이후 12년 동안 운영비 교부금은 1천470억엔, 11.8% 줄었다. 문부과학성은 이 과정에서 젊은 연구자의 안정적 고용과 기초 연구비가 압박받고 연구시간 감소와 논문 증가세 둔화 등이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대학 교원의 업무 가운데 연구시간 비중도 2002년 47.5%에서 2008년 36.1%로 낮아졌다. 교육과 대학 운영에 쓰는 시간이 늘어난 영향이 컸다. 박사과정 입학자 수도 2003년을 정점으로 장기간 감소하다 2023년부터 다시 늘기 시작했다.
이런 약화는 연구의 질과 영향력을 보여주는 고피인용 논문에서도 드러났다. 고피인용 논문은 같은 분야에서 많이 인용된 상위권 논문으로, 국가 연구경쟁력을 보여주는 대표 지표다. 일본은 이 지표에서도 한국에 추월당했다. 세계 100대 대학을 늘리겠다는 정책이 진행되는 동안 연구생태계의 구조적 약점은 충분히 해소되지 못했던 것이다.
일본 사례는 세계 수준 대학이라는 목표와 그에 맞는 정책수단이 반드시 함께 가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국제화만으로는 부족하다. 우수 연구자와 박사인력, 연구시간과 안정적인 연구비를 장기간 축적할 수 있어야 한다. 일본은 10년 동안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
박종문
청류(淸流)와 탁류(濁流) 사이, 시대정신을 고민합니다. Navigating between the clear and the turbid, reflecting on the Zeitgeist.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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