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와 세상] 더 버는 것보다 중요한 것, 돈의 가치를 지키는 일

  • 임규채 경북연구원 사업지원본부장
  • |
  • 입력 2026-09-30 17:02  |  수정 2026-09-30 19:11  |  발행일 2026-10-02
임규채 경북연구원 사업지원본부장

임규채 경북연구원 사업지원본부장

오늘은 당연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요즘 사람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자신의 생활이 나아지고 있는가에 있다. 정부가 최저임금을 올리고 임금을 인상하는 정책을 내놓으면 반가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최저임금이 높아지며 각종 지원이 확대되면 월급이 올라서 형편이 나아질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소득보다 더 빠르게 물가가 오른다면 오히려 살림살이는 힘들어진다. 경제에서 중요한 것은 명목소득이 아니라 실제로 얼마만큼의 상품과 서비스를 살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실질소득이기 때문이다.


최근의 물가 흐름은 이 점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2026년 8월 소비자물가는 전년 같은 달보다 3.1% 올랐고, 가계가 자주 구매하는 품목 중심의 생활물가도 3.2% 상승했다. 한국은행의 물가 안정 목표가 2%라는 점을 감안하면 국민이 느끼는 생활비 부담은 절대 가볍지 않다. 특히 식료품, 외식비, 교통비, 주거비 등은 생활 속에서 느낄 정도로 크게 오르는 경향이 있다. 물가 이야기가 나오면 항상 반복되는 말이다.


가령, 월급이 3% 올랐는데 물가도 3% 올랐다면 실질구매력에는 변화가 없어 생활수준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반대로 소득증가율이 높지 않더라도 물가가 안정되어 있다면 가계는 미래의 지출을 예측할 수 있고 소비와 저축 계획도 세우기 쉬워진다. 이런 점에서 물가 안정은 모든 국민에게 돌아가는 가장 기본적인 소득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같은 3%라도 급여가 낮은 사람은 물가 상승률을 따라가지 못한다. 1970년대 1차, 2차 오일쇼크로 나타난 스태그플레이션을 1980년 초에 극복하는 과정에서 겪은 우리의 경험을 보면 알 수 있다.


물가는 특히 저소득층에게 더 가혹하다. 소득이 낮을수록 식료품, 주거, 에너지와 같은 필수지출의 비중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유가 있는 가구는 물가가 오르면 소비를 조정하거나 자산수익으로 일부 충격을 흡수할 수 있지만 서민 가계는 그럴 여지가 없다. 그래서 인플레이션을 '보이지 않는 세금'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렇다고 임금 인상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생산성이 높아지고 기업이 만들어 내는 부가가치가 커진 만큼 임금이 오르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생산성 향상을 넘어선 임금과 소득 확대가 비용 상승과 가격 인상으로 이어지고, 다시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악순환이 반복될 때다. 임금과 물가가 서로를 밀어 올리는 구조가 만들어지면 소득 인상 효과는 사라지기 때문이다.


물가가 안정되면 기업에도 이익이다. 원가와 금리, 임금의 향방을 예측하기 쉬워져 투자를 결정하기가 쉬워진다. 반대로 물가 불안이 길어지면 금리 부담이 커지고 기업은 투자보다 현금 확보에 나선다. 가계도 소비를 더 줄이게 된다. 물가 안정은 단순히 장바구니 부담을 낮추는 차원을 넘어 성장과 투자의 기반을 지키는 일이다.


따라서 경제정책의 순서는 분명해야 한다. 단기적인 지원금이나 명목임금 인상만으로 국민의 삶을 개선하려 하기보다 농축산물과 에너지의 공급 안정, 유통구조 개선, 주거, 외식, 서비스 가격의 구조적 부담 완화, 환율 안정과 경쟁 촉진 등 물가의 뿌리를 든든하게 하는 정책이 지속되어야 한다. 기업은 가격을 올리는 방식보다 생산성과 효율성을 높여 비용을 줄이는 노력이 필요하다. 소득을 올리는 정책은 눈에 잘 보이지만 물가를 안정시키는 정책의 효과는 언제나 조용하다. 우리 경제에는 이러한 조용한 정책이 필요하다.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관련기사

경제인기뉴스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

영남일보TV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