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규완 칼럼] 픽션, 논픽션, 팩션 그리고 ‘암살자(들)’

  • 박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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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9-30 16:34  |  발행일 2026-10-01
로마사 비튼 ‘글래디에이터’
제갈량 박망파 전투는 과장
드라마 ‘허준’ 年代 안 맞아
‘암살자(들)’ 배후 상상 자극
창작의 영역 넘었다는 비판


박규완 논설위원

박규완 논설위원

영화 '글래디에이터'는 로마 장군 출신 검투사의 굴곡진 삶과 복수, 사랑을 그린 작품이다. 그 유명한 '명상록'을 남긴 스토아학파 철학자이자 로마 16대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와 그의 아들 코모두스 시대가 배경이다. '글래디에이터'는 2001년 작품상, 남우주연상 등 아카데미상 5개 부문을 석권했으며, 러셀 크로를 단박에 스타덤에 올렸다. 한스 짐머의 음악도 영화의 격과 몰입감을 높였다. 리사 제라드가 부른 엔딩곡 'Now we are free'는 나의 애청곡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사극이 사실을 왜곡하듯 '글래디에이터'도 로마 역사를 많이 비틀었다. 주인공 막시무스 장군은 가공의 인물이며, 5현제(賢帝)의 마지막 황제 아우렐리우스는 영화에서와는 달리 아들 코모두스에게 양위하고 전장에서 전염병에 걸려 죽는다. 5현제 시대가 막을 내리면서 로마는 쇠락의 길로 접어들고 폭군 코모두스는 암살당한다. 결과적으로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세습은 실패로 끝났다. 5현제는 모두 세습 황제가 아니었다. 원로원이 중심이 돼 당대에 가장 유능하고 덕망 있는 인물을 황제로 옹립했다. 아우렐리우스가 세습 양위를 하지 않았다면 로마 역사가 어떻게 전개됐을까.


삼국지는 서진의 관료 진수가 쓴 정사 삼국지와 나관중의 삼국지연의가 양대산맥이다. 진수의 삼국지는 사기, 한서, 후한서와 함께 4대 정사(正史)로 분류된다. 연의(演義)는 사실을 부연하여 재미있고 알기 쉽게 쓴 책이란 뜻이지만, 삼국지연의는 사실상 대하소설이다. 그러니까 진수의 삼국지는 논픽션, 삼국지연의는 픽션이다. 서시, 왕소군, 양귀비와 더불어 중국의 4대 미녀로 꼽히는 초선은 삼국지연의에만 등장한다. 소설 속의 가공인물이란 얘기다. 당대의 절세가인 대교·소교 자매는 삼국지 정사에 나온다. 대교는 손권의 형 손책과 혼인하고, 소교는 오나라 장수 주유의 아내가 된다.


유비의 책사 제갈량이 박망파 전투에서 화공책(火攻策)으로 대승을 거뒀다는 서사는 삼국지연의만의 기록일 개연성이 크다. 박망파 전투가 일어났던 서기 202년은 제갈량이 유비 휘하로 들어가기 전이며, 위나라 장수 하후돈의 10만 대군을 격파했다는 주장과 달리 사서(史書)는 조조군 숫자가 수천~1만명이었다고 전한다.


엔딩곡 '불인별곡'을 조수미가 불러 더 유난했던 MBC 드라마 '허준'은 지금은 신화처럼 여겨질 시청률 64%를 찍었다. 하지만 등장인물의 연대(年代)가 사실적 기록과 맞지 않으며, 드라마에서 천민 소생 얼자로 나오는 허준은 실제론 양첩 소생의 서자였다. 허준의 스승이자 신의(神醫)로 묘사되는 유의태에 대한 기록도 역사서엔 없다. 하여 허준의 스승이 허준 전임 어의(御醫) 양예수라는 주장과 화담 서경덕 학파의 맥을 이어받은 수암 박지화라는 설(說)이 엇갈린다.


역사 드라마나 영화는 대개 사실과 허구가 뒤섞인 팩션이다. 영화 '서울의 봄'도 팩트 위에 적절히 허구를 얹어 생동감과 긴박감을 유도한다. 경복궁 앞 대치 장면이 윤색의 테크닉이다. '대중적 코드'에 충실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천만 관객을 동원했다. 논쟁적 영화 '암살자(들)'는 제목에서부터 문세광의 단독 범행이 아님을 은유한다. 단정하진 않았지만 배후가 박정희 전 대통령일 가능성을 암시하며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팩트를 건드려서일까. 창작의 영역을 넘어섰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역사의 뼈대에 살을 붙이는 작업이 창작일진대 얼개까진 고치지 말라는 경종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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