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야가 본 전쟁의 참화, 대구에서 다시 묻다…대구미술관 개관 15주년 소장품 특별전 ‘고야의 판화: 나는 그것을 보았다’

  • 권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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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9-30 17:48  |  발행일 2026-09-30
벨기에 리드 미술관 기증 ‘전쟁의 참화’ 41점 공개
승리·영웅 대신 이름 없는 민중의 고통 담아
대구미술관 개관 15주년 소장품 특별전 고야의 판화: 나는 그것을 보았다를 기획한 이동민 학예연구사가 전시 구성과 작품 세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권혁준기자

대구미술관 개관 15주년 소장품 특별전 '고야의 판화: 나는 그것을 보았다'를 기획한 이동민 학예연구사가 전시 구성과 작품 세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권혁준기자

벨기에 한 개인 미술관이 소장해 온 프란시스코 데 고야의 판화 41점이 대구에 새 둥지를 틀었다. 한국과 오랜 인연을 이어온 소장자가 대구미술관에 작품을 기증하면서다.


대구미술관은 오는 2027년 2월14일까지 개관 15주년 소장품 특별전 '고야의 판화: 나는 그것을 보았다'를 2층 6전시실에서 선보인다. 전시에는 벨기에 리드 미술관(Museum de Reede)이 올해 2월 대구미술관에 기증한 고야의 대표 판화 연작 '전쟁의 참화(Los Desastres de la Guerra)' 41점이 나왔다. 전체 82점으로 구성된 연작 가운데 절반에 해당하며, 대부분 1906년 인쇄된 4번째 판본이다.


이번 기증은 대구미술관과 리드 미술관이 앞선 전시를 통해 맺은 인연에서 시작됐다. 리드 미술관 측은 2024년 대구미술관의 렘브란트 판화전에도 도움을 줬다. 이후 대구미술관의 전시 공간과 수장 환경, 운영 방식 등을 접한 뒤 작품을 맡길 만한 곳이라는 신뢰를 갖게 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2월 기증협약식에 참석한 강효연 학예연구실장은 "대구미술관의 수장시설과 전시 운영 등을 직접 보셨고, 이런 부분에 신뢰를 가지셨기 때문에 선뜻 작품을 기증하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난 15일 전시 개막에 맞춰 대구미술관을 찾은 야스퍼 드 페이지 리드 미술관 코디네이터는 "이번 기증이 앞으로 대구미술관과 더 큰 협업과 예술적 교류로 이어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대구에 온 작품은 고야의 작품세계에서도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고야는 스페인 궁정화가로 부와 명성을 얻었지만 청력을 잃은 뒤 작품세계에 변화를 맞았다. 왕과 귀족의 주문을 받아 그림을 그리던 데서 한발 나아가 자신이 바라본 인간과 사회의 어두운 면을 판화에 담기 시작했다.


나는 그것을 보았다 프란시스코 데 고야 작. 대구미술관 제공

'나는 그것을 보았다' 프란시스코 데 고야 작. 대구미술관 제공

그 정점 가운데 하나가 '전쟁의 참화'다. 1808년 나폴레옹 군대의 스페인 침공 이후 벌어진 전쟁과 그 후유증을 다룬 작품으로, 1810년부터 1820년 사이 제작됐다. 고야 생전에는 출판되지 못했고, 그가 세상을 떠난 뒤 35년이 지난 1863년에야 마드리드 산 페르난도 왕립미술아카데미를 통해 처음 공개됐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이동민 학예연구사는 "궁정화가로서 주문을 받아 그린 작품과 달리 '전쟁의 참화'는 고야가 스스로 전쟁에서 보고 느낀 것을 종합해 만든 작업"이라며 "누군가의 주문이 아니라 예술가로서 자신의 시선으로 만든 작품이라는 점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전쟁의 참화'에는 이름 없는 사람들이 끌려가고, 죽고, 굶주리는 모습이 담겼다. 전쟁을 승리와 영웅의 서사가 아닌 인간이 겪는 폭력과 고통의 문제로 바라본 것이다. 대구미술관 역시 이번 전시에서 고야가 전쟁의 승리보다 평범한 사람들의 죽음과 공포를 화면의 중심에 놓았다는 점에 주목한다.


전시는 연작의 구성에 따라 '전쟁(Guerra)' '기근(Hambre)' '암시적 카프리초(Caprichos enfaticos)' 세 부분으로 나뉜다. '전쟁'에서는 살해와 폭력, 시신이 쌓여가는 전장의 현실이 이어진다. '기근'에서는 굶주림과 구걸, 죽은 이를 옮기는 사람들의 모습이 나타난다. 전쟁 이후를 다룬 '암시적 카프리초'에서는 종교와 정치권력을 향한 고야의 풍자적 시선이 두드러진다.


이 학예연구사는 "고야는 어느 한쪽의 편을 드는 대신 이름 없는 사람들이 전쟁에서 겪는 고통을 보여준다"며 "잔인하고 때로는 쳐다보기 힘든 장면도 있지만, 그 현실을 똑바로 바라보라고 요구하는 작품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전시 제목이 된 44번 작품 '나는 그것을 보았다(I Saw It)'는 이러한 고야의 태도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고야는 작품마다 '나는 그것을 보았다' '왜?'와 같은 짧은 문구를 새기며 비극적 현실을 외면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드러냈다.


200여 년 전 스페인에서 만들어진 판화지만, 작품이 던지는 질문은 세계 곳곳에서 전쟁과 폭력이 이어지는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이 학예연구사는 "전쟁은 2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계속되고 있다"며 "'전쟁의 참화'는 지금의 우리에게도 여전히 큰 울림을 주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진리는 죽었다 프란시스코 데 고야 작. 대구미술관 제공

'진리는 죽었다' 프란시스코 데 고야 작. 대구미술관 제공

이유가 있건 없건 프란시스코 데 고야 작. 대구미술관 제공

'이유가 있건 없건' 프란시스코 데 고야 작. 대구미술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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