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에서] 이 시대의 풍경을 그린다면 어떤 모습일까…이대천 ‘The Language of Landscape’

  • 권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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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10-02 15:33  |  수정 2026-10-02 15:36  |  발행일 2026-10-02
베를린서 20여 년 활동…대구서 한국 첫 개인전
기억·경험·현실의 이미지, 추상적 선·면·색과 중첩
“경계에서 생기는 긴장감이 그림의 동력”
지난달 30일 갤러리 팔조 대구에서 만난 이대천 작가는 작업에 대해 이 시대의 풍경화가 만들어진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서 작업을 시작한다고 말했다. 권혁준기자

지난달 30일 갤러리 팔조 대구에서 만난 이대천 작가는 작업에 대해 "'이 시대의 풍경화가 만들어진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서 작업을 시작한다"고 말했다. 권혁준기자

푸른빛이 감도는 화면 속에 산과 바다, 사람과 동물, 도로와 건물처럼 보이는 형상들이 놓여 마치 심해의 도시 풍경처럼 보인다. 관람객은 화면 안에서 시선을 옮기며 스스로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구체적인 형상과 추상적인 선·면·색이 뒤섞인 화면은 특정 장소라기보다 기억과 경험이 쌓여 만들어진 하나의 세계에 가깝다.


이대천 작가의 개인전 'The Language of Landscape(풍경의 언어)'가 오는 27일까지 갤러리 팔조 대구에서 열린다. 독일 베를린을 기반으로 20년 넘게 활동해 온 이 작가가 한국에서 여는 첫 개인전이다. 한국을 떠난 뒤 20년 넘게 독일에서 활동해 온 그에게 대구에서 여는 첫 한국 개인전의 의미는 남다르다.


지난달 30일 갤러리 팔조 대구에서 만난 이 작가는 "서울에서도 전시할 수 있겠지만, 고향과 가깝고 공부한 대구에서 첫 개인전을 한다는 게 굉장히 뜻깊다"며 "부모님께 제 전시를 보여드릴 수 있다는 것도 좋다. 이렇게 돌아와 보여드릴 수 있어 감사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영남대에서 회화를 전공한 뒤 독일 드레스덴 국립조형예술대와 베를린 예술대에서 수학한 그는 동양 산수화의 정신과 현대적 회화 언어를 한 화면에 풀어내며 자신만의 풍경을 만들어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여러 이미지가 겹겹이 쌓인 대작부터 'Horizon' 연작, 수채화와 드로잉 등을 함께 만날 수 있다.


이 작가는 "'이 시대의 풍경화가 만들어진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서 작업을 시작한다"고 말했다.


그의 풍경에는 특정 장소가 없다. 일상에서 본 나무와 동물, 여행 중 마주친 풍경, 영화 속 장면 등이 추상적인 선·면·색과 뒤섞인다. 사진과 드로잉으로 모은 이미지도 화면 위에 다시 배치한다.


그는 "제가 생활했던 곳, 여행했던 곳에서 본 것들을 한 화면에 넣는다. 그 안에서 모든 것이 생하고 멸하고, 다시 반복해서 생하고 멸한다"며 "모든 것이 연결돼 있다는 생각이 있는데, 그것을 화면에서 어떻게 연결할지를 고민한다"고 말했다.


이대천 작. 권혁준기자

이대천 작. 권혁준기자

완성된 구도를 미리 정하지도 않는다. 형태를 더하고 지우는 과정에서 화면의 밀도를 결정한다. 그는 그림을 '개인적인 기억과 모든 것들의 순환을 담은 거대한 지형도'라고 표현했다.


대표작 '당랑박선'은 이러한 태도를 잘 드러낸다. 독일의 한 시장에서 나비만 바라보는 고양이를 본 경험에서 출발한 작품이다.


그는 "눈앞에 있는 것만 보며 뒤에 제가 다가가고 있는지도 모르는 고양이를 보고 당랑박선이라는 고사가 생각났다"며 "눈앞의 나비에만 몰두해 뒤를 보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서 지금 벌어지는 전쟁이나 인간의 욕망, 자연재해 같은 것도 떠올랐다. 작가로서 할 수 있는 것은 없지만 그런 염려를 조금 담았다"고 말했다.


화면 속 사람과 산, 동물, 배 같은 구상적 요소는 관객이 스스로 이야기를 만들어가도록 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그는 "스토리텔링이 될 만한 것들을 숨겨놓고, 제가 의도한 것과 또 다른 이야기를 관람자가 만들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의 작업의 뿌리는 동양 산수화에 닿아 있다. 영남대 재학 당시 동양화 수업을 들으며 관심을 갖게 됐고, 독일에 건너간 뒤에는 오히려 한국 회화가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다. 특히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


이 작가는 "정선의 관동팔경을 보면서 제가 어릴 때 봤던 동해안의 풍경이 300년 전 그림에 있는 것을 보고 굉장히 감동했다"며 "그래서 '우리의 산수를 그리자. 대신 방식은 다르게 하자'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고향인 경북 울진에서 보낸 어린 시절 기억도 이번 전시 작품에 녹아 있다. 산을 넘어 친구를 만나러 다니고, 산과 바다가 함께 펼쳐진 풍경 속에서 자란 기억이다. 한 작품에는 화면 가운데 채색하지 않은 빈 공간을 남겨두기도 했다.


그는 "처음에는 화면 가운데 무언가를 하나 남겨두려고 했는데 계속 작업하다 보니까 그 부분이 비어 있게 됐다"며 "나중에 뭔가 넣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계속 보다 보니 알맹이 같기도 하고, 어릴 때 수영하던 제 모습 같기도 하고, 섬이나 바위 같기도 했다. 그래서 결국 무엇이라고 정하지 않고 비워뒀다"고 설명했다.


한국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독일에서 활동하면서도 동양 회화를 작업의 바탕에 두고 있는 그는 자신의 위치를 "항상 중간에 서 있다"고 표현했다. 그는 "한국 사람인데 독일에서 서양화를 하고, 그림의 베이스는 또 동양화다. 그게 제 삶"이라며 "그 경계에서 생기는 긴장감이 그림의 동력이 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대천 작. 권혁준기자

이대천 작. 권혁준기자

이대천 작. 권혁준기자

이대천 작. 권혁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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