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문 대구문인협회 문학단지조성추진위원장
영천시청에 볼일이 있어 길을 나섰다. 대구에서 경부고속도로를 달리는데 계기판 한쪽에 낯선 불빛이 번쩍였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차를 세워야 하나, 그대로 가도 괜찮을까. 차는 아무 일 없다는 듯 제 속도로 달렸다. 계기판과 앞길을 번갈아 살피며 운전대를 고쳐 잡았다.
영천시청에서 용무를 마친 뒤 가까운 카센터에 들렀다. 정비사는 당장 운행을 멈출 정도는 아니라고 했다. 그래도 마음은 놓이지 않았다. 10년 넘게 함께 달려온 차가 제 몸의 사정을 조심스레 알리는 듯했다.
귀갓길에는 국도를 택했다. 단골 카센터에서는 오일펌프 쪽에 문제가 있다고 했다. 더 큰 고장을 막으려면 손을 봐야 한다기에 차를 맡겼다.
다음 날 수리를 마친 차를 몰고 나오는데 평소 보지 못했던 버튼 하나에 불이 들어와 있었다. 눈길이 자꾸 그쪽으로 갔다. 'SYNC.' 차를 세우고 단골 카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SYNC 버튼에 불이 들어와 있는데요. 또 고장인가요?" "고장이 아닙니다. 운전석과 조수석 온도를 같이 맞춰 주는 기능입니다." 전화를 끊고 웃음이 났다. 차가 이상한 것이 아니라, 한 번 놀란 내가 작은 불빛에도 겁부터 먹고 있었다. 같은 불빛도 뜻을 알면 안내가 되고, 모르면 불안이 된다.
그날 밤 자동차 사용설명서를 꺼냈다. 차를 살 때 받은 두툼한 책이었다. 10년이 넘었는데도 표지는 새것처럼 말끔했다. 손때 하나 묻지 않은 책을 보니 머쓱했다. 처음 차를 샀을 때는 궁금한 것이 생기면 펼쳐 보리라 생각했다. 어느새 익숙하다는 이유만으로 책의 존재조차 잊고 지냈다. 오랜 세월 함께 달렸으면서도 정작 그 차가 보내는 신호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사용 설명서를 천천히 넘겨 보았다. 엔진 모양, 타이어 모양, 온도 표시, 눈송이 모양, 낯익은 SYNC까지. 그동안 지나쳤던 표시를 하나하나 짚어 보았다. 차 안에서 켜졌다 사라지던 불빛들이 책 속에서는 또렷한 문장이 되어 있었다. 알고 보니 차는 오래전부터 말하고 있었고, 내가 그 말을 제대로 읽지 못했을 뿐이었다.
다음 날 아침 시동 버튼을 눌렀다. 여러 불빛이 한꺼번에 피어났다가 하나둘 사라졌다. 전에는 무심히 스쳐보던 모습이었다. 그날은 곧바로 출발하지 않고 잠시 계기판을 바라보았다. 익숙하다는 이유로 눈여겨보지 않고 지나친 순간들이 생각보다 많았는지도 모른다.
오늘도 출발하기 전 잠깐 머문다. 작게 켜졌다 사라지는 불빛들을 눈여겨본다. 작은 불빛이 건네는 말을 그냥 지나치지 않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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