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고등학교 총동창회장이자 이전추진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재원 포항e요양병원 병원장. 전준혁 기자
경북 포항고등학교가 새로운 백 년을 향한 혁신적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1943년 개교해 8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지역의 대표 공립학교인 포항고가 42년 묵은 현 교사(학산동)를 떠나 읍·면 지역으로의 이전을 추진하고 나섰다. 단순한 노후 건물 교체를 넘어, 기형적인 고교 배정 제도로 인한 인재 유출을 막고 포항 교육의 경쟁력을 근본적으로 끌어올리겠다는 원대한 구상이다. 이재원 포항고등학교 이전추진위원장(현 포항고 총동창회장)을 만나 학교 이전이 지니는 지역사회적 의미와 향후 계획에 대해 깊은 이야기를 나눴다.
◆ 기형적 평준화로 인한 인재 유출… "가고 싶은 학교 만들어야"
이 위원장은 포항 교육의 현주소를 진단하며 비정상적인 고교 배정 시스템(평준화)의 병폐를 가장 먼저 꼬집었다. 그는 "현재 동 지역에서 시행하고 있는 포항 고교평준화는 100% 무작위 뺑뺑이가 아니라, 지망 학교를 써내고 경쟁률에 따라 밀려나는 구조"라며 "학생들이 떨어질까 두려워 원하는 학교에 소신 지원을 하지 못하고, 중학교가 딸린 일부 고교에서는 성적 우수자를 선점하기 위해 경쟁률을 조절하는 편법까지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시스템은 결국 심각한 인재 유출로 이어진다는 것이 그의 분석이다. 이 위원장은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이 포항고 등 명문고를 가고 싶어도 원서를 냈다가 원치 않는 학교로 튕겨 나갈 위험 때문에 아예 경주고나 김천고 등 타지역으로 시험을 쳐서 빠져나가는 사례도 있다"라며 "이는 해마다 수백 명에 달하는 단순한 학생 유출이 아니라, 가족 전체가 움직이는 인구 유출이자 포항의 경쟁력을 갉아먹는 인재 유출"이라고 강하게 우려했다.
◆ 공사판 대신 쾌적한 환경… 동문들 향수 접고 후배 미래 선택
올해 75회 졸업생을 배출하며 총 2만5천여 명의 동문을 품은 포항고는 1984년 현재의 자리로 이전한 지 42년이 지났다. 경북도교육청의 40년 이상 노후 학교 대상 '공간 재구조화 사업' 요건을 충족하지만, 동창회는 제자리 리모델링이나 재건축 대신 과감히 이전을 택했다.
이 위원장은 "재건축을 하려면 운동장에 조립식 모듈 가건물을 짓고 학생들이 수년간 흙먼지와 소음 속에서 위험하게 생활해야 한다"며 "우리가 겪었던 모교에 대한 향수와 추억을 고집하느라 앞으로 들어올 후배들의 소중한 교육 환경과 미래를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동창회의 확고한 결의"라고 밝혔다. 이어 "이미 지난해부터 동창회 산하 TF팀을 꾸려 치열하게 논의했고, 각 기수 대표 40~50명이 모인 이사회에서 정식 안건으로 이전을 의결한 뒤 이를 흔들림 없이 밀고 나갈 전담 추진위원회를 발족했다"고 설명했다.
◆ 북구 읍·면 지역 이전 시너지… 달전 주민 유치 열망과 '줄탁동시'
그렇다면 왜 시내 동(洞) 지역이 아닌 외곽 읍·면 지역일까. 이 위원장은 흥해읍 등 북구 읍·면 지역으로의 이전이 포항 교육 전체를 살리는 '신의 한 수'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동 지역을 벗어나 읍·면 지역으로 가면 평준화 예외 지역이 되어 우수 학생들을 흡수할 수 있고, 농어촌 특별전형 혜택까지 더해져 타지역 유출을 막는 것은 물론 영덕, 울진의 인재까지 역으로 불러들일 수 있다"고 내다봤다.
현재 남구에는 오천고, 동성고, 영일고 등 3개의 읍·면 지역 고교가 평준화 예외 특수를 누리며 명문으로 자리 잡았지만, 초곡·펜타시티 등 신도시 개발로 지속 성장 중인 북구에는 인문계 읍·면 고교가 전무한 실정이다.
마침 흥해읍 달전리 일대 주민들로 구성된 달전발전협의회가 인문계 고교 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절묘하게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 이 위원장은 "포항고 동문이 아닌 순수 달전 지역 주민들이 신도시 내 인문계 고교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강력히 유치를 희망하고 있다"며 "새로운 부지로 이전해야 하는 포항고와 훌륭한 고등학교가 필요한 지역 사회의 요구가 완벽하게 만난 '줄탁동시'의 상황"이라고 반겼다. 사립학교는 막대한 부지 매입 및 건축 비용 문제로 이전이 사실상 불가능한 만큼, 공립인 포항고의 이전이 가장 현실적이고 낭비 없는 대안이라는 설명이다.
◆ 포항 전체 도약하는 계기로
이 위원장은 이번 이전 추진이 특정 동문회의 이기주의가 아님을 거듭 강조했다. 공립학교인 포항고는 특정 재단의 소유가 아니라 포항시민과 경북도민 모두의 공공 자산이라는 것이다. 특히 평준화와 비평준화 제도에 대해서도 "무엇이 옳고 그른가보다, 상호양립하면서 보완이 가능하다"는 논리를 펼쳤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이 위원장은 시민들의 든든한 지지를 당부했다. 그는 "과거 신도시가 개발될 때 명문 고등학교 유치가 도시 발전의 핵심 인프라 역할을 했던 것처럼, 교육과 의료가 뒷받침되어야 인구가 유입된다"며 "포항고 이전은 단순히 한 학교가 자리를 옮기는 차원을 넘어, 쇠퇴해 가는 포항의 교육 여건을 혁신하고 지역이 다시 한번 역동적으로 도약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만큼 시민 여러분의 큰 관심과 협조를 부탁드린다"고 힘줘 말했다.
전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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