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을 다룬 영화 '암살자(들)'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단순한 논란을 넘어 보수 야당의 상영 금지 요청부터 출연 배우 개인을 향한 인신공격과 사적 제재로까지 번지고 있다. 한국 사회가 '야만의 공론장'으로 변한 듯하다. 합리적 대화는 사라지고 세 대결과 적대감, 정서적 폭력만 난무하고 있다.
주연배우 유해진을 둘러싼 공방이 대표적이다.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은 '역사 왜곡의 공범'이라고 비난했고, 진중권 동양대 교수는 "영화에 대한 비판은 가능하나, 평론가와 연기자에 대한 테러는 중단돼야 한다"고 반박했다. 진 교수의 지적처럼, 대본 내용을 인지하고 출연했다는 이유로 배우에게 비판과 사적 제재를 가하는 것은 문화예술 전반에 '자기 검열'을 강요하는 폭력이다. 작품의 선택이나 연기에 대해 아쉬움을 표할 수는 있으나, 배우 개인을 역사 왜곡의 공범으로 몰아세우는 것은 정당한 비판의 범주를 벗어난 일이다.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스스로 생각하기를 멈추고 집단의 논리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사유의 부재'라고 경고했다. 영화가 던진 질문이나 텍스트를 고민하는 대신 연기한 배우를 '표적'으로 삼아 분풀이하는 것은 '사유함의 의무'를 포기하는 꼴이다.
'야만의 공론장'을 지배하는 것은 약육강식이라는 정글의 법칙이다. 상대와의 타협은 곧 '배신'이자 '패배'가 되므로 공론장은 상대를 짓밟기 위한 전쟁터로 전락한다. 정치·사회적 대형 이슈가 터졌을 때 '무엇이 옳은가'를 성찰하기보다 '어느 편에 설 것인가'라는 이분법적 선택을 강요받고, 합리적 중도파는 침묵하게 된다. 표현의 자유와 사유함의 의무를 포기할 때, 공론장은 언제든 야만의 상태로 추락한다. 조진범 논설위원
조진범
대구경북과 대한민국의 내일을 고민하는 논설위원입니다.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