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윤 독립출판사 리와인드 대표
간송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겸재 정선-조선의 눈으로 조선을 그리다' 전시를 보기 위해 버스를 탔다. 도심지를 벗어난 버스 창밖으로 높은 건물에 가려져서 보이지 않았던 산맥이 보였다. 인적이 드문 인도에 자리 잡은 가로수는 자신의 쓸모를 더는 증명할 필요가 없는 존재처럼 보였다. 며칠 전만 해도 짙었던 녹음은 빈티지 옷가게에서 보이는 가죽 재킷처럼 옅어져 있었다.
전시는 좋았다. 조예가 깊지 않아 겸재의 작품을 봐도 별다른 감흥이 없을까 걱정했지만 작품을 보면 볼수록 작은 부분도 소홀하게 그리지 않은 겸재의 섬세함과 시선에 감탄하게 됐다. 관람객들이 많아서 어떤 작품은 줄을 서서 보기도 했다. 올해로 탄신 350주년을 맞은 겸재의 그림. 새삼 겸재는 자신의 그림이 몇백 년이 지나도 사람들에게 감흥을 줄 수 있는 그림이 될 것이라는 걸 예상했을지 궁금했다.
한 폭의 그림 안에서 자신이 드러내고자 한 부분은 부각하면서도 생략하고 싶은 부분은 과감하게 생략하는 결단도 인상적이었다. 그가 보여주고 싶었던 조선의 아름다움을 짐작하는 일도 행복한 일이었다. 산수(山水)가 변하고, 지명이 바뀌었지만, 여전히 이 땅에 남아 있을 아름다움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겸재의 작품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을 꼽으라면 농담(濃淡)이었다. 전시관에서 작품을 보던 중에는 다채로운 안료의 색감과 작품에 얽힌 이야기를 살피느라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탄 버스의 차창, 멀리에는 산맥이 흘러가고 가까이에서는 가로수가 지나가고 있었다. 만약 내가 정선이라면 지금 보고 있는 풍경의 어떤 부분을 진하게 처리하고, 옅게 처리할지 상상해 보기도 했다.
언뜻 생각해 봤을 때 그림의 요소 중 농담은 소홀히 하기 쉬운 부분 같다. 그러나 그 부분을 소홀히 한다면 그림은 활기를 잃어버릴 것이다. 삶도 그렇지 않을까. 삶의 모든 요소가 중요하다고 해도 농담을 조절하지 않고 살게 된다면 금방 지쳐 더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미술관까지 오지 않더라도 겸재 정선의 작품을 검색하면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실제로 작품을 보는 일과 큰 차이가 있겠지만, 실제로 작품을 보지 못한 상태라면 아마 화면 속에서 작품을 보는 일로 만족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한 가지 확실한 건 직접 두 눈으로 작품을 감상하기 위해 미술관으로 왔던 길과 오는 길이 다르게 보인다는 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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