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다음 사고엔 부를 은행이 없다

  • 손혜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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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10-13 15:01  |  발행일 2026-10-13
손혜민 작가

손혜민 작가

연휴 한가운데인 지난 4일, 금융위원장이 은행과 보험, 저축은행부터 가상자산업계까지 금융권 대표들을 긴급 소집했다. 금융사 7곳에서 약 6만6천명의 정보가 빠져나간 사실이 알려진 뒤였다. 당국은 전 금융권에 전산 점검을 지시했다. 사고를 설명하고 조치에 나설 상대가 국내에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돈이 움직이는 길은 달라지고 있다. 한국 수입업자와 일본 수출업자가 달러와 가치를 맞춘 스테이블코인 USDC로 대금을 주고받기로 했다고 해보자. 코인을 사서 상대방의 전자지갑으로 보내면 은행의 해외송금 창구도, 중개 은행도 거치지 않는다. 은행이 문을 닫은 밤이나 주말에도 송금은 몇 분 안에 끝날 수 있다.


송금만이 아니다. 블록체인 대출 서비스 아베에서는 코인을 담보로 맡기면 은행을 거치지 않고 스테이블코인을 빌릴 수 있다. 미국 증권사 로빈후드는 지난 7월 해외 이용자를 대상으로 자체 블록체인에서 주가에 연동된 토큰 거래를 시작했다. 지난 지방선거 때는 해외 예측시장 폴리마켓에서 서울시장 선거 하나를 두고만 약 5천200만달러가 거래됐다. 한국의 사건에 값을 매기는 시장이 한국 밖에 서 있는 것이다. 돈을 보내고 빌리고 투자하는 길이 블록체인 위로 넓어지고 있다.


이 흐름에서 은행이 잃을 것은 수수료만이 아니다. 은행은 거래 한가운데서 고객을 확인하고 이상 거래를 걸러왔다. 당국의 감독도 은행에 자료와 조치를 요구하는 방식으로 작동했다. 이번 긴급회의도 그랬다. 그러나 해외 지갑과 플랫폼을 통한 거래가 늘면 국내 은행은 원화와 코인을 바꾸는 입구와 출구에만 남는다. 그 사이의 거래는 은행의 승인을 거치지 않는다. 송금 기록은 공개 장부에 남아도, 거래자의 신원과 구매 내용을 잇는 정보는 해외사업자가 쥔다.


그래서 이번 해킹이 남긴 질문은 은행 보안에서 끝나지 않는다. 다음 사고가 블록체인 금융에서 난다면 누구를 부를 것인가. 해외사업자도 국내에서 영업하면 한국 규제를 받고, 불법 영업에는 접속 차단과 수사 공조로 대응할 수 있다. 그러나 국내 금융회사처럼 휴일에 불러 앉혀 자료와 조치를 요구하기는 어렵다. 운영 주체가 불분명한 서비스라면 더욱 그렇다. USDC를 동결할 권한도 미국 발행사 서클이 쥐고 있다.


접속을 차단해도 우회하기는 어렵지 않고, 규제를 조이면 수요는 사라지지 않은 채 해외 거래소와 탈중앙 거래소로 옮겨간다. 돈이 은행 밖으로 움직여도, 사고가 났을 때 국내에서 책임을 물을 상대는 있어야 한다. 원화 스테이블코인 제도화가 필요한 이유다. 국내 발행사가 법에 따라 상환 책임을 지면 돈이 블록체인 위에서 움직여도 책임질 주체는 한국 안에 남는다.


미국은 지난해 결제용 스테이블코인의 발행과 감독을 다루는 지니어스법을 제정했다. 반면 한국에서는 지난해 6월 발의된 디지털자산기본법안이 1년 넘게 국회에 머물러 있다. 그 사이 해외에서 발행된 원화 스테이블코인 KRWQ가 올봄 미국 거래소 EDX의 현물시장에 상장됐고, 계열 시장에서는 이를 기초로 한 영구 선물까지 나왔다. 원화의 이름을 달았지만 사고가 나면 국내에서 책임을 묻기 어려운 돈이다.


이번 해킹 대책이 은행 전산 점검에서 끝나서는 안 된다. 원화 스테이블코인 입법으로 발행사의 자금 관리와 상환 의무, 유통업자의 자료 제출과 사고 대응 책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해외 플랫폼과의 사고 대응 공조도 강화해야 한다. 이번에는 부를 은행이 있었다. 다음에도 그럴지는 지금 어떤 제도를 만드느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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