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 맛길기행 .29] 이병철의 별표 국수 삼성그룹 밑거름

  • 입력   |  수정 2005-08-09  |  발행일 2005-08-09 제면
[경상도 맛길기행 .29] 이병철의 별표 국수 삼성그룹 밑거름
이병철씨

'돈병철'이란 별명을 가졌던 삼성그룹의 창업자 호암 이병철은 일본 와세다대 유학 시절 각기병에 걸린다. 그는 온천 요양 중 중대 결단을 내린다. 학업보다는 큰 사업가가 되겠다는 청운의 꿈을 품고 귀국한다. 26세 때 마산에서 협동 정미소 사업과 부동산업으로 성공, 27세 때 대구, 부산, 김해 등지에 200여만평의 토지를 차지하게 된다. 하지만 중일전쟁 때 자금동원령에 따른 은행 대출 동결로 큰 타격을 입는다. 재기를 노리며 대구로 진입한다. 38년 3월1일 대구시 중구 인교동 61의 1(오토바이 골목 서북단)에서 지하 1층, 지상 4층 크기의 삼성상회를 오픈한다. 이병철은 이곳에서 삼성그룹의 에너지원을 확보하게 된다.

그는 대구 근교에서 수집한 청과물과 포항 등지에 온 수산물 등을 중국과 만주로 수출하는 한편 국산 제분기와 제면기를 설치 별표 국수를 판 것이다.

삼성은 제면기를 통해 강아지풀 대 굵기만한 가는 건면을 뽑아냈고, 이걸 종이 띠로 어른 팔목 굵기만하게(375g, 3인분용) 포장해 상점과 식당에 팔았다. 삼성상회 앞에는 국수를 선점하려는 소도매상인들이 몰고온 이륜차, 짐자전거, 리어카, 말구루마로 북적댔다.

삼성상회의 주력 상품은 별표 국수. 하지만 이병철이 있을 땐 생각한 것만큼 장사가 안됐다. 별표 국수를 성공적으로 키운 사람이 나타나는데 그가 바로 이병철의 동향(경남 의령)인 박윤갑이다. 그는 먹고 살기 위해 이병철을 찾아간다. 사람 됨됨이를 간파한 이병철은 박윤갑에게 국수 공장을 맡기고 광복 직후 삼성물산을 서울에 구축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박윤갑은 그걸 야무지게 살린다. 사람 복이 많은 이병철은 또 한 사람의 능력가를 만난다. 그가 훗날 이병철의 오른팔이자 삼성의 감사가 되는 대구상고 출신 이창업이다.

그는 현재 대신동 서문빌딩 근처 조선양조장(대표주는 정종 월계관) 총관리인이 된다. 상경한 이병철은 6·25발발과 함께 생산 기반을 송두리째 잃은 채 대구로 내려온다. 그런데 이병철의 두 수족이 국수와 술 공장을 워낙 잘 살린 덕분에 훗날 제일제당, 제일모직의 설립자본을 마련하게 된다. 6·25 때 삼성상회는 현재 SK텔레콤 대구지사 자리에 풍국주정공장을 설립하고 삼성 사이다를 시판한다.

박윤갑(작고)은 후에 대구 상공회의소 회장과 새마을금고 연합회 회장 등을 역임하고 현재 동구청 자리에 삼성제지를 세워 제일모직 포장 상자 공급을 독점했지만 사업이 여의치 않아 이무일(작고)이 이끄는 무림제지에 넘어가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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