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미이위존(德微而位尊), 지소이모대(智小而謀大), 무화자선의(無禍者鮮矣). '덕은 없는데 지위는 높고, 지혜는 적은데 꿈이 크면, 화를 입지 않는 자가 드물다'라는 뜻이다. 주역 '화풍정(火風鼎)' 괘를 해설하며 공자가 남긴 말로 전해진다. 계사하전(繫辭下傳)에 수록돼 있다. 정(鼎) 괘의 4번째 효사(爻辭)에 대한 풀이이다. 효사 원문은 '구사(九四), 정절족(鼎折足), 복공속(覆公餗), 기형악(其形渥), 흉(凶)'이다. '솥의 다리가 부러져 음식을 쏟으니 그 몰골이 흉하다'는 경고를 담고 있다.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 경선에서 컷오프(공천배제)된 주호영 의원이 불출마를 선언할 때 장동혁 대표를 비판하며 인용한 문장이다. 고대 동양에서 솥(鼎)은 단순한 조리기구를 가리키지 않는다. 국가 권력이나 통치의 정당성을 상징한다. 주 의원은 국민의힘 공천의 부당함을 다리가 부러진 솥의 비극에 비유했다. 당의 원로로서 결코 가볍지 않은 메시지를 던졌다. 대구 시민들도 유권자의 선택권을 존중하지 않는 국민의힘 공천 시스템에 분노하며 주 의원의 일갈에 공감했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먹던 물에 침을 뱉지 않겠다'며 선당후사(先黨後私)를 다짐했던 주 의원이 느닷없이 상대당 후보를 응원하고 나섰다. 최근 유튜브 채널 '무늬만 빨강'에 출연, 민주당 김부겸 후보를 향해 "대구 발전을 위해 전력해 달라" "대구 시민들이 민주당에 대해서 나쁘게 생각하는 점을 바로잡아달라"고 말했다. 귀가 의심스러운 발언이다. 사활을 건 선거국면에서 상대당 후보의 선전을 기원하는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자당(自黨) 후보가 확정된 후에 상대당 후보에게 덕담을 건넨 것은 사실상 정치적 항복 선언에 가깝다. 정치적 도의나 정당 정치를 기준으로 보면 경악스러운 장면이다. "더 분발하라는 취지로 이해한다"는 추경호 후보가 안쓰럽기까지 하다. 정당의 정체성을 저버린 주 의원의 행보는 주역 인용의 진정성마저 부정하는 꼴이다. '말의 신용'이 파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의 '말의 무게'도 가볍기 짝이 없다. 대구시장 선거 출마를 접은 이 전 위원장은 달성군 국회의원 보궐선거 국민의힘 후보가 됐다. 추경호 전 의원이 대구시장 후보가 되고 비어있는 자리에 단수 추천을 받았다. 이 전 위원장은 그동안 보궐선거 출마설이 제기될 때마다 "야합이자 대구시민에 대한 배신 행위"라고 말했다. 이 전 위원장은 결국 야합과 배신의 길을 선택했다. 이제 대구 시민들에게 이 전 위원장의 언어는 원칙이 아닌 상황에 따른 변명으로 각인될 수밖에 없다.
말로 하는 게 정치다. 정치인에게 말은 단순한 의사소통 수단이 아니다. 정치적 자산이자 권력의 근거이다. 말의 무게가 곧 정치인의 인격인 셈이다. 지금 대구 정치판에 떠다니는 말은 선거철에 으레 등장하는 수사(修辭) 수준이 아니다. 가볍다 못해 기괴하기까지 하다. 정치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정치적 행위가 말과의 연결을 잃을 때, 정치는 기만으로 전락한다"고 했다. 신뢰와 책임을 잃은 정치인의 말은 대중을 속이는 기술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말이 신뢰를 잃으면 권위는 사라지고, 그 피해는 오롯이 대구 시민에게 돌아간다. 주역의 경구처럼 솥발이 부러진 뒤에 후회한들 엎질러진 대구의 자부심과 시민의 기대를 다시 담을 길은 없다. 공동체의 품격을 추락시키는 말은 정치가 아니라 권력을 향한 비루한 몸짓일 뿐이다.
조진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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