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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좌로부터 신재순·최정수씨. |
북구 노원동 3가 만평로터리 근처에 자릴 잡은 풍국면은 70년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소표와 함께 전국 최장수 국수공장으로 기반을 잡았다.
풍국면은 처음부터 국수 전문 공장으로 태어난 건 아니다. 원래 일본인의 제면제분 공장을 신재순(작고)이 인수했다. 하지만 창업 40여년만에 풍국산업은 사업합리화 차원에서 풍국면을 포기하고 79년 7월1일 당시 서문시장 최대 쌀 도매상 주인 최정수한테 매각한다.
풍국면의 전신은 33년 3월18일 서구 내당동 현재 내당파출소 동편 마루요시(丸吉) 제분·제면 공장. 이때 시스템은 반자동이었다.
마루요시는 49년 제면부, 제분부, 정부양곡 도정부를 가진 대한압맥공업(주)으로 업그레이드된다. 53년 (주)풍국산업으로 자릴 잡는다. 풍국은 이미 제면사업과 동시에 도정·제분 사업도 병행했다. 풍국은 국내에선 처음으로 일본에서 개발된 '인조미(人造米)'생산설비를 수입해 온다. 인조미는 압맥(押麥·납작보리)으로 불렸는데 압맥은 스팀 기계로 보리를 한 번 압열시켰기 때문에 쌀과 섞은 뒤 바로 밥을 해도 괜찮았다. 압맥 전엔 보리쌀을 먼저 삶은 뒤 쌀에 앉혀 번거로웠다.
신재순은 선친과 친했던 당시 대구 실세 동암 서상일을 찾아가 압맥이 군납될 수 있도록 요청한다. 그렇게 해서 한때 육·해·공군에 풍국의 압맥이 독점 보급된 적도 있다. 풍국은 60년대 후반 제면부 공장을 따로 마련하기 위해 부산의 영남제분 노원동 공장 부지를 인수해 풍국면 자동화 시스템을 세팅하고 73년 6월4일 구자춘 경북도지사, 이규이 대구시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풍국면 노원 공장 준공식을 갖는다. 풍국면이 거듭나는 순간이었다.
풍국면은 대구에선 처음으로 69년 3월5일 아리랑 라면을 개발하지만 참패 당한다. 삼양은 밀가루 공장에서 밀가루를 가져와 63년 라면을 개발해 돈을 엄청나게 번다. 당연히 기존 제분제면 회사들도 라면사업에 군침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삼양은 거리로 나가 연탄불로 라면을 끓여 행인들을 대상으로 무료시식 이벤트를 갖는 등 마케팅 마인드가 확립돼 있었지만 다른 제분 회사들은 오랜 독점 탓에 자만심에 빠져 있었다. 설상가상 정부는 지역 기업을 살리기 위해 지역 사정에 따라 각기 다른 원가를 반영한 정부 가격인 '고시가격제'를 78년 전격 해제한다. 대기업이 농림부에 로비를 한 것이다. 결국 풍국은 제분 영업권을 농림부에 반납하고 풍국면은 서문시장 쌀 도매 거상 최정수에게 매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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