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푸드] 와인야담(3)-경북대 북문 맞은편'산책'

  • 입력 2008-05-02   |  발행일 2008-05-02 제38면   |  수정 2008-05-02
전채는 그림…디저트는 클래식 공연
주메뉴는 스무가지 대구식 파스타
[와인&푸드] 와인야담(3)-경북대 북문 맞은편

◇…대구의 몽마르트르

몽마르트르.

해발 129m, 파리에서 제일 높은 언덕이죠. 경북대 북문 맞은 편 구릉지 골목과 비슷합니다. 북문 앞 대로는 대학로로 명명돼 있습니다. 새벽이 되어도 젊은 커플들은 쉬 귀가 못하고 샐러드 같은 수다를 흘립니다. 차 갖고 가면 고생만 합니다. '주차지옥존'입니다. 골목 주택가가 음식점으로 둔갑했고 여건상 자체 주차장을 갖출 수 없었겠죠. 대학가라서 저가 경쟁이 심각합니다. 좀처럼 1만원을 못 넘깁니다. 고물가 시대이니 자연 식재료는 후지고 대신 각종 양념과 소스는 바람난 여자처럼 화사합니다. 맛보다 폼을 더 잡을 수밖에 없을 겁니다. 하여튼 이 골목에 오면 전 파리지앵이 된 듯합니다.

대구 출신의 원중혁씨(44).

샐러리맨으로서의 출세가도를 10여년 전에 과감히 버리고 오너셰프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라운드 티셔츠가 무척 잘 어울리고 적당하게 훤한 앞 이마와 부리부리한 눈매, 첫인상이 무척 서글서글합니다. 8년전 이 골목에 왔다가 '대학로 주변에 왜 번듯한 문화가 없을까'라며 속으로 무척 속상해 했습니다. 그는 2천여장의 CD, 1천500여장의 LP를 가진 클래식 마니아. 직접 진공관 앰프를 조립할 정도입니다. 음악감상실과 바, 와인과 커피향이 흐르는 신개념 레스토랑을 꿈꿨습니다. 일단 파스타 요리에 도전했습니다. 서울로 가서 몇 군데 파스타 전문점에서 무봉급 직원을 자청, 파스타 하나만 팠습니다. 20여가지 파스타 기본기를 익혀 내려왔습니다. 다음엔 커피와 와인의 비밀을 캐냈습니다. 그의 그런 열정 때문에 초창기 가격을 고수하면서 하루 1~3번 장 보는 지역의 대표적 파스타 전문점 '산책'의 자존심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 산책표 토마토 해물 파스타를 먹어보니

원 사장은 지난해 11월4일 수성구 트럼프월드 지하에 입점한 (주)에이스 와인과 거래합니다. 이날 해물 파스타에 어울린다면서 2006년 프랑스 산 '보끌뤼즈(Vaucluse)'를 권했습니다. 과일향은 탄닌 속에 별로 스며들지 않았습니다. 쉬라즈 킬러맨즈가 무스를 잘 바른 신사의 머릿결 같다면 보끌뤼즈의 경우 헤어크림은 안 바른 대신 자기 중심이 잘 잡힌 중년의 은행원 같은 기품이 느껴집니다. 소믈리에는 혀를 위협적으로 공격하는 떫은 첫맛에 그렇게 무게 중심을 두지 않습니다. 떫은 맛은 일종의 가면 같은 거죠. 초보자는 탄닌의 무게감에만 치중돼 맛을 해석하려고 합니다. 그럼 놓치는 게 많습니다. 와인에도 이런저런 첨가향이 있을 겁니다. 또한 저장용기인 오크통에서 나오는 향 등을 빨주노초파남보, 무지개색처럼 낱낱이 분리해 배열할 줄 알아야 합니다.

산책은 자기 손으로 만든 걸 식탁에 올리려고 노력합니다. 채소와 해산물은 칠성시장, 닭 등 육류는 코스트 코, 홈플러스 등 대형마트에서 사옵니다.

샐러드 위에 노란 소스가 유채밭처럼 깔려 있습니다. 수제'허니 머스터드 드레싱'이라네요. 꿀과 머스터드 소스, 식초와 마요네즈를 섞어 만들죠. 샐러드 옆에 수제인 리코타 치즈가 있습니다. 우유와 생크림, 레몬즙을 섞어 1시간 30분쯤 미열로 가열해 만들죠. 또 하나의 전채요리가 나옵니다. 검정 체크무늬가 인상적인 접시에 걸쭉하게 졸인 흑갈색 발사믹 식초가 바닥에 기하학적으로 누워 있습니다. 프레시 모짜렐라 치즈 샐러드입니다. 토마토 위에 모짜렐라 치즈 올리고 그 위에 발사믹 식초에 정과처럼 졸여 식힌 양파를 얹습니다.

저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합니다. 이탈리아 오리지널 파스타도 의미있지만 그게 특정 도시에 융화된 패턴도 존중해야 된다고. 예전에는 무조건 오리지널은 퓨전식보다 한 수 위라고 믿었습니다. 원 사장은 대구식 해물 파스타의 원형을 제작했습니다. 새우도 작은 새우 몇 개보다 풍미를 위해 대하 한 개를 넣습니다. 토마토 홀로 소스를 만들 때 월계수 5~6장을 넣습니다. 올리브 오일에 마늘 굴리고, 해산물 넣고 화이트 와인으로 군내 날려주고, 끓는 물에 5~6분 적당하게 불려 토마토 소스와 섞어 30여초 센불에 익히면 끝. 파스타 가격? 8천900원입니다. 참고로 직접 만든 티라미수와 단호박 아이스크림은 그것만 사먹으러 오는 손님이 있을 정도로 맛이 압권입니다. 한 스님은 아이스크림을 연달아 5개 이상 먹었다네요. 산책은 커피명가 안명규 사장의 기술을 상당 부분 전수받아 스페셜 커피(1천500원 별도)를 대접합니다. 물론 대중 와인의 진수도 보여주겠답니다. 경북대 북문 맞은편 길로 들어와 산격3동 파출소에서 남쪽 두 블록째 코너에 있습니다.

◇…아침 월 두차례 살롱 음악회의 선두주자

홀에 피아노 클래식 기타 2대, 책장도 있습니다. 천장에 스포트 라이터를 달아놓아 그림과 사진 전시도 가능. 현재 정봉근 화백의 그림이 몇 점 걸려 있습니다. 산책의 매력포인트는 살롱 음악회. 이탈리아 요리에 심취한 테너 최덕술도 산책의 살롱 음악회를 존중합니다. 대금연주자 이수준도 수시로 산책 공연을 엽니다. 산책은 지역에선 처음으로 클래식 음악인들을 위한 살롱 음악회를 주도했습니다. 경북대 음대 정욱희 교수도 제자와 거기에서 공연 했습니다. 원 사장은 향후 문화공간 G, 한영아트홀, 공간 울림, 효성병원, 세페우스 등 10여개를 묶어 대구 살롱음악 페스티벌을 벌일 계획입니다. 영업이 잘 되면 유능한 음악가를 돕는 메세나 운동도 벌일 거랍니다. 오랜 만에 보는 문화가 뭔지 아는 셰프였습니다. 일요일 휴무. 영업은 밤 11시까지. (053)959-1626

[와인&푸드] 와인야담(3)-경북대 북문 맞은편
토마토 해물 스파게티
[와인&푸드] 와인야담(3)-경북대 북문 맞은편
프레시 모짜렐라 치즈 샐러드
[와인&푸드] 와인야담(3)-경북대 북문 맞은편
수제 단호박 아이스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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