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유일 女투우 조련사 안귀분씨 "번번히 지는 남편 대신…"

  • 입력 2010-03-26   |  발행일 2010-03-26 제38면   |  수정 2010-03-26
미용사 겸 조련사…청도선 일명 '바쁘다 바빠 여사'…"번번이 지는 남편, 보다못해 직접 뛰어들었죠"
국내 유일 女투우 조련사 안귀분씨

 올 청도대회선 4강도 못들어 "요즘 창이가 슬럼프라예…서운하지만 구박할 순 없죠 전의를 상실하면 안되거든요"
"연습요?…뒷산이 훈련장이죠. 거기서 뿔 들이받는 연습에 '100㎏ 폐타이어 끌기'등 땀이 흥건할때까지 함께 뛰죠"
"전 창이와 대화도 해요…한번은 우승후에 녀석이 나보고 인터뷰 잘하라고 사인을 보내더라고요. 참 기특한 놈이죠"

6년간 70회 이상 안창이와 의기투합…승률은 75% '전국 최고급 평가'
지난해 청도대회선 일반 갑종 우승…진주대회선 저력의 곰돌이 꺾고 1천만원 상금

◇ 나는 싸운다 고로 존재한다

안녕, 나는 싸움소(鬪牛) '안창이'.

여러분들도 매일 싸움하느라 고생이 많지만 나도 싸움을 해야 직성이 풀린다. 올해 나는 초등학교 4학년, 11살이다. 성은 안가(安哥). 엄마(안귀분·58) 성을 따왔다. 창은 내 뿔 모양이 창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인 것이다.

나는 싸우는 게 '일'이다. 들과 밭으로 일하러 안 나간다. 일소들은 내가 '상팔자'인 줄 아는데 그건 절대 아니다. 나도 잘 싸우기 위해 죽기 살기로 뿔을 들이민다. 난 요즘 휴대폰 통화음도 잘 들을 줄 안다. 내 동생 지혜(9세)는 가끔 휴대폰으로 내게 상냥하게 인사를 하지. 현재 미국에서 태권도 사범으로 활동 중인 종덕이 형도 엄청 좋아한다.

엄마 덕분에 6년전쯤 '쌈질'을 하게 됐다. 원래 내가 쌈을 잘 하는 줄 몰랐는데 어느 날 시합에 나간 뒤부터 싸움을 오래 안 하고 있으면 뿔이 근질거린다. 그럴 때는 뒷산에 엄마와 함께 올라가 소나무에 내 몸을 비비고 기분이 좋으면 '뿔 들이받기' 트레이닝을 한다. 역도 선수처럼 100㎏짜리 묵직한 폐타이어도 온몸에 땀이 날 때까지 몰고 다닌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처럼 거의 매일 운동을 해야 싸움판에서 살 수 있다. 소라고 다 소가 아니다. '싸움소 팔자'라는 게 있다. 부정해도 부정할 수 없는 길이라고 본다. 사람들이 우리끼리 '뿔받기'하도록 싸움장에 밀어넣었다. 우리들로선 일종의 '동족상잔(同族相殘)'이다. 나도 처음에는 '왜 우리끼리 싸워야 하는가' 하고 무척 괴로워했지만 이젠 아니다. 쌈을 즐기게 됐다. '사는 게 싸우는 거'란 걸 알았기 때문이다. 사람도 살기 위해 싸우잖는가. 우리도 살기 위해 싸운다. 인간의 싸움은 좀 뭣하다. 그런데 내 싸움은 순진하고 '암수(暗數)'도 없다. 지면 진 것이고 이기면 이긴 것이다. 사람들의 싸움은 이긴 게 진 것일 수 있고, 진 게 이긴 것일 수 있다. 우리 뿔은 '노출버전'이지만 인간의 뿔은 때때로 혓바닥은 물론 심장안에 숨길 때도 있다.

◇ 청도의 억척 아지매 안귀분

싸움소 '안창이' 엄마를 만나러 청도읍 청도전통시장 내에 있는 청미 헤어클럽으로 간다.

으잉, 그 미장원에 국내 첫 여자 투우조련사가 있다. 미용사가 싸움소를 몰고 다닌다면 믿겠는가. 그 이름 보무도 당당한 안귀분. 청도읍내에서는 가장 바쁜 여자다.

1인 3역으로 살고 있다. 안창이 조련사, 미장원 미용사, 여농군, 남편 잘 챙기는 현모양처, 이웃 잘 챙기기 등.

일명 '바쁘다 바빠 여사'. 목소리를 들으면 '부산 자갈치 아지매' 내공을 능가한다. 성격 화끈깔끔하고, 일상은 치밀하고 섬세하면서도 남 챙기는데는 두번 째 가라면 서러워한다. 애살은 물론, 눈썰미가 보통이 아니다. 그래서 그런지 주위에 사람이 끓는다. 청도전통시장 내 중앙교회 맞은편에 꾸려가는 미장원이 있다. 미장원 안으로 들어갔는데 이건 좀 아니다 싶었다. 청국장 띄우는 냄새와 비슷한 쿰쿰한 기운이 감돈다. 도심에 있는 향긋하고 세련되고 알록달록한 미장원이 아니다. 할머니 냄새가 미장원 곳곳에 스며든 탓이다. 벽에 각종 미용경기대회에서 받아 온 상장이 액자로 치장돼 있다. 참, 삶이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투우 조련사 겸 미용사라니. 미장원에서 가위질 하다가 투우경기가 있는 날이면 문을 닫아놓고 안창이를 트럭에 태우고 시합장으로 가야 한다.

기자가 미장원에 왔는데 그녀는 보이지 않는다. 문도 안 잠가놓고 볼 일 보러 간 모양이다. 미장원 의자에 앉아 하염없이 그녀를 기다렸다. 1시간 정도 지날 무렵 그녀가 후배와 함께 미장원 안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표정이 그렇게 밝지 않다. 지난해 청도 소싸움대회에서는 일반 갑종에서 우승을 차지했는데 올해는 4강에도 못 올라갔다. 진 것도 억울한데 안창이가 부상까지 당했다. 이래저래 속이 상해 남편은 안창이를 구박한다. 안창이는 아버지를 보면 겁을 낸다. 그녀까지 나무라면 안창이의 전의는 사라질 수 있다.

"요즘 안창이가 완전 슬럼프라예. 이번 청도 소싸움대회는 최고 악몽입니더. 지난해는 우승을 했는데 평소 자기보다 한 수 아래 소한테 졌거든요."

안씨가 현재 국내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싸움소인 안창이를 보여주겠다며 일어선다.

◇ 안창이 탐구

안창이가 묵고 있는 숙소는 어딜까. 청도읍에서 밀양 가는 국도로 4㎞쯤 가면 오른쪽으로 큰 은행나무로 유명한 적천사로 가는 길 중간 산속 우사에 있다. 안창이의 뿔은 투우용이라서 그런지 여느 사육소와 달리 크게 발달돼 있었다. 족히 한 자는 넘어 보였다. 그런데 지난 싸움 때 상대 소한테 너무 받혀 그런지 뿔 언저리에 피멍이 들었다. 엄마는 소염진통제를 발라주고 찜질도 해준다. 그렇다. 안창이도 사람 대접을 받는다.

"투우 찜질 어떻게 하는지 궁금할 거예요. 일단 머구 뿌리와 쑥 뿌리 말린 걸 삶아서 그 물로 환부를 덥혀주고 각종 연고도 발라줍니다. 찜질을 해주면 안창이도 시원한 걸 알고 빙그레 웃죠."

소가 기분이 좋아 웃을 때는 일단 입을 벌리고 머리를 상방으로 향한다. 그러면서 꼬리를 상모처럼 빙빙 돌린다.

창이는 지난 6년간 70회 이상 싸움을 했고, 승률은 거의 75%가 넘는다. 그래서 일반 갑종(820㎏ 이하) 종목에서는 안창이가 전국 최고급으로 평가받는다. 원동 마을 우사에 도착하니 안창이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서 있다. 안씨가 지난 일요일 패전을 떠올리며 안창이를 위로해준다.

" 창아, 싸움에 져서 너도 서운하제, 나도 서운하다. 다음에는 멋지게 싸움해보자. 알았제!"

사진부 이지용 기자가 안씨를 보며 더 다정하게 포즈를 취해줄 것을 주문하자 그말을 들었는지 안창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싫은 내색을 해댄다.

◇싸움소에 대한 사소한 궁금증

전국에 다양한 소싸움 대회가 있다.

크게 13개 대회가 있다. 청도, 진주, 의령, 김해, 창녕, 창원, 보은, 정읍, 완주 등이다. 이중에서 국제급은 단연 청도이고, 메이저급은 진주와 의령이다. 특히 진주는 매주 토요일 진주시 판문동 민속소싸움경기장에서 열린다.

다음카페에 들어가면 싸움소 관리 공간이 있다. 다음카페 '전통민속놀이 소싸움 서포터스'로 들어가면 된다. 현재 진주에 살고 있는 이현창씨가 시삽으로 총관리하고 있다. 이씨는 안창이의 전력은 물론 기질, 장단점에 대해 손금처럼 들여다 보고 있다. 싸움소도 암컷이 있을까. 있을 것 같은데 국내에는 없다. 통상 소의 수명은 암소의 경우 22년, 싸움 황소는 평균 11~12년 정도 산다. 일반 비육우와 달리 싸움소는 흥행성이 있기 때문에 몸값이 장난이 아니다. 싸게는 500만원짜리도 있고 비싼 건 2억까지 호가하기도 한다. 안창이의 경우 시합 경험이 없을 때도 8천만원에 달했다.

전국에 싸움소는 얼마 정도 있을까. 1천500여마리가 활동하며, 이중 제대로 싸울 줄 아는 건 750여마리다.

◇ 미용사였던 그녀가…

안씨는 원래 미용사였다. 그런데 13년전쯤 남편이 새끼 암소 두 마리를 축산사업을 위해 구입해 왔다. 소를 키우던 어느 날 이웃에 사는 싸움소 주인 정실근씨가 그녀를 시합장에 데려갔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조련사에 대한 감각이 없었다.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싸움소에 대한 그리움이 싹텄다. 남편이 500만원 주고 투우 한 마리를 구입했는데 안씨 맘에는 차지 않았다. 결국 그 소는 곁을 떠나고 이어 덤프, 옥뿔이 등 네마리 싸움소가 지나갔다. 마지막 안씨와 운명적으로 조우한 소가 안창이다.

초창기에는 남편이 싸움소를 데리고 갔고 그녀는 시합장 밖에서 "창아, 받아라"면서 피를 쏟다시피하며 응원을 했다. 하지만 남편은 갈 때마다 번번이 졌다. 시합도 지고 돈도 날리고, 정말 속상했다.

"이기면 적잖은 돈을 받기도 하지만 지면 시합 비용이 고스란히 공중으로 날아가버립니다. 보다못해 내가 현장에 뛰어들었어요."

안창이는 전형적인 싸움소다. 공격적이고 뿔도 발달했다. 눈이 민첩하고, 발목도 가늘고 발톱도 뭉툭해 쌈꾼들이 탐을 낸다.

◇ 잊을 수 없는 함안대회

그녀에게 가장 가슴 벅찬 대회는 6년전 함안 대회였다. 그때 그녀는 업둥이 두 딸을 양육하는 한편, 미장원에 농사까지 책임져야 했다. 더구나 운전 못하는 남편을 위해 아침과 오후에 원동 우사에 데려가고 데려와야만 했다.

"시합장은 승부 때문에 분위기가 억수로 긴장됩니다. 그래서 흉흉한 일도 자주 벌어지요. 괜찮은 소가 있다면 시합 때까지 옆에서 지키고 있어야 합니다. 상대편 관계자가 해코지를 할 수 있기 때문이죠. 보통 대회 열리기 3일전부터 우사 확보 경쟁에 들어가요."

하지만 안씨는 시합에만 전념할 수 없었다. 가사가 너무 많아 3일전에 대회장 근처로 갈 수 없었다. 당시 범룡이란 싸움소를 키우고 있던 이웃 아저씨한테 자리를 부탁했다. 대회장에 나가서 소 무게를 재고, 그게 끝나면 부리나케 청도로 와서 학원간 아이를 데려갔다 데려왔다. 그게 끝나기 바쁘게 함안으로 갔다. 여느 사람처럼 밤에 대회장 옆을 죽치고 앉아 있을 수 없었다. 남편을 차로 모셔온 뒤 다시 함안으로 갔다. 대회가 있으면 5일간 미장원 문을 닫는다.

-가장 감동적인 시합은 어디였습니까.

"일단 지난해 5월 열린 진주민속소싸움 대회였어요. 모두 338 두의 싸움소가 출전했고 안창이는 무제한급에 출전했습니다. 8일간 소들이 토너먼트로 쌈을 했지요. 끝판에는 1천㎏에 육박하는 창녕의 '곰돌이'를 제압해 1천만원을 받았어요."

◇ 싸움소는 어떻게 길들여지나

처음부터 싸움소가 있는 건 아니다.

길을 들여야 한다. 1단계는 산책하기. 제대로 걷게 만든다. 다음에는 다리 근력과 심폐 기능을 돋우기 위해 비탈길을 1시간 이상 걷도록 한다. 처음부터 오래 걷게 하면 화를 낸다. 10분에 이어 20분, 30분, 1시간, 이런 식으로 시간을 늘린다. 다음엔 스태미나를 올리기 위해 100㎏ 타이어 끌기, 마지막엔 필살기인 뿔로 들이받기를 위해 소나무 등 나무에 머리를 받으면서 싸움에 대한 감각을 익히게 만든다. 투우는 하루에 4번 여물을 먹는다. 밤참은 밤 11시 어름.

-소하고 대화를 할 줄 안다고 했는데.

"그렇다. 지금 안창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지 잘 압니다. 힘들면 눈물도 흘리고, 귀찮으면 머리를 좌우로 흔들죠. 내가 가장 그놈한테 감동한 건 얼마전 대구 대회에서 우승할 때 카메라 플래시 세례를 받을 때 안창이가 나에게 인터뷰 잘 하라는 사인을 줄 때였습니다. 투우도 철이 듭니다. 어릴 때는 훈련하는 게 싫어 나를 언덕 아래로 밀기도 했습니다. 이젠 나를 배려할 줄도 압니다."

-환갑이 눈앞에 왔는데 계속 시합장에 갈 건가.

"투우 관리하는 게 너무 힘들어요. 안창이가 숨을 거두면 나도 시합에 안 나갈 것 같습니다. 대신 쉰 넘어 얻은 업둥이 두 딸을 반듯하게 키워 시집 보내는 게 내 꿈입니다."

◇ 취재후기

취재 때 그녀는 남편과 부부싸움 중이었다. 그녀는 남편이 자기 하자는 대로 했으면 좋다고 했지만, 남편은 자기 생각이 있는 것 같았다. 이번 기사를 계기로 꽃샘추위 같던 관계가 만화방창(萬花方暢)하기를 빈다. 1인 3역하며 죽을 고생을 하는 아내를 위해 '남편님, 한발 양보해주세요. 약속하시죠.' 기자도 한발 양보하며 살겠습니다.





국내 유일 女투우 조련사 안귀분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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