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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이 주자가례(朱子家禮)가 살아있는 예향(禮鄕)이라 일컬어지는 것은 종가를 중심으로 한 반가(班家) 문화가 살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반가의 여인네가 할 일 중 접빈객(接賓客)과 봉제사(奉祭祀)는 큰 비중을 차지했다. 어른들께서 늘 하신 말씀이 '빈객불래 문호속(賓客不來 門戶俗: 손님이 오지 않으면 집안의 예절이 속되어진다)'이라 했으니, 법도 있는 집안간의 교류를 통해 가문의 중심을 굳게 지켜왔으리라. 더욱이 내 집에 들른 손님을 빈 입으로 보내서는 도리가 아니라 하여, 철 맞춰 접빈 음식을 장만하고 보관하는데 정성을 들였다. 그중에 퍽 서민적이면서도 세밑 시절 음식으로 익숙한 '안동 식혜'가 있다.
농암 종택 구경을 갔을 때, 종손 이성원 선생께서 "안동 문화권이 어디까지인가"라는 질문에 "안동 여인이 시집을 가서 안동 식혜를 해먹는 곳까지"라고 답하신 적이 있다. 우스갯소리 같지만 내방(內房)의 음식문화를 통한 가문간의 교류는 지리적 간격을 뛰어넘어 가장 빠른 융화 수단이 되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식혜는 고두밥에 엿기름물을 부어 뜨겁게 발효시켜 만드는 음료이나, 안동식혜는 고두밥과 무채, 엿기름물에 고춧가룻물과 생강즙을 섞어 약간 따뜻한 온도에서 발효시켜 만든다. 후루룩 마실 수 있는 맑은 식혜와 달리 건더기가 많아 숟가락으로 떠먹으니, 대접에 넉넉히 퍼서 상위에 숟가락과 함께 차려진다. 한겨울 추운 날씨와 붉은 빛깔의 맵싸하고 차가운 이것은 묘하게 궁합이 맞다.
비록 어려운 시절이었으나 겨울철 집집이 대청마루 한 구석에 식혜 단지가 있었고, 집안 형편에 따라 다양한 식혜를 내왔는데, 수수쌀로 빚은 것은 밥알이 꾸덕꾸덕 씹혀 먹을 것이 많았고 기장으로 빚은 것은 밥알이 작아 국물이 맑았다. 양철 채칼로 길쭉길쭉 썬 무채가 숟가락에 척 걸쳐져 입을 한껏 벌려가며 먹으면 어찌 그리 시원했으랴.
집보다는 바깥 만남이 많고 먹을거리가 지천인 이즈음, 손님을 위해 정성들여 음식 장만할 일이 없으니 내방의 법도는 지켜지기도 전해지기도 어렵다. 아이들일지라도 손님으로 알아 입 다실 것을 내어주고 행동거지로 집안을 짐작해 보던 시절, 한나절 걸려 앉힌 식혜단지를 싸놓으면 하마나 익을까 군침 돌리던 날들, 그것은 그리움 이상으로 지키고 싶은 아름다움이다.
김필숙(안동문화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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