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일의 방방곡곡 길을 걷다] 통영 8경 연화도 트레킹

  • 김찬일 시인·방방곡곡 트레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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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4-15 10:53  |  수정 2026-04-15 10:54  |  발행일 2026-04-17
연화도의 비경 중 하나인 해식애. 만물상으로 보는 시각에 따라 천태만상의 형상을 볼 수 있다.

연화도의 비경 중 하나인 해식애. 만물상으로 보는 시각에 따라 천태만상의 형상을 볼 수 있다.

시나브로 4월이 오고, 청명 한식날 새벽 나는 두류공원 주차장 곁 벤치에 앉아 있었다. 오전 7시에 출발하는 연화도 트레킹에 참석하기 위해 일찌감치 나와 기다리는 터였다. 벌써 벚꽃이 만개해 바람이 불 때마다 떨어지는 꽃송이에 맞아 나는 정신이 혼미해지곤 했다. 그 잔인한 4월 첫 기억은 항상 황무지에서 시작됐다.


"4월은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우며, 추억과 욕망을 뒤섞고, 봄비로 잠든 뿌리를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만물이 소생하는 4월에 우리 정신 더 메말라간다. 일상생활에 활력소 되는 믿음 고갈되고, 사랑 없는 성은 환락의 도가니 되고, 그리고 부활이 거부된 죽음, 그 공허한 추억은 항상 욕망에 섞여 고통을 준다. 이제 구원의 메시지를 어디서 찾을 것인가. 뭇것이 피어나는 4월에 우리의 영혼은 왜 그렇게 시들어가는가. 이제 우리의 삶터 황무지가 되고 있다. T.S 엘리엇은 그렇게 노래했다.


어느덧 버스가 도착했고 곧이어 출발했다. 세 시간을 달려 대하 장편소설 토지로 국민의 가슴을 흙으로 채워준 여류 소설가 박경리 유택이 있는 미륵도를 바라보며 통영항에 도착했다. 통영항은 미항으로 유명하지만 도리어 활기가 넘치는 항구였다. 마침 여객선 출발 시간 어림에 당도하여 승선하자, 육지에 미련이 없다는 듯이 남해의 연화도로 떠난다.


연화도 보덕암에서 바라본 통영 8경인 용머리해안. 뛰어난 비경으로 명성이 높다.

연화도 보덕암에서 바라본 통영 8경인 용머리해안. 뛰어난 비경으로 명성이 높다.

맑은 날씨임에도 옅은 해무가 가시거리를 당긴다. 해돋이가 아름다운 미륵산정이 보이고, 동양의 시드니 통영 앞바다의 풍광이 서서히 얼굴을 드러낸다. 섬은 그리움이다. 그리움은 해무 속으로 다가온다. 자기 모습 감추고, 그렇게 가슴 저미는 추억의 흑백영화로 다가온다. 바다 위를 떠돌던 아련한 그리움 닻을 내려 섬이 된다. 바다 물결이 끝없이 밀려와 뱃전을 때린다. 저 물결 위로 봄날은 간다. 새파란 풀잎이 물에 떠서 흘러간다. 옷고름 씹어가며 시집살이 간다. 효녀 심청이 용궁 간다. 바다 밑 용궁을 이제 믿지 않는다. 인간은 바다를 더럽혔고, 바다가 새 생명 길러내지 못하는 날, 심판의 날이 될 것이다. 그때는 모두 간다. 목줄 걸고 저승사자 따라간다. 갈매기가 배 뒷전에 따라온다. 승객들이 던지는 새우깡을 받아먹기 위해 수백 마리 갈매기 군무 추며 따라온다.


나는 그날 새우깡 세 봉지를 먹이로 던졌다. 팔이 아프도록 채식주의자를 던지고, 유랑 청춘을 던지고, 여자의 일생도, 가장 슬픈 노래 내 가슴에 내리는 비는 더 멀리 던진다. 배의 스크루가 뿜어내는 하얀 포말에 떨어지는 새우깡을 찾아 먹는 갈매기의 기능이 새삼 감탄스럽다. 갈매기의 비행은 야간 비행 문장보다 더 아름답다. 끼룩끼룩 우는 갈매기, 남해의 안개 속에 뱃고동 울고, 다도해 등대 위에 갈매기 운다. 배가 연화도에 접근하자, 갈매기떼는 순식간에 흩어지고 없다. 더 높이 더 빨리 날기를 꿈꾸던 그 갈매기의 꿈이 허망하게 사라졌다. 배가 선착장에 닿고 하선했다. 연화도 지도가 있는 안내판에서 오늘 걸어야 할 길을 더듬어 본다.


연화봉에서 용머리해안으로 가는 돼지목 협곡의 비경과 남색 바다. 환상적인 풍경이다.

연화봉에서 용머리해안으로 가는 돼지목 협곡의 비경과 남색 바다. 환상적인 풍경이다.

먼저 연화봉으로 걷는다. 시작은 한 걸음이지만 그 끝은 기쁨으로 가득하리라. 정자를 지나고 허적허적 산길을 올라 연화봉에 닿는다. 그야말로 다도해의 사방이 조망되는 뷰 포인트다. 섬과 섬들이 바다 위에 뜬 수련처럼 아름답다. 몇 개의 큰 섬을 짚어보면 먼저 욕지도다. 이 섬의 이름이 된 '알고자 하거던' 뜻은 화엄경의 '약인욕료지(若人欲了知)'에서 빌려온 말이다. 높은 돌담섬 두미도, 이충무공의 얼이 숨 쉬는 한산도, 산호빛 섬 비진도, 바람의 섬 대매물도, 사랑이 변한 섬 사량도 그밖에 무인도, 많은 섬이 바다의 그물망에 주저리주저리 걸려 있다.


이제부터 내리막길이다. 곧이어 토굴이 나온다. 이 토굴은 연화도사가 지었다고 한다. 조선조 연산군(1496~1506)의 억불정책으로 연화도로 피신 은신한 연화도사가 연화봉 밑에 토굴을 짓고 수행했다. 그 이후 사명대사가 연화도에 들어와 토굴 터에 움막을 짓고 수행, 크게 깨우쳤다 한다. 바다가 환히 보이고 초목이 싱그러운 산길을 걷는 것은 희열 그 자체였다. 내려가다 보덕암에 들른다. 해안 조망이 일품인 보덕암, 여기서 보는 통영 8경 용머리해안은 뛰어난 비경을 자랑한다. 다시 능선길에 오른다. 건너다보이는 산자락에 이름 모를 풀잎이 돋아나오고, 연화도 고구마를 통영의 먹거리로 키워낸 붉은 밭들이 진홍빛 속살을 드러내고 있다. 설치 예술이다. 능선 길 아래 그 어디 메에 두렁여 솔다랑 소쿠리 강정이 있다. 얼마나 아름다운 지명인가. 곳곳에 야생화가 피어 있다. 가슴에 항상 엉겨 있는 붉은 가래 같은 것이 야생화로 피어 있다.


용머리해안으로 가는 트레킹 로드에서 본 연화도 출렁다리. 햇빛의 환상 같다.

용머리해안으로 가는 트레킹 로드에서 본 연화도 출렁다리. 햇빛의 환상 같다.

해풍이 분다. 긴 바람의 거친 숨결 때문이었을까. 나뭇잎이 몸부림친다. 어떤 곳에는 조망이 막무가내로 터지고, 저만치 달아나는 너의 분신처럼 바다와 섬은 안단테 낮은 음으로 화음을 만든다. 저 아름다운 풍광을 보고 걸으면, 그리움이 이곳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망부석을 지난다. 고기잡이 배를 타고 먼 바다로 나간 지아비를 기다리다 돌이 되었다는 전설이다. 이 시대는 아무도 전설 속으로 들어가 걷지 않는다. 전설을 잃는 것이 꿈을 잃는 것임을 모르는 채.


산자락에 무덤이 있다. 누군가가 천년의 잠을 자고 있다. 그들을 위해 상사곡 한 곡조 불러도 좋으련만, 그들이 다시 태어난다면 청정한 서방 정토에서 환생하기를 기원한다. 아무라도 죽는다. 젊은이들아 너 청춘은 백년 청춘이냐, 네 백발은 본래 백발이더냐. 문턱이 저승이다. 살아생전에 공덕 많이 닦아라. 연분홍 치마도 바람 부는 날에 입어야지. 동행에게 걸쭉하게 털어놓는다. 모처럼 사람 사는 맛이 난다. 사람은 이러구러 사는 것이다. 영원히 걸어라. 맨발일지라도.


출렁다리에서 도로로 내려와 연화도 마을버스를 호출해 타고 항구로 돌아온다. 막배를 탄다. 배가 바다로 나가고, 어디서 왔는지 어둠이 내려와 바다와 합숙을 한다. 성급한 별똥별이 밤하늘에 나타나 바다에 뛰어내린다. 우리는 아직도 여행의 흥분으로 들떠 있었다. 즐거운 시간은 아쉽고 짧다. 어느 사이 여객선이 통영항에 몸을 기대고 발을 올린다.


세계 미항에 들어가는 통영항의 일몰. 통영 앞바다와 금빛 노을 시가지가 야광빛에 꿈결같이 아름답다.

세계 미항에 들어가는 통영항의 일몰. 통영 앞바다와 금빛 노을 시가지가 야광빛에 꿈결같이 아름답다.

저녁을 먹으러 시장으로 가는데 젊고 아름다움이 뚝뚝 흐르는 두 명의 여성이 버스킹을 하고 있다. 아, 아, 가두리 양식장 참돔보다 더 파닥이는 체니들. 갈색 머리를 한 여인이 노래한다. 빗금으로 떨어지는 가로등 빛을 받으며 예쁜 입에서 허스키 노래에 귀가 찡하다 가슴이 먹먹하다. 장대 높이 뛰기, 바를 넘어가는 노래다.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였다. '얌전한 몸매에 빛나는 눈, 고운 마음씨는 달덩이 같고, 이 세상 끝까지 가겠노라고, 나하고 강가에서 맹서를 하던, 이 여인을 누가 모르시나요.' 모여 선 구경꾼 박수가 요란하다. 눈에 튀는 한 청년이 여가수에게 묻는다. "가수님, 몇 살 때부터 예뻤어요" "이제부터 여기 오려고요" 그러자 관중이 폭소를 터뜨린다.


우리는 식당으로 향한다. 저녁 후 버스에 오른다. 버스는 흥겹게 달린다. 대구의 불빛이 나타난다. 내 고장 대구는 불빛만 봐도 알 수 있다. 오늘 하루 잘 넘어갔다. 젊은이는 희망에 살고 늙은이는 추억에 산다. 희망과 추억에는 주름살이 없다. 오늘 여행은 추억의 꽃꽂이가 된다. 어리석은 사람은 방황하고 현명한 사람은 여행을 한다. 어디로 가느냐 묻지 마라, 본래 그 자리다. 다 왔다 하지 마라, 출발한 그 자리다. 잔인한 달 4월 트레킹은 그렇게 마쳤다.


글=김찬일 시인·방방곡곡 트레킹 회장 kc12taegu@hanmail.net


사진=양재완 여행사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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