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영남대로의 길목이었던 옛 유천역을 중심으로 재현된 청도 유천문화마을. 1960~1970년대 모습을 그대로 재현했다.
경부선 철도가 도시와 도시를 잇기 시작하면서 청도의 시간도 새로운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기차가 실어 온 근대의 문물과 생활양식은 전통적인 농촌 공동체의 삶과 어우러져 청도만의 독특한 근대 풍경을 만들어냈다. 시간이 흘러 추억이 된 간이역 역사(驛舍)에는 그 시절 마을의 영광이 전설이 돼 마중을 나와 있다. 오누이 시조 시인의 다정한 시심(詩心) 혹은 대한민국 경제성장의 첫 단추가 됐던 저력의 역사까지. 철길 따라 이어지는 청도의 근대 문화 속으로 시간 여행을 시작한다.
85년 된 정미소, 경북 첫 학교 들른 후
오눙 시조시인 이호우·이영도 생가
들풀시조문학관·유등연지서 詩心충전
◆1일 차, 유천역의 추억이 머문 유천문화마을
근대 영남대로의 길목이자 물길과 철길이 만나는 유천문화마을은 옛 유천역에서부터 시작된다. 고려시대부터 역이 설치됐다니 그만큼 교통의 요지다. 지금은 사라진 유천역을 재현해 놓았다. 마을 길로 들어서면 1960~1970년대의 모습이 그대로 펼쳐진다. 한때 유명한 오일장과 극장, 경북 최초의 학교가 있었다는 번화가를 복원해 재정비한 문화거리는 마을 사람들이 실제 사는 공간과 복원된 건물들이 어우러져 생동감이 넘친다. 다양한 벽화를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여기서 미션, 청도군에서 여름밤이면 횃불을 밝히며 은어를 잡았던 모습을 담은 '유천어화'의 벽화를 찾아보라.
좀 더 골목 안으로 들어서면 1941년에 지어진 '영신정미소'를 만난다. 85년의 역사를 고스란히 품은 서까래가 인상적이다. 1992년의 정부 양곡 판매 가격표도 붙어 있다. 1967년 지어져 화재로 소실된 후 2008년 재건축된 유천극장 앞에는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이 눈에 띈다. 사진만 찍지 말고, 극장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1970년대 교복&교련복 입기 체험뿐만 아니라 상주하고 있는 문화해설사에게 마을 안내를 받을 수 있다.
추천받은 장소는 우리나라 시조 문학의 거장인 이호우·이영도의 생가였다. 오누이가 태어나서 자랐다는 단아한 한옥에 기품이 넘친다. 1910년쯤 지어진 근대 한옥의 앞마당에는 오빠와 동생의 시조가 한 편씩 사이좋게 전시돼 있다. 시조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낸 이호우와 간결한 언어로 절제된 미를 담아낸 이영도. 짧은 정형 안에 넓은 세계를 담는 그들의 시조처럼, 생가 역시 크지 않은 공간 안에 한국 현대문학사의 한 장면을 오롯이 품고 있다.
우리나라 시조 문학의 거장 이호우·이영우를 기리는 들풀시조문학간. 2024년 화가인 민병도 관장이 문을 열었다. 사진은 들풀시조문학관에 있는 이영도 전시실.
청도 들풀시조문학관 앞에 있는 이호우 시비와 이영도 시비.
◆시심 더 깊이 들어가기, 들풀시조문학관과 유등연지
이호우 시조 시인을 좀 더 가까이서 느껴보고 싶다면 장소를 옮겨 보자.
금천면 동창천 가까이에 자리한 들풀시조문학관은 2024년 문을 연 사립 시조 문학관이다. 마을 안쪽에 있어 '제대로 찾아가는 것이 맞는가'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주차장이 나온다. 화가인 민병도 관장이 오랜 세월 모은 자료를 바탕으로 조성한 이곳에는 현대시조의 흐름을 살필 수 있는 시조집과 육필 원고, 고서와 미술 자료 등이 모여 있다. '오누이 시조 방'이라는 전시 공간에서는 이호우와 이영도의 집필실과 그들의 육필 자료들을 만날 수 있다.
청마 유치환에게 보내는 이영도의 편지를 보는 재미도 있다. 유치환 시인이 20여 년간 이영도 시인에게 5천여 통의 절절한 연서를 보낸 것은 유명한 일화다. 시인들의 사랑을 뒤로하고, 2층으로 올라가면 잠시 쉬어가는 북카페가 마련돼 있다. 동창천의 물길과 산자락 풍경이 펼쳐지니 천천히 즐겨보는 것도 좋겠다.
시심(詩心)은 청도관광 9경 중 7경인 유등연지로 이어진다. 둘레 약 700m, 깊이 약 2m의 오래된 연지에 수많은 분홍빛 연꽃 봉오리가 머리를 내밀고 있다. 연꽃 봉오리를 배경으로 이영도의 '연꽃' 시비가 서 있다.
시비를 뒤로하고 조선시대 모원 이육 선생이 청도에 은거하면서 세웠다는 군자정에 들어서면 청도의 '맑은 길'이 마지막 문장처럼 다가온다. 유등연지를 둘러본 후 일정과 체력이 허락한다면 지역 식당에서 연잎밥이나 청도의 제철 식재료를 맛보는 것도 추천한다.
볕 뜨겁기 전 청도읍성~석빙고 산책
민속촌 국밥, 감 빙수로 청도 맛 만끽
새마을운동발상지기념공원도 볼거리
◆2일 차, 돌담 위를 걸으며 도시의 시간을 읽다
새로운 날이 밝으면 이른 시간에 청도읍성에 올라보라. 햇살이 뜨거우면 걷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화양읍의 평지에 자리한 청도읍성은 고려시대부터 그 연원을 찾을 수 있으며, 조선시대에 토성에서 석성으로 정비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성벽은 전쟁을 막는 군사시설이었지만 동시에 관아와 시장, 민가를 품은 생활의 경계였다. 지금은 복원된 성벽과 누각, 주변의 옛 관아 건물과 석빙고가 청도의 오랜 행정 중심지를 보여준다.
추천 동선은 성벽과 누각을 따라 걷고, 도주관과 고마청, 형옥 등 주변 유적을 살펴본 뒤 청도석빙고까지 이어가는 길이다. 청도석빙고는 조선시대 얼음을 저장하던 시설로, 땅 온도와 공기의 흐름을 이용한 옛사람들의 지혜를 보여준다. 읍성 서문 성벽 밑에 자리한 전통 한식당인 청도읍성 민속촌에서 맛보는 얼큰한 소고기국밥 한 그릇도 여행의 맛을 더해준다. 근처 카페에서는 감을 활용한 빙수 등 청도만의 디저트를 맛볼 수 있다.
청도 신도리는 1969년 8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수해마을 시찰을 위해 특별열차를 타고 가던 중 수해 복구와 마을 가꾸기에 자발적으로 나선 마을 주민들의 모습을 목격한 뒤 새마을운동을 구상하게 된 역사적 장소이다. 그곳에 새마을운동 발상지 기념공원이 조성됐다.
새마을운동 발상지 기념공원에 있는 박정희 대통령 동상.
◆새마을운동발상지기념공원, 한 마을의 변화가 시대의 이름이 되다
청도 근대 문화 여행의 마지막 목적지는 청도읍 신도리에 자리한 새마을운동발상지기념공원이다.
신도마을은 1969년 8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수해마을 시찰을 위해 특별열차를 타고 가던 중 수해 복구와 마을 가꾸기에 자발적으로 나선 마을 주민들의 모습을 목격한 뒤 새마을운동을 구상하게 된 역사적 장소이다. 새마을 광장, 기념관, 테마파크, 편의시설 등 둘러볼 곳이 꽤 많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사용했던 것과 동일하게 재현한 대통령 전용 열차와 신거역 역사에 들러 과거의 영광을 느껴본다.
역 뒤 선로에는 이곳에서 멈추지 않는 기차가 풍경처럼 지나간다. 새마을운동의 역사를 좀 더 살펴보려면 새마을운동발상지기념관을 찾으면 된다. 특히 아이들과 함께라면 새마을 학습지를 풀거나 각 장소에 비치된 스탬프 도장을 찍으면 기념품을 받을 수 있다.
공원 안의 '새마을 시대촌'은 1960~1980년대 농촌 주거 형태를 재현한 공간으로, 최근 숙박동을 리모델링해 외부 모습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객실 인테리어 전면 개선과 가구 교체 등 다양한 시설 보강을 통해 방문객들에게 더욱 편안한 숙박 체험을 선사할 예정이다. 후속 정비와 운영 준비를 거쳐 8월부터 새롭게 문을 연다. 이곳에서 하룻밤을 머물게 된다면 신도마을 입구의 다리 아래로 내려가 보라. 약 4천㎡ 면적에 조성된 새마을 무궁화동산에 여름의 기운을 받은 무궁화들이 만개해 있다.
근대 골목과 시, 연꽃과 무궁화, 그리고 한 시대를 풍미한 사람들의 이야기! 청도에서의 1박2일은 삶과 문화가 공존해온 청도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과거 속을 거닐며 만나게 되는 여유. 이영도 시인의 '연꽃'이라는 시 한 구절이 떠오른다.
유두(流頭) 달빛이 /연연히 내리는 이 밤
꽃송이 /곱게 떠오른 /연(蓮)못 가로 나오라.
글=박성미 영남일보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
사진=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공동기획 - 청도군청>
이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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