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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밑이 되니 타향에서 돌아와 함께 보낼 식구들 생각에 마음이 바쁘다. 장성하여 출가할 날이 다가오는 아이들에게 어미의 진정을 담은 덕담 한 마디 있어야지 생각하니, 살아온 날들의 아쉬움에 일하는 손끝마저 무디어진다. 옛적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이야기로 달래볼 수밖에.
안동에서 동남쪽 영천 방향 국도로 길안면 소재지를 지나 조금 더 가면 묵계리 마을이 나온다. 마을 왼쪽에는 보백당(寶白堂) 종택과 묵계서원이 있고, 오른쪽으로 강을 건너 마을 뒤의 골짜기를 한참 올라가면 만휴정(晩休亭)이 있다. 조선 초기 청백리로 이름난 보백당 김계행 선생께서 연산군의 폭정을 피해 낙향하여 머물던 곳이다. 50대에 과거에 합격, 여러 관직을 맡으시다 돌아와 고향인 풍산읍 소산 설못 가에 정자를 지었으나 번잡하여 더욱 조용한 곳을 찾아 옮긴 곳이란다.
정자 앞에 희고 널찍한 바위가 수직으로 내려서서 계곡 사이 물로 폭포를 이루니 때맞춰 하얗게 얼어붙은 빙벽은 눈부신 장관이다. 계곡 건너 산자락에 집을 앉히고, 너럭바위 계곡물 위로 외나무다리를 놓아 한결 운치를 더했다. 정면에 만휴정 현판과 함께 '오가무보물(吾家無寶物) 보물유청백(寶物惟淸白)'이란 유훈이 걸려있다. 젊은 시절 성주향교 교수로 부임했을 때 국사(國師) 대우를 받던 학조 스님이 숙부(叔父)인 선생을 만나러 왔는데, 아랫사람이 대사의 신분이 더 높다하여 선생을 모셔가려 했단다. 이에 병을 핑계대어 아니 가시고 학조 스님이 오자 그 교만함을 매로써 꾸짖었단다. 장성한 조카의 종아리에 선명한 붉은 줄 새겨줄 그런 숙부님, 기꺼이 매를 받을 훌륭한 조카가 그립다.
무릇 집이란 그곳에 몸담아 사는 사람과 그의 삶 전체로 지켜질 것이다. 선생께서 느지막이 돌아가 쉬기를 원하셨던 곳은 어디였을까? 오직 하나 청백이 있을 뿐이라 하셨으니 몸담을 집이 아니라 정신이 머물 곳을 이르셨을 터이다. 돌이켜보건대 내 아이들에게 보물 하나 설핏 보여준 적이 있었던가 싶어 어미된 자리가 심히 부끄럽다. '오이왕지불간(悟已往之不諫) 지래자지가추(知來者之可追)'. 지나간 일은 돌이킬 수 없고 앞으로 다가올 일은 바로 잡을 수 있다 했으니, 떨치고 돌아가 머물 곳 이제라도 함께 살펴봐야겠다. 귀거하처!(歸居何處:돌아가 머물 곳 어드메뇨)
김필숙(안동문화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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