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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른 집 홀로 지키시는 내 어매(어머니)의 방 한 벽에 '애일지성(愛日之誠)'이란 서품(書品)이 걸려있다. 인사차 들렀던 벗이 써보낸 글이다. 담박해 뭉툭한 글은 어매에게 무심한 나를 아는 듯, 볼 적마다 면구스럽다.
일찍이 농암(聾巖) 이현보 선생께서 어머니의 늙어감을 아쉬워하여 나날을 아낀다는 뜻에서 애일당(愛日堂)을 지었다더니, 이제 그 글이 타향으로 흩어진 우리 육남매를 대신하여 어매를 지극히 모시고 있는 형국이 되었다.
바람 없어 볕이 따신 어느날 마침내 그 민망함을 이기지 못해 어매를 채근하여 나들이에 나섰다. 몇 번을 와도 싫은 기색 없이 옛날 얘기가 이어지는 길, 즐겨 다니시던 길을 택한다. "여기가 안동 장에서 국수방망이 사들고 걸어오시다 팔에 말 섰다는 솔티 고개지요?" "그기 야문 박달나무라 조매 무거버야지." 시내를 벗어나면 어매의 말소리에 힘이 실린다.
풍산읍에서 하회마을 쪽으로 가다 소산 마을 입구에서 차를 세운다. 마을 동쪽 나지막한 언덕배기에 그림 같은 삼구정(三龜亭)이 있다. 연산군 때 안동김씨 소산 입향조 김삼근 공의 손자인 김영수 공이 형제들과 함께 노모를 즐겁게 해드리려 세웠다 한다. 정자 앞에 거북 모양 돌 세 개가 나란히 있어 그리 이름지었다하고, 거북처럼 오래 사시라는 뜻이었단다. 형제들이 노모를 봉양하기 위해 가까운 고을 수령으로 왔을 뿐만 아니라, 좋은날 모시고 올라가 색동옷을 입고 재롱을 피워 노모를 즐겁게 해드렸다는 얘기가 전한다.
멀리 북쪽으로 학가산이 둘러서있고 사방으로 펼쳐진 논밭은 텅 비어 더욱 너르다. 남쪽에는 곡강천을 따라 절벽과 숲이 끝없이 이어지고, 정자 밖 푸른 솔은 느티나무 고목과 어울려 겨울 멋을 더한다.
"아이구 시원타! 막힌 속이 다 트인다. 명문(名門)이 달리 있을라꼬? 부모 잘 모시고 형제간 우애 있어 배운 걸 잘 지키는 게지."
재롱거리 없는 나는 차가운 어매 손만 비비며 애일(愛日)을 생각해본다. 반나절 나들이에도 어매의 눈길은 따뜻하기만 하다.
김필숙 (안동문화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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