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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은 한 명민했던 시인이 세상을 떠난 지 꼭 22년이 되는 날이었다. 바로 기형도 시인이다.
기형도의 이름으로 나온 책은 시집, 산문집, 추모문집, 전집 이렇게 모두 네 권이다. 그 중 산문집에 실린 '짧은 여행의 기록'을 보면 기형도가 죽기 한 해 전, 그러니까 1988년 여름에 대구를 찾은 이야기가 나온다. 기형도는 대구에 대해 이렇게 썼다.
"(…) 대구는 나에게 대통령을 뽑은 무서운 도시, 시인들만 우글거리는 신비한 도시, 그리고 폭염의 도시로 달려들었다. 이성복, 이하석, 이태수, 장정일, 구광본, 그리고 김춘수, 한때의 이문열, 그리고 작가 석경 고향도 그곳이었다. (…)"
그 해 대구방문에서 그는 장정일 시인을 만난다. 장정일을 그는 '장정일 소년'이라 불렀는데, 같은 글에 보면 장정일에 대한 인상기도 읽을 수 있다.
"(…) 장정일은 책은 지문 묻을까봐 손을 씻은 뒤 읽으며, 초판만 읽지 재판은 읽지 않으며, 책에는 볼펜자국을 남기지 않으며, 한 번 본 시들은 모두 외우다시피 한다고 내게 이야기했다. (…)"
그날 기형도는 장정일에게 '내 고통의 윤곽을 조금 말해주었'고, 장정일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맥주만 마시니 기분이 이상하다'고 했다. 언뜻 쉽게 연결이 되지 않는 두 시인은 '시운동'이라는 동인에서 함께 활동했다. '시운동'은 하재봉, 남진우, 박덕규, 안재찬(류시화), 이문재 등 당시 젊은 시인들이 활동했던 1980년대 대표적인 시동인이다.
기형도가 죽고, 5년 후 나온 추모문집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에서 장정일은 기형도가 살아 있으면서 계속 시를 썼다면 어떤 방향으로 가게 되었을까 점쳐보고 싶은 욕망을 억제하지 못한다고 했는데, 이제는 시가 아닌 다른 장르의 글쓰기에 매료되어있는 장정일에 대해서도 나는 마찬가지 감정을 느낀다.
기형도의 시가 여전히 젊은 청춘들을 위무하고, 장정일의 '햄버거에 대한 명상'같은 시가 아직도 유효하게 읽히는 시대를 살고 있는데, 요즘 쏟아지는 시들은 대중과 너무 많이 멀어진 게 아닐까.
한 명은 이 세상에 없고, 다른 한 명은 시쓰기를 그만두었으니 시를 좋아하는 독자로 퍽 섭섭한 일이다.
장우석(독립영화감독·물레책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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