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 2012] 作家 경북음식을 이야기하다 <5> 이하석이 만난 경주 팔우정 해장국

  • 박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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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07-23   |  발행일 2012-07-23 제11면   |  수정 2021-06-02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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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팔우정해장국 골목의 대표 메뉴인 메밀해장국. 탱탱하게 씹히는 메밀묵의 질감과 시원하고 담백한 국물 맛이 일품이다. 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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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석(시인·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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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장국골목에서 가장 오랜된 식당인 ‘팔우정해장국’을 운영하고 있는 이귀록 할머니가 양념을 담고 있다. 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Story Memo
‘작가, 경북음식을 이야기하다’ 5편은 경주 팔우정해장국에 대한 이야기다. 경주시 황오동 팔우정 삼거리 서남쪽 태종로변에는 20여곳의 해장국집이 모여있다. 일명 ‘팔우정해장국골목’으로 불리는 곳이다. 골목의 이름을 딴 ‘팔우정’은 옛 선비들이 모여 시를 읊고 학문을 강론하던 정자를 말한다. 팔우정해장국골목의 대표 메뉴는 메밀묵해장국. 엉뚱하게도 해장국 위에 메밀묵이 버젓이 올라있다. 여기에 콩나물과 신 김치, 해초인 모자반을 듬뿍 넣고 끓여낸다. 콩나물과 메밀묵의 만남. 언뜻 들으면 꽤 어색한 조합이다. 하지만 맛을 본 사람들은 탱탱하게 씹히는 메밀묵의 질감과 시원하고도 담백한 국물 맛을 잊지 못해 술 먹은 다음날에는 어김없이 찾게 된다고 한다. 경주만의 독특한 해장국 문화가 담긴 음식인 셈이다. 술~술~ 잘 풀리는 팔우정해장국골목, 지금 그곳의 이야기속으로 들어가보자.

 

#1
“팔우정 가서 속이나 풀까?”

경주에서 흔히 듣는 말이다. 팔우정 해장국 골목이라 하지 않고 그냥 ‘팔우정’이란 한 마디로 통한다. 어제 오늘의 말이 아니다. 광복 후부터 쭉, 어쩌면 6·25 때부터 쭉 그래왔다. 경주 여행에서 경험했던 ‘팔우정 해장국’의 기억을 갖는 이가 많고, 그래서 이 거리는 전국적으로 입소문을 타고 유명해졌다. 그러니 ‘팔우정’이란 한 마디면 다 알아듣는다.

경주 시민이나 인근의 사람들에게는 더 말할 게 없다. 경주는 세계적인 관광지인 만큼 여행객들이 많이 찾아든다. 이들은 장날이나 축제일, 또는 그냥 시내에 볼일을 보면서, 또는 이곳저곳 문화유적들을 기웃거리다가 고도의 흥취에 못 이겨 술을 나누게 마련이다. 그런 다음 늦은 밤이나 새벽을 가리지 않고 이 거리에 와서 해장국으로 속을 달랜다.

통행금지가 있었던 시절에는 아예 술집 구석에 진을 치며 밤을 새우기도 했는데, 새벽이면 심한 숙취의 어지럼증을 겪게 마련이었다. 그걸 풀기 위해 눈을 부비면서 걸어와 팔우정 해장국 골목으로 왔던 것이다. 여명이 부윰한데도 어디선가에서 제법 사람들이 몰려와서는 식당을 기웃거린다. 죽 늘어선 허름하기 짝이 없는 식당들을 아무 곳에나 찾아들어 좁은 방 안에 옹기종기 엉덩이를 부딪치며 앉으면, 주문할 것도 없이 이내 해장국이 나온다.

이 거리는 과거 통행금지가 있던 때를 제외하고는 거의 24시간 영업을 해왔다. 그래서 다른 집을 찾을 것 없이 주독을 푸는 곳으로는 가장 먼저 떠오르게 되고, 가장 쉽게 찾아드는 곳이 되어버렸다.

오랫동안 이 지역은 팔우정 로터리로 불렸다. 경주시 황오동, 팔우정 삼거리 서남쪽 태종로변에 식당가가 형성되어 있다. 가까운 곳에 경주역이 있지만, 중심가에서 약간 비켜난, 쪽샘 골목 지역과 붙어 있다.

옛날에는 정자가 있었다. 조선조 광해군 때 육의당 최계종이란 이가 아들 셋을 낳고 정자를 지어 주위에 나무 여덟 그루를 심었다고 한다. 최계종의 큰 아들인 성훈랑 동노가 8형제를 두어 이 나무 아래 정자에서 예의를 닦고 학문에 정진했다. 여덟 그루의 나무는 강건하게 자라났고, 8형제도 모두 당대에 현달했다. 그런 연유로 이곳에 있는 정자 이름을 팔우정(八友亭)이라 부르게 됐단다. 그 연유를 비로 새겨 함께 세웠다. 정자는 조선조에 몇 번 중수됐으나 오래전에 허물어져 사라졌다. 비만 남은 것을 1950년 로터리를 조성할 때 로터리 한 가운데에 세워놓았다. 1993년 로터리가 철거되자 비를 옮겼다가 2009년 문중의 중지를 모아 팔우정 삼거리 북서쪽에 팔우정 정자를 새로 짓고, 공원을 조성해놓았다. 비도 세워놓았다. 해장국 거리 건너편이 바로 그 공원이다.

이 지역에 해장국집이 들어서기 시작한 때가 언제인지 의견이 분분하다. 광복 후부터라고도 하고, 6·25전쟁 때부터라고도 한다.

이곳에서 파는 해장국은 일명 ‘콩나물메밀국해장국’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 특이한 해장국은 과거부터 쭉 있어온 게 아니고 어느 땐가 서민들의 전통국인 갱(경상도 말로는 갱시기)의 한 종류로 국에다 메밀을 포함시킨 게 인상적이다. 50년 전 한 노부부가 경주 염매시장에서 새벽장을 보러 오는 이들을 위해 이 해장국을 만들어 팔았는데, 당시에도 술독을 푸는 데 아주 인기가 있었다. 염매시장이 폐쇄되자 누군가가 이 해장국을 이곳 팔우정 로터리 길 가에서 팔기 시작했다. 입소문을 타고 사람들이 몰리자, 한 집 두 집 늘어나더니 어느덧 길게 늘어선 식당가가 형성됐고, 곧장 경주의 명물거리로 알려졌다. 경주에서 한 가지 음식으로 이렇게 골목이 형성되고, 시도 때도 없이 사람들이 줄을 잇는 곳은 이곳이 유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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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시 황오동 팔우정 공원. 해장국골목 건너편에 있는 공원에는 정자와 황오동고분군 3호고분 옆에서 옮겨온 ‘팔우정 비’가 있다. 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2
해장국은 우리만의 독특한 음식이다. 나라마다 술독을 푸는 음식이 있긴 하지만, 해장국 문화는 국을 좋아하는 우리나라만의 특이한 문화라 할 수 있다. 흔히 술국이라 불리는 국도 있고, 해장국이라 불리는 국도 있다. 술국은 술집에서 안주로 쓰는 토장국의 일종인데, 아주 얼큰한 것을 일품으로 친다. 해장국은 술을 마신 후 속을 풀자고 먹는 술이다. 예부터 전해오는 성주탕(醒酒湯), 또는 해정탕(解湯)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성주탕은 고려말엽 중국어회화 교본인 ‘노걸대’에 나오는데, 해장국 용어로는 우리나라 최초의 기록으로 꼽힌다. “육즙을 잘게 썰어 국수와 함께 넣고 천초가루와 파를 넣는다”는 설명이 붙어 있다. 조선후기에 최영년이 쓴 ‘해동죽지’에는 광주성내의 효종갱이라는 게 나온다. 배추속대, 콩나물, 송이버섯, 표고버섯, 소갈비, 해삼, 전복을 토장에 섞어 종일토록 푹 고은 다음 이 국 항아리를 솜에 싸서 밤새 한양으로 보내면 새벽녘이면 재상 집에 도착한다고 했다. 효종갱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도 새벽종이 울릴 때 서울에서 받아먹는 국이란 뜻에서 취했다. 밤새 대신들과 술을 거나하게 한 다음 새벽에 숙취를 풀기 위해 효종갱을 받아서 아직 따뜻하면서도 얼큰한 국물을 들이켜는 그 맛이 장히 시원했으리라.

지금의 해장국은 1883년 개항과 함께 인천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당시 인천에는 항구건설이 간단없이 이루어지고 잦은 화물출입으로 서양인들은 물론, 노동자들이 몰려들었다. 서양인들은 육식을 주로 하기 때문에 다른 지역보다 소를 많이 잡았다. 서양인들은 소의 등심과 안심을 가져갔고, 남은 잡육과 뼈를 국으로 끓여서 이른 아침 일터로 가는 일꾼들의 허기를 달래기 위해 해장국으로 팔았던 게다.

그러나 각 지역별로는 이와 별도로 나름의 주독을 푸는 국들이 예부터 다양하게 이어져 내려왔다. 그러니 해장국은 각 지역별로 다양할 수밖에 없다. 민물장어 매운탕, 동치미류와 사골을 섞은 것, 북어콩나물국, 나물무국, 황태해장국, 선지해장국 등 갖가지다. 전주의 콩나물해장국이 유명하고, 부산 해운대의 북국, 충청도의 올갱이국, 동해의 곰취국, 하동의 재첩국, 여수의 장어탕, 대구 따로국밥 등 각 지역별로 특색 있는 국들이 수두룩하다.

경주 팔우정 식당거리는 경주식 해장국으로 콩나물과 메밀을 함께 끓여낸다.

#3
팔우정 식당이란 간판을 보고는 안으로 든다.

나이가 들어 보이지만 단아한 기품이 느껴지는 할머니가 웃으며 맞는다. 방안은 좁다. 테이블 다섯 개 정도가 겨우 놓여 있어서 사람들이 비좁게 둘러 앉아 먹게 되어 있다. 벽면에는 텔레비전에 출연했던 사진들이 쭉 걸려 있어서 그동안 이 집이 매스컴에 꽤 소개가 된 걸 짐작한다. 메뉴는 단출하다. 해장국이 주 메뉴이고, 선지국과 추어탕도 있다. 해장국을 시킨다. 그러면서 할머니에게 “이집에서 장사한 지 얼마나 됐어요”하고 물어본다.

“이 집이 해장국을 판 지는 50년도 더 됐어요. 내가 인수를 한 것은 30년 전이고”라고 할머니는 대답한다. “이 집이 이 골목에서는 가장 오래 됐지요.”

해장국은 콩나물해장국의 범주에 드는 국인데, 여기에 묵과 모자반을 넣은 것이 절묘하다. 육수가 시원하다. 북어머리와 마른 새우, 멸치, 다시마를 함께 고아서 만든다고 한다. 데친 콩나물과 메밀묵 위로 국물을 끼얹고, 바다해초인 모자반과 김치, 마늘 다진 것을 얹은 후 참기름과 갖은 양념장을 살짝 얹어낸다. 무엇보다 이 골목의 해장국은 메밀묵을 쓰는 게 특이한데, 찬 성질을 가지고 있어서 술로 피곤해진 장을 시원하게 다스려준다고 한다. 얼큰한 맛은 없다. 그 대신 아주 담백하다. 콩나물의 아삭거림과 메밀묵의 미끈미끈한 감각이 입안에서 어울리면서 묘한 맛을 낸다.

콩나물의 해장능력은 이미 잘 알려진 바이고, 메밀은 단백질과 필수 아미노산, 탄수화물, 비타민류, 인산 등이 들어있어서 위장과 대장 같은 소화기의 기능을 도와준다고 한다. 말하자면 해장국의 재료로 손색이 없다는 게다. 바다해초인 모자반은 항암효과가 있고, 고혈압과 중풍에 좋다는 선전도 해놓고 있다.

국에 밥을 말아서 먹기도 하고, 밥 따로 국 따로 먹기도 한다.

먹으면서 이 맛을 두고 젊은 사람들이 좋아할까라고 의문을 가져본다. 맛으로 치면 이 해장국은 구수함 이상으로 그 ‘오묘함’을 설명하긴 힘들다. 다른 많은 음식과 비교해서 이 국물맛을 아주 좋다고 꼽기는 힘들 것이다. 그러나 해장국은 맛으로 먹는 게 아니라 그 ‘시원함’으로 먹는 것이다. 맛을 음미하면서 천천히 먹는 것이 아니라 후루룩 들이켜듯 마시고는 길게 숨을 토하는 맛이 바로 ‘시원함’의 맛이라 할 수 있을까? 어쨌든 이 해장국의 시원한 맛은 이미 굳어져 경주의 명물이 됐다. 우리의 소박한 갱죽에 대한 평가가 뜻밖에도 크게 이루어지고 있는 현장이 바로 경주 해장국 골목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식당가는 개발 바람에 자꾸 위축되어가는 느낌이다. 주변의 쪽샘 골목지역은 이미 관광지로 거듭나기 위한 발굴과 개발이 한창이다.

“이 곳도 재개발 바람이 불 터인데, 그 때 해장국은 어디서 팔지요” 라는 물음에 주인 할머니는 한숨을 쉰다.

“그러면 끝이지요.” 의외로 간단한 대답이다.

“끝이라니요. 이 골목이 사라지면 명물이 사라지는 겁니다.”

“아이고, 여기 종사하는 이들은 전부 늙은이입니다. 이들이 죽으면 이 골목도 끝나는 것이지요.”

글쎄, 그렇지는 않을 것이라고 나는 낙관해본다. 경주시도 이 명물거리를 가만히 버려두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기에는 이 골목이 이미 너무 유명해져 버렸다. 해장국 골목이 없는 경주를 상상할 수 없도록 말이다. 경주시는 안압지 주변의 연꽃 단지가 유명해지고, 역사적 의미까지 곁들여서 각종 연 요리를 시 대표음식으로 만들려하고 있다. 또한 육부촌장 육개장과 곤달비빔밥으로 만든 별채반을 경주 향토음식으로 개발하고 상품화할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이런 음식에 비해 거칠기 짝이 없지만, 우리의 갱이라는 소박한 음식이 이 지방특유의 해장국으로 거듭나 명소의 식당가를 형성하게 된 것에 무심할 수 없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공동기획: pride GyeongB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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