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임금님도 즐겨 먹었던 간식거리…“떡볶이를 우습게 보지 마세요”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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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1-22   |  발행일 2016-01-22 제42면   |  수정 2016-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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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전 떡볶이 세상에 별의별 메뉴라인이 속출하고 있다. 만촌동 ‘떡볶이를 부탁해’는 갤러리 카페 같은 분위기에 전골 같은 떡볶이 시대를 열었다.

하굣길 분식집에서 만난 떡볶이. 그 옆에는 항상 납작만두와 순대가 놓여 있었다. 분식집 아줌마는 어른 엄지손가락보다 굵은 가래떡이 어떻게 고추장 소스와 잘 결합할 수 있을지 궁리했다. 어느 날에는 칼집도 넣고 또 어느 날에는 꾸덕하게 얼린 가래떡의 속을 도려내고 그 안에 치즈를 넣어보기도 했다. 매콤함과 달콤함의 비율을 어느 정도로 할 것인지는 항상 난제였다.

이명박정부 때 적극 추진됐던 한식세계화사업. 그때 영부인 김윤옥 여사는 떡볶이를 한식의 대표주자 중 하나로 적극 밀었다. 그때부터 떡볶이는 한국을 대표하는 국제적 포스를 갖게 되고 별의별 퓨전떡볶이가 우후죽순처럼 대두한다. 서울 신당동은 16년 전부터 ‘떡볶이 축제’를 시작해 ‘한국 떡볶이 동네 1번지’로 발돋움했다. 하지만 마니아는 대구발 떡볶이에 더 관심을 둔다.

지난해 8월28일 방영된 SBS 백종원의 3대천왕 떡볶이편에 출연한 대구 3대 떡볶이 명가는 ‘윤옥연할매떡볶이·중앙떡볶이·달고떡볶이’였다. 백종원은 최고의 떡볶이 맛집을 찾기 위해 대구 3대 떡볶이 맛집을 방문했다. jtbc ‘수요미식회’에도 소개됐던 윤옥연할매떡볶이. 이 가게는 한강 이남에서 가장 매운맛을 자랑한다. 특히‘천천천’이라는 주문방법이 인상적이다. 떡볶이(1천원)·어묵(1천원)·튀김(1천원)을 세트로 시키는 것이다. 저렴한 떡볶이 가격 때문에 떡볶이 하나만은 주문이 안 된다.

올해 36년 역사의 신내당시장 내에 있는 달고떡볶이. 가게에서 걸어서 2분 거리에 있는 달성고 근처에 있어 ‘달고’란 상호를 붙였다. 올해 87세의 김점분 할매가 1대 사장이고 며느리 배미옥씨(60)가 2대 사장이다. 중간 크기의 밀떡을 사용하고 수제 납작만두와 국내산 고춧가루를 사용한다. 순대와 계란이 떡볶이와 앙상블을 이룬다. 동성로에 있는 중앙떡볶이는 달고떡볶이보다 한 해 전에 생겼다. 떡볶이를 납작만두에 싸서 먹도록 한다. 특히 소스맛이 남달라 따뜻한 밥 위에 부은 후 전자레인지에 2분간 데워 먹으면 또 다른 맛을 느낄 수 있단다.



예전 궁궐에서는 궁중떡볶이가 인기 있는 주상의 간식거리였던 모양이다. 물론 고춧가루가 들어가지 않는 민낯버전의 떡볶이다.

고추가 없던 시절이라 생나물·마른나물·쇠고기에 간장을 넣고 볶아 만들었다. 드라마 ‘대장금’에 나오는 궁중떡복이를 떠올리면 된다. 고추가 들어온 뒤 조선 중기의 증보 산림경제(1766년)에 최초로 ‘만초장(蠻椒醬)’이라는 이름으로 고추장 담그는 법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18세기 이전까지는 간장 양념만 하는 맵지 않은 떡볶이를 주로 먹었다는 얘기다. 문헌상으로는 1800년대 말의 조리서인 ‘시의전서(是議全書)’에 떡볶이가 처음 등장한다. 윤숙자 전통음식연구소장은 “당시 기록으로 볼 때 떡볶이는 원래 기름에 볶는 게 아니라 양념장과 물을 붓고 은근히 끓이는 찜의 한 종류였다"며 “만드는 법도 떡찜 조리법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 매운 떡볶이의 등장

그럼 매운 떡볶이는 언제 등장했을까?

전문가들은 본격적으로 고추장을 이용한 매운 떡볶이가 자리 잡은 시기를 1950년대 이후로 보고 있다. 궁중과 양반집 음식에서 서민 음식으로 변모한 것이다. 매운 떡볶이는 고추장과 설탕, 물엿으로 매콤달콤한 맛을 갖게 된다.

서울의 대표 떡볶이는 ‘신당동 떡볶이’. 반세기 이상의 역사를 자랑한다. 떡과 고추장 소스, 라면 사리, 어묵 등을 넣고 손님이 직접 끓여 먹는 즉석 떡볶이도 이 동네에서 나온다. ‘맛의 비결은 며느리도 모른다’는 광고 카피로도 잘 알려진 ‘마복림 할머니집’이 유명하다. 70년대 들어 신당동에 떡볶이집이 늘어나면서 본격적으로 떡볶이 골목이 조성됐다. 초창기 떡볶이는 연탄불로 조리했다. 신당동 떡볶이 골목이 유명해진 것은 MBC ‘임국희의 여성 살롱’이란 프로그램에 소개된 뒤부터다. 70년대 중반 떡볶이 집 한 곳이 뮤직박스를 설치하고 DJ를 고용해 인기를 끌면서 신청곡을 받아 음악을 들려주는 DJ 문화까지 상륙한다.


궁중·양반집 음식이던 떡볶이
1950년대 이후 서민 음식 변모
고추장·물엿과 만나 매콤달콤

영어 표기는 ‘Topokki’

메뉴 다양화되고 브랜드화 추세
1∼2년 전부턴 떡찜도 보급
해물이나 갈비 등 추가 맛 독특
갤러리카페 스타일 전문점 등장


포장마차 음식에 머물던 떡볶이가 최근 몇 년새 브랜드화하고 있다. 길거리 포장마차에서 깨끗한 인테리어의 점포 안 메뉴로 바뀐 것은 물론 메뉴도 다양화했다.

짜장 떡볶이, 마늘 떡볶이, 치즈떡볶이 등뿐만 아니라 떡 모양도 길쭉한 것에서 별·돼지 모양까지 무척 다양해졌다. 떡볶이에 해물이나 등갈비 등을 추가한 ‘떡찜’도 1~2년 전 보급되기 시작했다. 지역에 따라 케첩이나 후추, 겨자 등을 첨가해 독특한 맛을 내기도 한다.

떡볶이도 얼마든지 웰빙 트렌드에 맞춰 고급 건강식으로 변신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떡볶이를 영문표기법으로 표기하면 ‘Tteokbokki’다. 하지만 이 철자는 너무 길고 복잡하다. 외국인이 발음하기도 기억하기도 어렵다. 농식품부는 떡볶이의 세계화를 위해선 보다 친숙한 영문 표기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언어학자·요리전문가와 영어권·비영어권 외국인을 대상으로 의견을 수렴했다. 그 결과 나온 떡볶이의 국제 이름이 ‘Topokki’다. 외국인에게 이국적이면서도 강한 청각적 이미지를 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것.

◆ 대구 수성구 만촌동 ‘떡볶이를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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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볶이를 부탁해’박무호 사장은 떡볶이를 간식이 아니라 든든한 한 끼 메뉴로 개발해 가족단위 단골까지 생기고 있다.

처음에는 KBS2 개콘 인기 코너인 ‘끝사랑’에 등장하는 개그맨 정태호인 줄 알았다.

수성구 만촌동 수성대 근처 골목에 자리한 ‘갤러리카페’ 스타일의 떡볶이 전문점인 ‘떡볶이를 부탁해’의 박무호 사장(43). 진짜 정태호를 빼닮았다. 떡볶이집 사장 콘셉트에 딱인 것 같다. 가게 벽에 백종원과의 기념사진도 걸려 있다. 3대천왕 대구 떡볶이편 때 한 수 배울까 싶어 방청객으로 참석했다.

가게 입구가 눈길을 끈다. 노란색 톤의 입구 파사드(가게 입구), 참 모던하면서도 감각적이다. 입구 통유리창에 여배우 전지현·송혜교·김태희의 스티커를 부착해놓았다.

여기는 일반 분식점이 아니다. 갤러리가 있는 ‘떡볶이 카페’다. 실제 이 집에 와서 커피 운운하는 이들도 종종 있다. 구석 자리에 별실이 있는데 그곳을 눈여겨본 대구 청년작가회가 이 가게를 ‘대구 작은갤러리 1회’로 정하고 신춘 전시회를 여기서 갖고 있었다. 20여 작품이 걸려있다. 떡볶이와 갤러리.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데 어울린다.

요즘 방송에 자주 출연하는 가수 샘 김의 사인이 벽에 붙어 있다. 알고보니 얼마 전 대구 경북대 북문쪽에서 어린이재단 기부를 위한 ‘희망푸드트럭’을 깔았을 때 샘 김이 이집 떡볶이를 주문한 모양이다.

통유리창 앞 자리는 혼자 앉아야 제격. 여느 커피숍 창가 자리와 비슷한 느낌이다. 커피 대신 떡볶이를 먹으며 폰질하며 멍 때리기에 좋은 것이 매력이다.

일단 두 종류(기본형과 나가사키떡볶이) 떡볶이를 주문했다.

불판이 깔끔하다. 인덕션 위에 냄비를 올려놓는다. 5분 정도 되니 끓기 시작한다. 쌀떡 대신 밀떡을 받아 사용한다. 어른 새끼손가락 굵기인데 미리 물에 담가놓아 말랑말랑하다.

전지 크기의 철판에서 대량으로 만들어놓은 걸 주문 때마다 종일 퍼내주는 걸 거부한다. 전골처럼 즉석에서 끓여먹도록 했다. 그래서 꼭 ‘떡볶이전골’같다. 아니 떡이 들어간 스파게티·어묵탕·짬뽕처럼도 보인다. 얼큰하면서 걸쭉한 전골 국물 같은 소스에 튀긴 김밥(충무김밥 크기)과 튀긴 파를 찍어먹으면 ‘이런 별미가 어디서?’란 급호감이 일어난다. 튀긴 파는 솔직히 첫인상은 별로였는데 먹을수록 은근히 당긴다.

박 사장은 ‘짬뽕 같은 궁중떡복이’를 구상하다가 현재 메뉴라인을 갖게 된다.

‘나가사키떡볶이’도 먹어봤다. 퓨전 나가사키라멘인 셈. 고춧가루가 없는 말간 육수에 우동사리, 새우, 홍합 등 여러 해물에 채소류, 그 위에 1천원이 넘는 튀긴 낙지 한 마리를 올려준다. 맛의 선도를 위해 매일 10인분만 판다. 식재료 안배에 적잖은 고생을 했다. 처음에는 주꾸미를 넣어보기도 했는데 영 모양이 나지 않았다. 지금은 물밀가루반죽을 묻혀 튀기면 국물이 칙칙해질 것 같아서 마른 밀가루를 대충 발라서 낙지를 튀긴다.

밥이 생각나면 뭉쳐놓은 리소토 같은 주먹밥을 시켜먹으면 된다. 어떤 손님이 고추장 국물에 밥을 볶아먹는 걸 보고 착안했단다. 여긴 고추장 대신 고춧가루로 소스를 만든다. 콩나물, 김밥말이, 치즈, 오징어, 우엉, 인삼뿌리 등 1천500원대의 별별 튀김이 많다. 그래서 아이를 대동한 가족 단위 단골이 점차 늘고 있다. 맛은 매운맛과 순한맛 두 종류.

사장 박씨는 동구 효목동에서 ‘장안해물탕’, 수성구 만촌동에서 ‘만득이숯불촌’을 꾸려간 모친의 손맛을 많이 이어받았다. 한때 돈가스집을 운영했다. 북구 연경동 더덕 전문 한식점 ‘이가네’ 등에서 음식의 기본기를 익힌다. 1년간 식당암행어사인 ‘미스터리 쇼퍼’로도 활동을 했다.

‘떡볶이 이상의 떡볶이’를 위해 지난해 아내(이나영)와 일을 저질렀다. 만면에 미소 가득한 부부로 인해 떡볶이도 매일 방실거린다. 수성구 만촌3동 854-30 (053)744-0714 밤 10시 영업 종료. 매월 둘째 월요일 휴무.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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