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의 바다인문학] 멍게, 바다를 품다

  • 임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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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4-10   |  발행일 2020-04-10 제35면   |  수정 2020-04-10
밥상과 술상 무대…사계절 주연 등극
멍게된장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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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게국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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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통영 전통요리연구가인 이상희 셰프가 개발한 멍게비빔밥.
멍게에게도 대양을 헤엄치는 원대한 꿈이 있었다. 멍게의 유생은 올챙이 모양으로 헤엄을 친다. 게다가 뇌는 물론 물고기가 갖춰야 할 지느러미에다 후각, 신경, 척삭 등 고등생물에 미치는 기관을 가지고 있다. 그러다 바위나 산호초 등에 정착 생활을 하면서 불필요한 뇌를 스스로 소화시켜 먹고 생존에 꼭 필요한 '먹고 싸는 것'만 남긴다. 이만큼 '미니멀 라이프(Minimal Life)'한 생을 사는 생물도 드물다. 꿈을 접는 대신에 쌉쌀한 단맛, 바다 맛을 몸에 가득 품었다.

내장·아가미·심장, 즐겨 먹는 부위
통통하고 색깔 선명해야 신선한 맛
위기 느끼면 물 뿜어대 '바다의 물총'
10m 굵은줄에 유생 붙은 가는줄 묶어
2년 정도 자라면 생산 '수하식 양식'
통영 생산량 80%…4월까지 마무리

톳·세모가사리·김 등 해초의 오방색
통영 합자젓과 컬래버 '멍게비빔밥'
젓갈·잡채·된장국·비빔국수도 일품
코로나 여파 소비량 줄어 근심도 늘어


◆꼭 필요한 것만 갖는 우렁쉥이

멍게는 국가생물표준명은 '우렁쉥이'다. 우렁쉥이보다 멍게가 입에 착 붙는 것은 생산지 현지 주민들이 사용하는 말인 탓이다. 지금은 우렁쉥이와 함께 표준말로 등록되었다. 멍게는 양식 멍게와 자연산 멍게 외에 비단 멍게·돌 멍게 등이 있다. 가을에 산란해 봄철에 생산한다. 양식 멍게와 자연산 멍게를 구분할 때 뿌리와 돌기를 살핀다. 선홍빛에 뿔이 무디고 뿌리가 부드러운 것이 양식이며, 뿔이 도드라지고 뿌리가 지저분한 것은 자연산이다. 멍게는 모양이 파인애플을 닮아 'Sea pineapple'이라 한다. 비단 멍게는 표면이 비단처럼 부드럽고 뿌리부터 입출수공 쪽으로 검붉은 색이 점점 짙어진다. 돌 멍게는 '끈 멍게'라고도 하는데, 겉모습은 정말 돌과 같지만 촉감은 부드럽다.

우리가 즐겨 먹는 멍게 살은 멍게의 내장·아가미·심장에 해당되는 부분이다. 피막을 제거하고 먹는 살 부분만 살펴보면 멍게는 노란색, 비단 멍게는 검붉은색, 돌 멍게는 흰색에 가깝다. 또 멍게의 독특한 향, 흔히 바다향이라는 것은 '신티올'이라는 불포화 알코올 성분이다. 이 맛은 신선할수록 신티올 함유량이 높아 더욱 진하다. 통통하고 색깔이 선명한 것이 싱싱한 멍게다.

멍게는 2년 정도 자라면 독특한 맛과 향을 지닌다. 이때가 출하 시기다. 경남 통영시 산양읍 영운리, 거제에서 왔다는 어머니가 산지에서 멍게를 사서 직접 작업을 하는 중이었다. 깐 멍게가 대야 한가득이다. 또 까야 할 멍게도 다른 대야에 수북하다.

"이게 전부 8만원이라예, 시장에서 8개에 1만원 하거든예, 요리 까서 냉동실에 넣어두고 비빔밥도 해 먹고 된장국에도 넣어 먹지예.룖

바야흐로 멍게 철이다.

◆멍게는 어떻게 양식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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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에 매달려 수확된 멍게는 배의 이물에 걸려 작업장으로 이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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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하식으로 양식된 멍게가 배로 올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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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대 멍게 생산지 중 한 곳인 경남 통영 미륵산 영운리 작업장에서 주민들이 멍게를 선별하고 있다.
멍게 생김새는 타원형의 큰 계란 모양이며 겉에 돌기가 있다. 입수공과 출수공을 통해 물을 빨아들이고 내뿜으며 산소로 호흡하고 플랑크톤을 걸러 먹는다. 영어권에서는 '바다의 물총(Sea Squirt)'이라고도 한다. 위기를 느끼거나 손으로 만지면 돌출한 구멍을 닫고 몸을 수축시킨다. 양식장에서 줄을 올리자 주먹 크기의 멍게가 정말 물총을 쏘아댄다.

1970년대 멍게 양식 초기에는 바다에서 유생을 줄기에 부착시켜 양식했다. 지금은 밀폐된 배양장에서 멍게 유생을 가는 줄에 부착시킨 후 손톱 크기로 자라면 양식장으로 옮긴다. 여러 가닥의 천을 꼬아 만든 10곒쯤 되는 굵은 줄에 유생이 붙은 가는 줄(팜사)을 묶어 바닷속에 넣어 양식한다. 이를 '봉작업'이라 부르며 이런 양식을 '수하식 멍게양식'이라고 한다. 그리고 2년 정도 자라면 생산을 하게 된다.

다 자란 멍게가 달린 봉을 배 고물에 매달고 작업장으로 옮긴다. 배 고물에 묶은 멍게양식 줄을 풀어 바지선 위로 올리면 고압의 세척기로 봉에 붙은 이물질을 떼어 낸다. 그리고 한 알씩 뜯어내 세척해 크기별로 선별한다. 옛날에는 손으로 뜯어 냈지만 지금은 자동화된 기계로 멍게를 뜯는다.

큰 멍게는 도매상과 직접 거래하고 작은 멍게는 피막을 자르고 살만 꺼내 수협에 위판을 한다. 최근 해수 온도가 증가하면서 멍게양식의 최대의 적인 '멍게 물렁증'이 증가하고 있다. '아주미오보도 호야무시'라는 편모충에 의해 생기는 것으로, 멍게를 감싸는 피막을 붕괴시키는 것이다. 멍게 물렁증보다 더 위협요인이 고수온이다. 수온이 계속 올라간다면 통영에서 다른 곳으로 서식처를 옮겨야 할지도 모른다. 적조도 멍게 양식에 큰 영향을 준다.

멍게는 찬 바닷물을 좋아하며 수온이 올라가면 녹아서 사라진다. 통영의 경우 1월 말에 출하되어 2월과 3월이 성수기이며 4월이면 마무리된다. 동해 해역에서 생산된 멍게도 가을철이면 출하가 완료된다. 그러니까 봄부터 가을까지를 제외하면 생물로 유통되는 국산 멍게를 맛보기 어렵다. 통영 멍게의 시장점유율을 생각하면 사실상 2월부터 4월까지를 제외하고 생물로 유통되는 멍게는 국산이 아닐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렇다면 그 많은 멍게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일본이다. 일본에서 들어오는 멍게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 후 수입이 중단이 되기도 했지만 최근 수입량이 증가하고 있다. 일본 멍게의 주산지는 미야기현을 비롯해 이와테(岩手), 아오모리(靑森), 홋카이도(北海道) 등 일본 동북지방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지역이다. 그런데 이들 지역 수산물 수입이 전면 금지되었다. 사고 전 우리나라가 일본으로부터 수입한 멍게는 연간 7천여t으로 일본이 생산한 멍게의 절반 이상이다.

◆멍게의 반란

판대목을 지나 미륵도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반기는 것이 붉은 동백꽃이다. 산양일주도로 가로수는 모두 동백이다. 추운 겨울 붉게 꽃을 피웠다가 3월이면 길 가장자리에 붉게 내려앉는다. 그리고 진달래로 미륵산이 붉게 물들 때 미륵 바다에는 멍게가 붉게 꽃을 피운다. 이때 멍게 맛이 제대로 오른다.

우리나라 멍게 생산량의 80% 정도가 통영에서 생산된다. 그 산지가 미륵도 영운리, 신봉리, 미남리이며, 그중 영운리가 주산지다. 한산대첩으로 유명한 바다는 온통 멍게 양식장이다. 영운리 마을 선착장은 양식장에서 가져온 멍게를 줄에서 뜯어내고 세척하고 갈무리하는 작업장이다.

멍게는 통영 바다만 지키는 것이 아니다. 이제 통영과 통영시를 지탱하는 일등공신이다. 복어, 대구, 장어, 물메기까지 주연으로 상을 받은 뒤에야 늦깎이로 무대에 올랐다. 오랜 조연생활을 마치고 이제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밥상에 오르고 있다. 그 설움을 알기에 맛은 더욱 강하며 중독성까지 품고 있다.

대기만성이라 했던가. 한 철을 반짝이고 다음 해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사철 음식으로 자리를 잡았다. 조연이 그렇듯, 없었던 것이 아니라 그 가치를 발견하는 감독을 만나야 한다. 묵묵히 궂은일을 하며 때를 기다리는 조연처럼, 멍게는 술상과 밥상의 가장자리에서 때를 기다렸던 것이다.

◆통영 멍게비빔밥

숨어 있는 가치를 들춰낸 셰프가 통영권 전통음식을 연구하는 이상희씨다. 그는 본래 사진작가였다. 통영에 정착해 사진을 찍으면서 통영을 다른 눈으로 보았던 것처럼 음식에 관심을 가지면서 통영의 속살을 들여다보고 있다. 통영에서 가장 흔한 것, 가장 쉽게 구할 수 있는 것, 통영 사람들이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을 살피는 눈이 그에게 있었던 것이다. 멍게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서 이 작가가 '멍게비빔밥'을 내놓았을 때 모두 혀를 찼다. 오래전부터 너무 흔하게 따뜻한 밥에 김 가루와 채소류를 넣고 쓱쓱 비벼 한 끼를 뚝딱 해결했던 음식인데, 그걸 갖고 무슨 장사를 하겠냐는 일종의 비아냥이었다. 그는 멍게비빔밥에 채소 대신 해초를 넣었다. 멍게를 중심으로 톳, 세모가사리, 김 등 해초의 오방색을 찾아내 멋을 더했다. 그리고 통영 사람들이 즐겨 먹었던 합자젓으로 마무리했다. 이렇게 탄생한 것이 '이상희표 멍게비빔밥'이다. 인기는 폭발적이었다. 멍게의 가치가 새롭게 인식되면서 멍게젓갈은 고급화하고, 멍게잡채, 멍게된장국, 멍게부침개, 멍게비빔국수까지 만들고 있다.

코로나19로 여행객이 감소하면서 멍게소비량이 크게 줄었다. 설상가상으로 일본산 멍게 수입량은 늘고 있다. 영운리 주민들은 생산 시기를 가급적 뒤로 미루었지만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더 이상 미룰 수가 없다. 3월 하순에 접어들면서 영운리 물양장에는 대형 수조차부터 트럭까지 분주하게 오가고 있다. 하지만 어민들의 표정은 밝지 않다. 한철 벌어 1년 먹고사는 것이 멍게 양식이다. 더불어 멍게를 좋아하는 소비자들의 국산 통영 멍게의 소비증진이 그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광주전남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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