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 토크] '콜' 전종서 "순수한 소녀 모습부터 여성 연쇄살인마까지 억지로 꾸미기보다 몸·마음이 가는대로 보여주려고 했다"

  • 윤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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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1-01   |  발행일 2021-01-01 제39면   |  수정 2021-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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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크마다 다른 연기를 보여주는 날 것 그대로의 배우." 영화 '콜'을 연출한 이충현 감독이 배우 전종서를 두고 한 말이다. 데뷔작 '버닝'으로 이창동 감독과 칸 국제영화제를 사로잡았던 전종서는 차기작 '콜'을 통해서도 전혀 답습하지 않은, 틀과 형식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연기로 대중의 눈을 사로잡았다. '혜성처럼 나타난 괴물 신인'이라는 표현이 그에겐 상투적으로 느껴지지 않을 만큼 적확하다.

서로 다른 시간대의 두 여자, 영숙과 서연(박신혜)이 한 통의 전화로 연결되면서 벌어지는 이 이야기에서 전종서는 광기 서린 얼굴로 시종 파국을 향해 질주하는 영숙을 연기했다. 한국 장르물에서 쉽게 마주할 수 없던 여성 연쇄살인마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서태지를 좋아하는 순수한 소녀의 모습부터 언제 돌변할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모습까지 이번에도 그는 에너지가 충만한 눈빛과 표정으로 극을 압도하고 긴장감을 자아낸다. 소시오패스에 가까운 빌런으로 독보적인 여성 캐릭터를 탄생시킨 그가 궁금해졌다.

서로다른 시간대 두여자 전화로 연결
넷플릭스 통해 공개…세계 알릴 기회
반사회적 인격장애 가진 소시오패스
반감보다 충격·놀라움·신선함 줄 것

박신혜 선배 연기, 무게 중심 잡아줘
'버닝' 출연 한것도 캐릭터에 큰 도움
이충현 감독 잘 이끌어줘 결과물 만족


▶애초 극장 개봉에서 코로나19로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됐는데 소감이 어떤가.

"관객들이 큰 스크린과 선명한 사운드로 감상할 수 있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지금 같은 시기에 리스크를 감수하면서까지 개봉을 고집하는 것도 모두를 위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기분이 좋았다. 나 역시 넷플릭스 콘텐츠를 거의 빼놓지 않고 봤을 만큼 사랑한다. 극장에 가지 않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언제 어디서나 쉽고 편하게 접할 수 있다는 게 넷플릭스의 장점이다. 전 세계 가입자들에게 한국 콘텐츠를 널리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도 생각한다."

▶데뷔작 '버닝' 으로 강렬함을 선사했던 터라 당신의 차기작에 대중의 기대와 관심이 크다. '콜'은 어떤 점에 끌렸나.

"설계가 정말 잘 되어 있는 시나리오였다.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진행 과정이 유연하면서도 속도감이 있어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생동감을 느꼈다. 영숙 캐릭터도 평소 해보고 싶었던 역할이라 '콜'이라면 후회 없이 내 에너지와 열정을 쏟아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동시에 묘한 자신감도 생겼다."(웃음)

▶소시오패스에 가까운 영숙은 국내 영화에서 쉽게 접할 수 없던 캐릭터다. 어떻게 인물에 접근하려고 생각했나.

"서연의 행동과 말, 그녀가 맞닥뜨리게 된 상황에서 해답을 찾았다. 너무 무게를 잡거나 진중하게 비쳐지는 것도 싫어서 오히려 천진난만하고 순수한 모습을 상상하며 접근했다. 억지로 꾸며내는 게 아닌 내가 이해한 걸 바탕으로 몸과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연기하려 했다. 관객들도 영화를 보다 보면 그의 행동을 이해하고, 반감보단 충격과 놀라움, 신선함을 느낄 거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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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다른 목적과 계획을 지닌 서연과 시종 파국의 직선대로를 숨 가쁘게 달리고 충돌한다. 박신혜 배우와의 호흡은 어땠나.

"영숙은 서연을 향해 정말 무차별적인 공격을 가한다. 때문에 선배가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굉장히 힘들었을 거다. 그럼에도 전혀 티 나지 않게 같은 무게감으로 중심을 잡아주셨다. 선배의 안정감과 무게감은 감히 내가 흉내낼 수 없는 부분이다. 덕분에 영숙도 일정한 페이스를 유지하며 진행할 수 있었다. 영숙이 에너지를 머리끝까지 끌어 올리는 뜨거운 인물이었다면, 서연은 반대로 감정을 밑바닥까지 끌어 내리는 차가운 인물이다. 둘 중 누구 하나라도 에너지가 빠지거나 오버되면 밸런스가 깨져버렸을 것이다. 내가 마음껏 공격할 수 있도록 수비와 방어를 완벽하게 해주셨다."

▶서연 역할을 맡았어도 잘 어울렸을 것 같다.

"처음엔 어떤 역할이 들어온 지 모른 채 시나리오를 받았는데, 읽다 보니 서연 캐릭터도 영숙 못지않게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영숙보다 침착하고 상황 대처에 능숙한 서연이 영숙과 대칭을 이루기에 두 인물 모두의 입장에서 대본을 연구하고 캐릭터를 설정했다. 둘 다 너무 매력적인 배역이지만 신혜 선배와 내가 각자에게 어울리는 역을 맡았다고 생각한다."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지닌 영숙의 불균질한 감정을 표현하는 게 쉽지는 않았을 것 같다.

"영숙은 순간적으로 감정이 휙휙 움직이는 팽이 같은 면모가 있다. 모든 사람의 감정 변화가 어떤 상황만 존재한다면 한 가지 상황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은 모두 같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영숙은 늘 과격하게 날 서 있고 과열돼 있다. 사이코패스, 소시오패스, 반사회적 인격장애인, 연쇄살인마 등 많은 수식어가 붙지만 그가 어떤 캐릭터라고 정의를 내리고 출발하진 않았다. 영숙은 친엄마도 아닌 사람과 단 둘이 지내며 몇 십년간 집에 갇혀 폭력을 감내해온 외롭고 불쌍한 소녀다. 때문에 우연히 소통하게 된 유일한 친구인 서연과의 관계가 틀어지면서 폭주할 수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영숙이 어떻게 분노하는지보다는 왜 슬퍼하는지, 또 왜 서연에게 집착하는지 등에 대해 먼저 공감하려고 했다. 그리고 영숙의 불안정한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그가 받았을 타격을 좀 더 크게 확대해석할 필요가 있었다."

▶줄무늬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칼을 집어 든 모습에선 영화 '사탄의 인형'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비슷한 것 같다.(웃음) 영숙의 의상과 캐릭터 설정은 서연이를 많이 참고한 편인데 그 장면을 찍을 때 입었던 줄무늬 의상에 빨간 벨트, 그리고 내 하체의 두 배가 넘는 청바지와 비닐을 뒤집어쓴 모습은 서태지의 의상을 따라 했다. 캐릭터 설정에 있어 의상이 주는 영향이 큰 편인데 이번의 경우가 그랬다."

▶그 외에 영숙이를 잘 드러나 보이기 위해 노력한 게 있다면.

"영숙은 굉장히 강한 캐릭터로 보일 수 있지만 나는 강함보다는 약함에 주목했다. 인정사정없는 모습 이면에는 깨지기 쉬운 얇은 유리 같은 모습도 있다. 새엄마(이엘)와 서연의 관계라든지, 스위치가 켜지기 전 영숙이 살아온 모습 등을 최대한 인간적으로 이해하려 했다. 영숙을 죽이려는 새엄마에게 왜 죽이려고 하느냐며 울면서 말하는 장면을 찍을 때는 정말 안쓰럽고 슬펐다. 영문도 모르고 당하는 어린아이의 심정으로 접근했다. 반면, 서연에게 폭력을 가하면서 그걸 재밌어하는 장면들은 소름끼치는 빌런의 모습에 다름 아니다. 그런 극과 극의 모습을 잘 대비해서 보여주고 싶었다. 그게 하나로 정의될 수 없는 영숙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버닝'의 경험이 이번 작품에서 적잖이 도움이 됐을 것 같다.

"정말 많은 도움이 됐다. 이창동 감독님이 ''버닝'은 앞으로 네가 작업할 모든 영화와 드라마의 기준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그걸 절실히 느끼겠더라. 그리고 테이크마다 꼭 모니터링을 하라고 당부하셔서 '콜'을 찍을 때 한 테이크도 빠지지 않고 모니터링을 했다. 덕분에 자기 객관화를 할 수 있어서 좋았다."

▶'콜'의 연출을 맡은 이충현 감독과의 작업은 어땠나.

"늘 그렇듯 처음엔 설렘 반, 떨림 반으로 시작했고 시간이 지날수록 이충현 감독님을 점점 더 존경하게 됐다. 촬영 전반을 원활하게 이끌어가면서도 배우가 편안하게 연기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는 분이다. 솔직히 워낙 예민한 성격이라 작은 부분에도 지장을 받고 또 맡은 캐릭터가 매 순간 고도의 집중이 필요한 배역이기도 해서 촬영에 들어가기 전부터 걱정이 많았다. 그런데 감독님이 나를 이미 세심하게 파악하고 연기에 방해가 되는 불필요한 요소를 전부 제거해줘서 현장에서 자유롭게 연기할 수 있었다. 특히 시나리오엔 없던 장면을 촬영했던 순간이 기억에 남는다. 감독님이 즉흥적으로 상황만 제시해주고 나머지는 내 선택에 오롯이 맡기셨다. 내 몸과 마음이 이끄는 대로 연기는 마쳤지만, 대본에 없던 장면이라 스스로에 대한 의심이 지워지지 않았다. 그런데 감독님이 계속해서 내 연기가 맞다고 확신을 줬고, 결과물을 봤을 때도 만족스러웠다."

▶'버닝'의 해미와 '콜'의 영숙 모두 강렬한 캐릭터다. 시작부터 많은 에너지를 쓰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나.

"두 작품 모두 에너지를 많이 쏟아부었지만 과잉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연기자에게 에너지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에너지가 전부이기 때문에 나를 에너지틱하게 만들고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편이다. 이를 위해 내가 좋아하는 걸 찾아 나 스스로에게 선물을 한다. 좋아하는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듣고, 옷을 사는 등 나를 늘 최적화된 상태로 만들어 놓는다. 그래서 에너지가 떨어지더라도 바로 보충이 가능하다."(웃음)

▶지난해 미국에서 애나 릴리 애머푸어 감독이 연출한 영화 '모나리자와 블러드문' 촬영을 마치고 돌아왔다. 앞으로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가.

"'버닝'도 그랬고 '콜'도 그랬듯이 안정 궤도 안에 있는 작품보다는 좋은 의미로 조금 더 '미친 영화'를 하고 싶다. 조심하거나 두려워서 건드리지 않았던 것들을 많이 깨뜨리는 영화인데 다소 불편함을 주더라도 충격과 신선함을 우선으로 하는 작품에 끌린다. 해외에 한국을 소개할 수 있는 영화도 좋다. 넷플릭스만 봐도 알 수 있듯이 한국영화에 많은 관심이 몰려있는 이때, 한국의 매력과 문화,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줄 수 있는 작품에도 도전하고 싶다."

글=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사진제공=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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