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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현 경북대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 |
시인 김춘수, 나는 그를 세 차례 만났다. 1980년대 초반 민정당 국회의원 시절 안동문화회관에서 강연했을 때 처음 만났고, 2001년 대구 맥향화랑에서 열린 김춘수 팔순 기념 시판화전에서 뵈었고, 마지막으로 2002년 팔공산 힐사이드호텔 문학강연회에서 뵈었다. 그러나 시인을 처음 알게 된 것은 고등교과서에 실린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을 통해서였다. 그리고 대학 시절 친구가 보내준 '꽃'이라는 시를 읽었다. 그것은 나에게 시적 감수성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 그는 다만 /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1연)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 그는 나에게로 와서 / 꽃이 되었다.(2연)
당시 나에게 이 시는 커다란 울림으로 다가왔다. 마지막 연 "우리들은 모두 / 무엇이 되고 싶다. /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4연)라는 구절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나도 누구에겐가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던 존재'에서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 있는 존재'가 되고 싶었다. 이 시는 2002년 현역 시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로 뽑히기도 했다.
내가 팔공산 강연회에서 시인을 뵙고 난 이태 후 시인의 갑작스러운 타계 소식을 접했다. 그리고 '꽃'을 가르치려고 '김춘수시전집(1994)'을 펴보고 내가 알고 있었던 시와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그곳에는 마지막 구절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가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로 되어 있었다. 시인이 이 구절을 개작했는데, 각종 서적이나 인터넷에는 두 개의 판본이 자리잡고 있었다. 나에겐 가녀린 구애의 '몸짓'에서 하나의 '의미' 있는 존재로 탈바꿈하는 것이 익숙했다. 시인은 '몸짓'이라는 형이하(形而下)의 신체에서 '눈짓'이라는 형이상(形而上)의 존재로 전환을 모색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몇 해 전 우연히 '꽃'의 원작을 접할 수 있었다. 이 시는 1952년 11월 대구에서 유치환이 발행한 '시와 시론(전선문학사)' 창간호에 처음 실렸다. 거기에서 첫연은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 그는 다만 / 하나의 물상에 지나지 않았다"였다. '몸짓'으로 알려진 단어가 원래는 '물상'이었다. 곧 '자연계 사물의 형태'인 '물상'이 새로운 존재로 '의미'를 부여받았다는 것이다. 처음 '물상'이던 것을 '몸짓'으로 바꿈으로써 타자와의 소통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내었다. 이를 통해 모두 2차례의 개작이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3연)
생텍쥐페리는 '어린 왕자'에서 "만약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우리는 서로를 필요로 하게 되지. 너는 나에게 세상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아이가 될 것이고, 나는 너에게 세상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여우가 되는 거지"라고 했다. 우리는 사물이든 인간이든 길들이기, 또는 이름을 불러줌으로써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그리하여 보편적 존재에서 개별적 존재로, 일반적 존재에서 특별한 존재로 자리매김한다. 우리는 수많은 존재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인연은 서로를 특별한 존재로 만든다. 그렇다. 김춘수가 말했듯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아니 우리 모두는 서로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김주현 경북대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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