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박사 문제일의 뇌 이야기] 뇌랑 글쓰기랑 무슨 관계?

  • 문제일 DGIST 뇌·인지과학전공 교수·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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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7-19 07:39  |  수정 2021-07-19 07:49  |  발행일 2021-07-19 제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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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일 (DGIST 뇌·인지과학전공 교수·대학원장)

향기박사 어릴 적엔 매일 연필을 깍아 필통에 넣고 학교에 다녔습니다. 그래야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칠판 가득 적은 학습내용을 공책에 적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연필로 재생지 공책 위에 내용을 옮겨 적으면 연필심이 종이를 긁히며 서걱거리는 소리가 나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모든 것이 디지털 사회로 변화하면서 점점 손글씨를 쓸 일이 줄어드니 이런 기억들이 더 그리워집니다.

그런데 최근 젊은 세대들에게 손글씨 필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다는 반가운 뉴스를 보았습니다. 실제 필사하는 독서법은 단순히 눈으로 정독하는 것과는 달리 내용을 눈으로 보고 머리로 사색하며 손을 쓰는, 뇌를 아주 많이 사용하는, 그래서 뇌에 좋은 독서법입니다. 실제 많은 작가도 필사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했는데, '태백산맥'의 작가 조정래님도 "필사란 책을 되새김질하는 과정"이라 했고 일본의 대표적인 작가인 무라카미 하루키도 필사를 통한 독서로 현재의 자신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기록에 보면 모차르트나 다빈치 역시 다른 사람들의 작품을 필사하면서 사색을 하는 습관덕분에 천재 예술가가 되었다고 합니다. 특히 필사는 언어기능을 관장하는 뇌의 영역을 활성화시킵니다. 따라서 필사는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데 도움을 줍니다.

2021년 7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 심리학과의 Robert W. Wiley 교수는 'Psychological Science' 잡지에 필사와 언어학습에 대한 흥미로운 연구결과를 발표했습니다. Wiley 교수는 42명의 성인 자원봉사자들에게 아랍어 알파벳을 처음부터 배우게 했는데, 이들 자원봉사자들을 종이에 글을 쓰면서 배우게 하는 그룹, 키보드에 타이핑하면서 배우게 하는 그룹, 비디오를 보며 배우는 그룹으로 나눴습니다. 그룹 간 학습효과의 결과는 글쓰기 그룹에 속한 사람들이 낯선 아랍어 글자들을 더 빨리 배울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새로 배운 글자들을 이용해 새로운 단어를 만드는 등 습득한 지식을 더 잘 활용하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즉 손글씨 그룹이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고 활용하는데 좀더 효율적이라는 것을 보여준 것이죠.

이는 우리 어린 학생들에게 글쓰기 학습을 시키는 것이 뇌의 발달과 지식습득에 도움을 줄 수 있음을 암시합니다. 필사의 효용성은 학습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최근 많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은 필사를 자폐증,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환자들의 행동교정이나 치매 환자들의 재활 등에 보조적 치료법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필사는 복잡한 생각을 떨쳐내고 집중력도 향상되며 스트레스도 줄여준다고 합니다. 디지털 기기들에도 펜기능이 추가되어 있으니 실제 펜과 노트를 사용하든, 전자팬과 전자패드를 사용하든, 여러분들도 좋아하는 글을 필사하는 취미를 시작해보면 어떨까요? 열심히 하다보면 마음의 안정을 얻는 것은 물론 언젠가 방명록 쓸 기회가 있을 때 손글씨 솜씨자랑도 할지 모르죠. 〈DGIST 뇌·인지과학전공 교수·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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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일 DGIST 뇌·인지과학전공 교수·대학원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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