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평등과 공정의 두 얼굴

  • 우동기 대구가톨릭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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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10-11   |  발행일 2021-10-11 제26면   |  수정 2021-10-11 07:30
동일한 조건과 기회 부여가
완전한 평등과 공정은 아냐
모든 것 똑같이 하자는 주장
결과의 평등에만 무게를 둬
형식적 평등 논의 지양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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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동기 대구가톨릭대 총장

한국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전 세계 넷플릭스 시청률 1위로 세계적 주목을 받으며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다. 몇백억의 상금을 차지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하는 서바이벌 게임에서 탈락은 곧 죽음이다. 최후의 승자가 모든 것을 차지하는 게임의 모든 참가자는 똑같은 조건에서 똑같은 기회를 갖는다. '오징어 게임'의 감독은 각종 편법과 찬스로 얻는 기회와 이익이 처벌되지 않는 현실을 꼬집기 위해 모두가 평등하고 공정한 기회를 갖도록 했다고 말한다. 게임 참가자 모두가 똑같이 입고 있는 운동복은 바로 이러한 점을 상징하고 있다.

'오징어 게임'은 표면적으로는 매우 평등하고 공정하게 진행된다. 그러나 똑같은 조건에서 똑같은 기회를 가지는 '형식적 평등'이 곧 완전한 평등과 공정을 보장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힘과 근력을 요구하는 게임이라면 노인과 여자에게, 지혜와 경륜을 필요로 하는 게임이라면 젊은이와 어린아이에게 이미 평등하지 않다. 땅에서 달리는 경기는 토끼에게는 기회이지만 거북이에게는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규칙과 규정을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적용하는 것이 반드시 공정하고 평등한 것만은 아니다. 경우에 따라 달리 적용하고 차이를 두는 것이 더 공정하고 평등한 경우도 있다.

핀란드, 독일, 덴마크 등 유럽 일부 국가들은 하루 수입에 기초해 벌금을 물리는 '일수벌금제(Tagessatz)'라는 소득비례형 벌금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연 소득이 10억원인 사람과 1천만원인 사람이 내는 10만원의 벌금에 담긴 죄에 대한 대가와 책임감의 무게는 완전히 다르다. 미국 육군에 배속된 한국 군인인 카투사(KATUSA)는 성적 순서대로 선발하지 않는다. 영어시험 성적을 상·중·하로 3등분해 그룹별 지원자 비율에 맞춰 그룹별로 따로 무작위로 선발한다. 임무의 성격에 맞추어 그에 맞는 정도의 영어 능력을 갖춘 사람을 뽑는 방식이 더 평등에 가깝고 보다 합리적일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 평등과 공정에 대한 요구가 늘어나면서 모든 것을 똑같이 평등하게 하자는 주장이 드세지고 있다. 이러한 추세와 함께 직함의 단계를 없애거나 모든 직원의 호칭을 아무개 씨라고 부르며 평등한 직장 문화를 만들어가는 회사도 생겨나고 있다. 신속한 의사결정과 수평적 상호 소통이 중요한 시대이니만큼 유연한 조직 체계와 직장 문화가 필요하다는 데 이의를 달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프랑스 정치학자인 토크빌이 말했듯이 평등이 더 강하고 높은 서열에 있는 사람들처럼 되고자 하는 '열망'이 아니라 더 나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을 자신이 있는 곳으로 끌어내리고자 하는 '욕망'에 의거한 것이라면 생각해 볼 여지가 많다. 올라가려는 '열망'은 우리 모두를 위로 끌어올리는 진보적 동력이 될 수 있지만, 끌어내리려는 '욕망'은 균등화를 통해 차이를 메꾸어 보려는 질투의 감정에 머무르기 쉽기 때문이다.

평등과 공정의 가치가 매우 소중한 가치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평등과 공정이 형식적이고 기계적인 차원에서 논의되어서는 안 된다. 코로나19로 재난을 입었든 안 입었든 똑같은 재난지원금을 받는 것은 평등하지도 공정하지도 않다. 기회와 조건의 평등이 아니라 결과의 평등에 더 무게가 놓여서도 안 된다. 땀 흘린 자나 그렇지 않은 자나 똑같은 결과의 보상을 받는다면 누가 더 열심히 일하겠는가? 결과의 평등은 기회와 조건의 불평등을 보완하거나 상쇄하는 선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소외된 약자를 보듬는 선에서 이루어져야만 한다. 결코 평등이 공정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
우동기 <대구가톨릭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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