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곤 대구행복한미래재단 상임이사
2026학년도가 시작된 지 한 달이 지났다. 겨울 방학 동안 조용하던 교정은 활력을 되찾았다. 그러나 교사들에게 3월은 일 년 중 시계추가 가장 더디게 가는 고단한 시간이다. 새로운 환경과 낯선 학생들, 다시 시작하는 행정 업무 속에서 관계를 맺고 수업의 온도를 끌어올리는 일은 매번 팽팽한 긴장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최근 학교 현장에 눈여겨볼 만한 변화가 발견된다. 학교 운영의 중추적 역할을 하는 보직교사 자리를 기간제 교사들이 맡는 사례가 많다. 점차 확산하는 흐름도 보인다. 이는 학교 조직 운영 전반의 어려움을 보여주는 하나의 징후다. 교무, 연구, 학생, 학년부장 등으로 불리는 이들은 단순한 주요 업무 담당자를 넘어 학교 운영의 허리이자 교육과정의 설계자이며 교육활동의 실천가들이다. 높은 책임과 낮은 보상, 과도한 민원 부담이 중첩되면서 보직 기피 현상이 고착화되고 있어 이른바 '중간 관리자'의 역할이 점차 약화되고 있다.
업무 강도는 높고 민원 노출은 잦은데, 돌아오는 보상과 예우는 턱없이 부족하다 보니 정규직 교사들 사이에서 보직은 '피해야 할 독배'가 된 지 오래다. 자발적 지원자를 찾기란 하늘의 별 따기가 되었고, 학교장이 읍소해도 거절하기 일쑤다. 결국 그 빈자리는 고용 관계에서 상대적 약자인 기간제 교사들이 맡게 되는 경우가 많다. 학생 생활지도 담당 부장을 기간제 교사가 맡고 있는 학교는 이미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학년 운영을 총괄하는 '학년부장'까지 기간제 교사가 맡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점이다. 여러 명의 담임 교사를 조율하고 학년만의 색깔을 입혀야 할 자리에, 학교 시스템에 익숙해질 틈도 없는 기간제 교사가 앉게 된다. 이는 우리 아이가 학교에서 겪는 갈등이나 위기 상황에서, 중심을 잡아줄 '축적된 노련함'이 사라지고 있다는 경고등이다.
이런 구조에서 학년부장의 소신 있는 리더십이나 동료 교사 간의 유기적인 협력을 기대하기란 어렵다. 부장 교사가 실질적인 결정권 없이 단순 행정 지원에 머물게 되면, 학교의 교육 철학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 생활지도나 위기 대응에서 판단이 지연되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들에게 돌아간다. 이는 개인의 역량 문제가 아니다. 미안함조차 무뎌져 버린 동료들의 침묵과 제도적 한계 뒤로 물러선 교육 당국이 만들어낸 구조적 모순이다.
이러한 구조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몇 가지 시급히 개선해야 할 일이 있다. 첫째, 보직교사가 교육과정 기획과 동료 지원이라는 본연의 역할에 집중할 수 있도록 교무행정 전담 인력을 실질적으로 보강할 필요가 있다. 더 나아가 부장 교사 한 명에게 책임을 지우는 구조가 아니라, 업무를 유연하게 나누고 공동 책임을 지는 '팀 운영 모델' 도입도 검토해 볼만하다. 둘째, 보직 수행에 따른 책임에 걸맞은 권한, 보직 수당 현실화 등 보상이 뒤따를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셋째, 민원과 분쟁으로부터 교사를 보호할 수 있는 공적 대응 시스템을 촘촘히 마련해야 한다. 덧붙여, 보직을 단순히 '기피해야 할 자리'로만 인식하기보다 학교 공동체를 함께 이끌어 가는 동료적 리더십의 자리로 재조명하려는 교원들의 노력도 필요하다.
학교는 행정 중심 조직이 아니라 교육이 살아 있는 공동체여야 한다. 보직을 '맡기 싫은 자리'가 아닌 '공동체를 이끄는 영예로운 리더십'의 자리로 되돌려놓아야 한다. 학교 운영 노하우와 교육적 데이터가 매년 리셋(Reset)되지 않고 이어질 수 있도록 조치해야 한다. 더 이상 이 서글픈 자화상을 외면하지 말고 함께 매듭을 풀어갈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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