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순의 문명산책] 나는 검색한다, 고로 존재한다

  • 김중순 계명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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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5-28 11:48  |  발행일 2026-05-29
김중순 계명대 명예교수

김중순 계명대 명예교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를 비틀면 "나는 검색한다, 고로 존재한다"가 된다. 데카르트에게 '생각'은 의심을 끝까지 밀어붙인 뒤에 남는 마지막 등불이다. 반면 '검색'은 의심 이전부터 작동하는 조건, 곧 우리가 세계와 접속하는 기본 방식이 되었다. 그 배후에 알고리즘이 있다. 이는 유튜브에서 쉽게 체감된다. 어떤 영상을 한 번 보거나 오래 시청하면 그 행동이 신호가 되어, '당신이 다음에 볼 법한 영상'을 확률적으로 예측해 추천한다. 개인화 신호뿐 아니라 전체적으로 반응이 좋은 영상의 지표도 함께 작동해 노출이 결정된다. 이렇게 쌓인 신호는 비슷한 주제를 더 자주 띄우고, 그 추천을 다시 볼수록 같은 계열의 추천이 강화된다.


'알고리즘'이라는 말은 9세기, 오늘날 우즈베키스탄 호라즘 출신 수학자 알콰리즈미의 이름에서 왔다. 그것은 단순한 계산의 기술이 아니다. 문제를 일정한 절차와 규칙으로 풀 수 있다는 사고방식이었다. 세계를 계산 가능한 질서로 읽어내려는 시도였던 셈이다. 그 오래된 형식은 이제 AI라고 하는 전혀 다른 규모와 속도로 돌아왔다. 과거의 알고리즘이 인간이 밟아가던 절차였다면, 오늘의 알고리즘은 디지털 환경에서 스스로 굴러가며 데이터를 통해 끊임없이 자신을 갱신한다. 우리는 무엇을 알고 싶은지 스스로 결정한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무엇을 알 수 있는지가 먼저 정해진다. 검색창에 질문을 입력하는 순간 우리의 관심과 사고는 이미 정렬되고 예측 가능한 경로로 유도된다. 생각은 더 이상 무(無)에서 출발하지 않는다. '추천'으로 시작된다.


그렇다면 창의성은 어디에 자리하는가. 창의성을 완전히 새로운 것의 창출로만 본다면, 알고리즘은 그 반대편에 서 있는 듯 보인다. 알고리즘은 축적된 데이터의 패턴을 바탕으로 미래를 예측한다. 성능이 높아질수록 우리는 더 빠르고 정확하게 '이미 있던 것'에 닿는다. 그러나 창의성은 무에서 갑자기 솟는 번개가 아니다. 우리의 사유는 늘 기존의 언어·개념·지식·관습 속에서 출발한다. 그것을 그대로 따르지 않고 미세하게 비틀고 어긋나게 할 때 새로운 것이 나타난다. 익숙한 말을 낯설게 쓰고, 멀리 떨어진 개념을 뜻밖에 연결할 때 창의성은 불씨를 얻는다. 중요한 것은 '무'가 아니라 '차이'다.


잘 만든 지도는 길을 정확히 보여준다. 그래서 더 눈에 띄는 건 지도 밖 오솔길이다. 번역기가 정교해질수록 번역되지 않는 뉘앙스가 또렷해진다. 질서가 완벽해질수록 그 바깥도 분명해진다. 창의성은 바로 그 경계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알고리즘은 속도를 추구하지만, 창의성은 잠시 멈춤에서 시작된다. "정말 이게 전부일까?"라고 자문하는 그 틈에 정해진 경로가 흔들린다. 그리고 새로운 사유의 틈이 생긴다. 알고리즘은 오류를 지우려 하지만, 인간은 오류로 도약한다. 틀린 입력, 엉뚱한 연결은 실패가 아니라 출발선이다. 알고리즘은 끊임없이 답을 내놓지만, 인간은 때로 답이 없는 상태에서 생각을 연다. 해결되지 않는 질문을 붙드는 태도, 거기가 인간 사유의 고유 영역이다.


우리는 검색을 통해 세계에 접속하지만, 검색만으로 자신에게 도달할 수는 없다. 오늘의 인간은 절차를 따르면서도 동시에 그것을 어긋나게 만드는 존재, 계산을 하면서도 계산을 넘어서는 존재다. 창의성은 바로 그 이중성에서 태어난다. "나는 검색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명제는 완결된 선언이 아니라 지속되는 긴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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