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병철 대구YMCA 사무총장
바다가 그립다. 무더운 날씨 때문일까? 최근 대구·경북은 지방선거 이후 이른바 'TK 패싱' 논란에 휩싸여 있다. 정부의 3대 메가프로젝트와 서남권 발전구상이 잇달아 발표되며 소외감은 더욱 거세졌다.
하지만 길이 막혔다고 망연자실할 수는 없다. 발상을 바꾸면 새로운 길은 열린다. 한 무제 때 장건은 서역으로 가다 흉노에 붙잡혔으나 끝내 길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의 여정은 훗날 실크로드를 여는 출발점이 되었다. 대구·경북도 마찬가지다. 신공항 건설이나 초대형 기업 유치만 바라보는 오래된 개발주의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 중앙정부의 국책사업만 쳐다보며 지역끼리 경쟁하던 방식 대신, 도시 네트워크 중심의 자립적 발전전략으로 전환해야 한다.
대구·경북은 1970년대 이후 포항 철강과 구미 전자산업을 바탕으로 국가 산업화의 최대 수혜지역으로 인식돼 왔다. 그러나 그 이면의 현실은 차갑다. 대규모 산업단지가 들어서는 동안 주민들은 삶의 터전을 내놓았지만, 전략기획과 금융, 연구개발 등 고부가가치 핵심 기능은 대부분 서울로 집중됐다. 지역은 주로 생산과 노동을 담당하며 생태파괴와 위험, 산업전환의 부담까지 떠안는 불평등한 구조가 형성되었다. 이제는 그 주력산업마저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하지만 과거에 붙잡혀 미래를 만들 수는 없다. 대구는 내륙도시다. 하늘길인 신공항이 만만치 않다면 새로운 바닷길을 열어야 한다. 마침 북극항로가 새로운 경제 항로로 부상하고 있다. 기후위기로 얼음이 녹아 열린 길이라는 점에서 달갑지는 않다. 그러나 현실을 외면할 수는 없다. 정부는 부산을 중심으로 북극항로 개척을 추진하고 있고, 포항 역시 영일만항을 특화 항만으로 육성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
대구도 이 바닷길에 주목해야 한다. 대구의 인재와 첨단부품산업을 포항의 철강·배터리 산업, 영일만항과 연결해 세계시장으로 나아가야 한다. 대구는 영일만을 바다로 삼고, 포항은 대도시의 풍부한 인구와 시장을 배후에 두게 된다. 나아가 울산의 자동차·조선산업, 부산의 항만 네트워크까지 연결해 대구–포항–울산–부산을 잇는 남동해안 산업·물류회랑을 구축해야 한다.
그 첫걸음은 양 도시를 잇는 협력 플랫폼을 만드는 일이다. 포항에서 발원해 대구를 흐르는 금호강처럼 산업과 기술, 사람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민관협력 추진체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가칭 '금호강 미래포럼'을 출범시켜 항만의 디지털 전환과 스마트 물류, 산업기술 협력 등 공동 프로젝트를 발굴하고 구체화해야 한다. 선언적인 행정통합 논의를 넘어 경계를 허무는 실질적인 협력이야말로 내륙의 한계를 넘어서는 가장 현실적인 길이다.
도시는 길을 통해 성장한다. 길이 막히면 고립되지만, 길이 열리면 도시의 운명이 달라진다. 이제는 중앙정부의 시혜만 기다리는 지역이 아니라 스스로 길을 만드는 지역이 되어야 한다. 바다를 통해 세계와 연결될 때 대구도 포항도 미래가 열린다.
"철썩, 철썩, 척, 쏴아."
길이 막혔던 시대, 최남선은 바다를 보며 새로운 세계에 대한 희망을 노래했다. 지금 우리에게 바다가 필요하다. 대구여, 이제 바다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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