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채한의 사람과 선(線)] 가면 쓴 현대사회, 마스크 쓴 팬데믹…'탈'이 난 세상

  • 김채한(전 달성문화재단 대표이사)
  • |
  • 입력 2021-11-19  |  수정 2021-11-19 08:21  |  발행일 2021-11-19 제면

2021111901000453800017572
하회탈 모음 전시품.(안동세계탈박물관)

톡톡히 '탈'이 난 시대다. 위드코로나 시대까지 와버렸다.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우리들의 삶 속에 버젓이 자리하며 주인으로 때로는 나그네 행세를 해도 누구 한 사람 '왜 그러느냐'고 묻지를 않는다. 마치 어느 보험 문구처럼 따지지도 않는다. 다들 당연히 그런 것처럼 알고 행동하려 한다. 심지어 함께 뭉치자며 코로나에게 다가가 자연스럽게 어울려 버렸다. 내심으로는 퍽 조심을 하면서도 어울릴 수 있다니. 순전히 마스크 덕이다. 노마스크를 외치는 사람들도 있기는 하지만 그건 그저 숫자에 불과하다. 아직은 마스크가 최적의 대안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칠 수가 없다.

위드 코로나에 감염자 늘어나며 혼란
마스크로 방어하는 일상 현재 진행형
大選 정국에 나날이 들썩이는 정치권
'오징어게임'처럼 가면 쓰고 게임중
울고 웃는 가면속 진실은 보이지 않아
가장무도회 화려함속 숨은 숱한 애환


◆불금이 되살아나고

어른아이 할 것 없이 마스크는 우선 불편하다. 호흡을 답답하게 하고 짜증나게 한다. 빈도가 높아지면 우울해지는 경우도 많다. 이 때문에 노인들이나 아이들의 경우 바깥 활동이 줄어들고 심지어 집에만 있으려는 경향이 짙다. 생활이 불규칙해진다. 노인정이나 학교를 통한 다양한 정보교류가 막히고 학습공백이 생긴다. 대신 온라인 게임이나 유튜브 몰입 등에 익숙해져 점차 갇힌 공간에 안주하려 한다. 사회성도 점차 떨어지고 있다. 그러던 차에 '위드 코로나'로 숨통이 트이는 것 같지만 이 또한 만만치가 않다. 이번에는 청소년들의 감염이 급속히 늘고 노인층의 위중증 환자가 급상승세다. 청소년과 노인층뿐 아니다. 불금이 되살아나고 야구장이 꽉 찬다. 서울에는 밤 늦게 택시잡기 전쟁이란다. 부스터샷은 어떻게 할 것이며 119용 요소수는 충분할까. 다시금 위드코로나는 혼란스럽다.

새 대통령도 곧 뽑아야 한다. 매일 정치권이 들썩인다. 이미 골이 깊을 대로 깊어진 그들은 국민들에게는 코로나와 함께 가라며 성화지만 정작 자기들은 함께? 좋아하네, 유력 후보들의 아내까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끌어내 뉴스거리로 만들어 버린다. 앞으로 뽑을 대통령을 새 대통령이라며 비단 보자기 풀어 만지듯 부르지만 지나간 대통령은 결코 헌 대통령이라 부르지는 않는다. 그러면서도 마음껏 데려와 난장을 친다. 비행기도 이런 비행기는 없다시피 양껏 태운다. 그러다가 결국은 코로나로 돌아올 수밖에 없을 때, 슬쩍 재난 혹은 방역지원금 이야기를 안개 피우듯 내지르고는 된다느니 안 된다느니 또 야단이다. 세상에 무슨 여론조사가 호감도보다 비호감도에 방점을 무겁게 찍나. 그럴리야 없겠지만 혹 대선판국을 희화화 시켜 이득을 취하려는 의도가 한구석 도사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옛 선비의 일침

조선 중기의 선비 둔계(遯溪) 허후(許厚). 그는 올곧은 선비답게 '옳고 그름의 노래 시비음(是非吟)'이라는 글을 지어 후세에 남겼다.

시비진시시환비(是非眞是是還非·참 옳음도 시비하면 도로 그르치나니)

불필수파강시비(不必隨波强是非·억지로 물결 따라 시비할 것이 아니라네)

각망시비고착안(却忘是非高着眼·옳고 그름 모두 잊어버리고 눈을 높은 곳에 두면)

방능시시우비비(方能是是又非非·옳은 것은 옳다 하고 그른 것은 그르다 할 수 있겠지)

불과 28글자다. 오늘의 대선이 여기에 매달릴 수야 없다지만 너무 시비가 많은 요즘 읽어 둘 만한 글귀다. 전투병은 전투를 위해 읽어야 하고 수비병은 수비를 위해 읽어야 한다. 그래야 공정해진다. 정의로워진다. 상식을 무너뜨리려는 무지를 이길 수 있는 힘이 생긴다. 당연히 부동산 투기나 부당한 이득이나 부정한 청탁이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한다.

그런데 양 진영의 사람 쓰는 모양새를 두고도 말들이 무성하다.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단어들이 여과 없이 튀어나온다. 중국 당나라 때만 해도 '신언서판(身言書判)'이라고 사람을 취할 때는 그의 몸가짐과 말씨, 글씨, 판단력 등 네 가지가 중요한 선발의 모티프였다. 당서(唐書) '선거지(選擧志)'에 나오는 글이다. 그러나 우리는 정작 이들 네 가지 조건 중 겨우 하나만 충족하거나 근접해도 물때만 잘 만나고 운이 따른다면 대박인생이다. 대장동 몇몇도 그렇고 정·재계를 비롯한 온갖 분야의 돈 많은 인사들 중에 특히 더 많다. 심지어 신언서판 네 가지 중 어느 한 곳에도 끼지 못하지만 세금 축내며 잘사는 이들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번갯불로 보아야 할까 반딧불로 보아야 할까.

◆오징어게임

미국 풍자문학의 대부 마크 트웨인. '톰소여의 모험' 등으로 우리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 그는 '딱 떨어지는 단어'와 '거의 딱 떨어지는 단어'의 차이는 번갯불과 반딧불의 차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것은 딱 떨어지는 단어와 거의 딱 떨어지는 단어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음을 강조하려 했다. 다시 말하면 번갯불은 천둥을 동반하는 경이의 전광이라면, 반딧불은 자기 존재만 알릴 뿐 남을 비추지도 못하고 열도 없는 미미한 존재임을 비유한다.

그래서 마크 트웨인의 단어나 문장에는 '딱 떨어지는 것'이지 '거의 딱 떨어지는 것'은 쉽게 찾아볼 수가 없다는 평가다. 즉, 적당한 표현이나 즉흥적인 발상으로 자신의 부족함을 위장하거나 해결하려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들 주변에는 무엇이든 손쉽게 뒤집어 버리는 위선의 가면이 넘쳐난다. 그 가면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너무 깊숙이 정체를 감춰가며 암약하다시피 세를 불린다. 여름밤의 반딧불 같은 순수하고 아름다운 자취만 기억시키려 한다. 때로는 번갯불도 필요한데도 말이다.

최근의 번갯불은 뭐니해도 지구의 드라마로 등극한 '오징어게임'이다. 심리적인 요소가 잘 반영됐다는 리뷰 시즌 18화 '프론트맨'. 이병헌이다. 프론트맨의 가면은 매우 매끄럽게 차갑고 잘 다듬어진 로봇 같은 야무진 인상이다. 반딧불이 결코 아니다. 번갯불이다. 그래서 재밌다. 인터넷에서는 7천원짜리 프론트맨 가면이 잘 팔리고 있다. 서구 정신사의 한 축을 이룬 철학자 칸트는 '인간학'이라는 책에서 '사람은 모두 문명이 진보하면 할수록 점점 더 배우가 되어 간다'며 '일테면 남에 대한 존경과 호의에서도 정숙함과 공평무사의 가면을 쓴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무도 그런 것에는 속아 넘어 가지 않는다고도 했다. 그러나 여전히 속이려는 사람들은 지구상 어느 곳이고 가리지 않고 샜고 널려 있다. 마치 오징어게임을 하듯 가면을 뒤집어쓰고 게임 중이다.

2021111901000453800017573

◆가면 그리고 탈

가면(假面)!

인간 세상에서 이보다 더 가면스러운 단어가 있을까. 개인을 특징 지우는 속성의 전체를 한마디로 표현한 단어가 '퍼스낼리티(Personality)'다. 이 단어의 어원도 따지고 들면 가면에서 비롯됐다. 즉 '연기자가 쓰고 다닌 가면'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우리시대의 지성 이어령 교수는 "가면은 수시로 움직이는 인간의 성격으로 될 때 자연히 거짓의 탈처럼 보여진다"며 "눈물을 흘릴 때에는 가면은 웃고, 웃고 있을 때에는 가면은 울고 있다"고 말했다. 산업·과학사회로 진일보하면 이렇듯 울고 웃는 가면의 진실을 들여다본다는 것 또한 결코 쉽지 않다. 이집트 피라미드 속 황금의 투탕카멘에서 현대판 핼러윈까지 온갖 가면들은 코로나 시대에도 불구하고 늘 진행형이다.

이뿐인가. 영화에서도 가면, 탈 혹은 마스크를 소재로 흔쾌한 일상을 선물한다. 짐 캐리가 주연한 코미디 액션 '마스크'는 고대시대의 유물 마스크를 쓰면 초인적인 힘으로 불사신에 가깝게 변모해 악을 무찌른다. 안소니 흡킨스의 '마스크 어브 조로'도 스페인의 멕시코 지배에 대한 통쾌한 복수극으로 지금까지 인기다. 조로가 검은 마스크와 채찍으로 무장하고는 칠흑빛 종마 토네이도와 함께 질주하는 그 장면들. 번개같이 재빠른 동작으로 얼굴의 변신을 보여주는 중국의 변검은 흥미진진하다.

1-1
탈~가면~마스크. 같으면서도 다른 듯, 다르면서도 같은 듯 그 뜻과 어감이 지니는 고유성에 우리는 다분히 곡선의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진다. 탈과 가면의 시간이 코로나를 만나면서 마스크로 묘한 변용을 이루고 있다.

◆탈과 가면, 그리고 마스크

우리의 탈도 마찬가지다. 늘 '한국미'의 본질을 쉽게 설명하려 했던 최순우 전 국립박물관장은 역저 '한국의 탈'에서 "한국 탈들의 얼굴을 유심히 보고 있으면 그 지지리 못생긴 모습들이나 거칠게 다루어진 손길이 용하게도 이렇게 서로 닮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며 "눈끔적이, 각시, 취바리, 미얄할미, 초라니, 말뚝이 등 탈들의 구수한 이름들만 헤어 봐도 한국적인 흥취가 짙어진다"고 적었다. 그게 다가 아니다. 처용탈, 하회 병산탈…. 저 탈의 가치는 한국인의 정서에도 깊이 뿌리 내려 지금도 뿌듯한 민족적 자긍에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

탈~가면~마스크. 같으면서도 다른 듯, 다르면서도 같은 듯 그 뜻과 어감이 지니는 고유성에 우리는 다분히 곡선의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진다. 속담에 '죽는 놈이 탈 없으랴'라고 했다. 세상의 그 어떤 재앙도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라는 말이다.

가장무도회의 그 화려함 뒤에 숨은 온갖 정략적 현상은 또 가면을 세상의 둘도 없는 놀이로 삼고는 숱한 애환이 숨박꼭질한다. 마스크 또한 현재의 코로나와 숙명적인 만남이 이뤄지고 있다. 숨쉬기 편한 마스크, 귀 편한 마스크, 새부리형 마스크, 항균마스크, 구리마스크, 연예인마스크, 천마스크, 면마스크, 재사용마스크, kf94, kf80, 덴탈마스크, 심지어 '공짜 마스크'까지….

우리는 마스크 홍수 속에 살고 있다. 근대 서양철학의 출발점이 된 데카르트는 "나는 가면을 쓰고 나아간다(larvatus prodeo)"고 일갈한 이유가 괜한 것이 아니었구나 싶은 현재다.
글=김채한(전 달성문화재단 대표이사)
사진= 배원태 사진작가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위클리포유인기뉴스

영남일보TV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

영남일보TV

더보기